◈명진 거사님께 / 법정 스님◈
가을바람 불어오니 처마 끝에
풍경소리 자주 들리고
밤으로도 별들이 푸르게 빛을 발합니다.
거사님께서 늘 염려해주신 덕으로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지난 초하룻날 길상사에 가서 처음으로 법회를 했습니다.
제대로 도량 기능을 하게 되면 도시 포교로 한몫을 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보살님과 아이들 집안이 두루 평안하시지요.
그리고 공장일은 차질 없이 잘 나아가는지도 궁금합니다.
많은 사람 거느리고 일하다 보면 여러 가지로 애로사항이 많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웃들을 부처님과 보살로 여긴다면
어려운 고비도 무난히 넘기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온통 불경기 타령인 이런 때 어떻게 하면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 지 화두 삼아
항상 마음속으로 헤아린다면 밝은 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아무쪼록 인욕 정진으로써 큰 뜻 이루시기 바라고 빕니다.
가을바람 아침저녁으로 산들거리고 맑은 햇살 눈 부신 들녘에 오곡이 익어가는 이 좋은 때
집안과 일터가 두루 평안하고 활기 넘치기를 멀리서 두 손 모읍니다.
좋은 가을 맞으십시오.
九七년 백로절 法頂 합장 明眞 居士님께
행복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
작은 친절과 따뜻한 몇 마디 말이, 우리가 의지해 살아가는 이 지구를 행복하게 합니다.
지구가 행복해야 그 안에 살고 있는 우리들도 행복해집니다.
개인은 전체의 한 부분입니다. 개개인이 모여 전체를 이룹니다.
오늘은 행복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엊그제 행복에 대한 책 (프랑수아 를로르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을 한 권 읽었습니다.
지난여름 읽은 여러 책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기에, 이 자리에서 같이 음미하려고 합니다.
실제로는 불행하지 않은데도 불행하다 여기는 환자들을 날마다 대해야 하는
한 프랑스 정신과 의사가 쓴 책입니다.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불행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만나며
그도 자신의 일에 만족을 느끼지 못합니다.
정신과 의사들은 매일매일 정신 상태가 부실한 사람들을 대하기 때문에
때로는 의사 자신도 헛소리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끔씩 동료들끼리 검사를 해준다고 들었습니다.
그것도 업입니다.
늘 그런 사람들을 대하다 보면 그 기운이 전이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 어느 곳보다 풍요로우면서도 정신과 의사가 가장 많이 사는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도 저자의 분신인 정신과 의사입니다.
그는 이름난 의사였습니다.
날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진료실로 찾아왔습니다.
상담으로 넘치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그는 자신 역시 행복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많은 돈을 벌었지만 행복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병을 안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어떤 치료로도 진정한 행복에 이르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진료실 간판을 내리고 세계 여행을 떠납니다.
무엇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불행하게 만드는가를 알기 위해 떠난 것입니다.
마치 <화엄경>의 선재 동자가 선지식을 찾아 구도의 길에 나섰던 것과 같습니다.
그는 중국, 아프리카, 미국 등지를 다니며 유명하고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 행복의 비결을 찾습니다.
한번은 중국에서 이름난 노스님을 만나기 위해 산길을 걷게 됩니다.
복잡한 도시에 살며 환자들만 만나다가, 모처럼 거기에서 벗어나 산길을 걷고 있으니
문득 ‘아, 행복은 산길을 걷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떠오릅니다.
행복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도 경험하셨을 것입니다.
어쩌다가 절에 가거나 등산을 하게 되어 호젓한 산길을 걸으면 마음이 참으로 평화롭지 않습니까?
의사는 새로운 교훈을 얻을 때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수첩에 메모를 합니다.
이렇게 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난 덕에 그의 수첩에는 행복의 비결이 하나씩 기록되어 갑니다.
그 가운데 몇 가지 행복의 비결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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