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글

절간 이야기

qhrwk 2022. 2. 17. 09:58




절간 이야기 

조오현


사내 대장부 평생을 옷 한 벌과 지팡이 하나로 살았던 雪峰(설봉)
스님은 말년에 부산 범어사에 주석했는데 그 무렵 곡기를 끊고 
곡차를 즐겼지요.

그날도 자갈치 그 어시장 그 많은 사람사람 사투리사투리 물비릿내
물비릿내 이것들을 질척질척 밟고 걸어 들어가니, 생선좌판 위에 등이
두툼한 칼로 생태를 토막내고 있던 눈이 빠꼼한 늙은 '아즈매 보살'이
무르팍을 짚고 꾸부정한 허리를 펴며 뻐드렁니 하나를 내어 놓았지요.

"요새 시님 코빼기도 본 사람 없다 캐싸서 그마 시상살기 싫다캐서 열반에 드셨나 갰나캐도요. 
오래 사니 또 보겠다캐도......"

이러고는 바짝 마른 스님의 손목을 거머잡는가 싶더니 치마끝자락으로
눈꼽을 닦아내고, 전대에서 돈 오천원을 꺼내어 곡차 값으로 꼭 쥐어 주고,
이번에는 빠닥빠닥한 일만원권 한 장을 흰 봉투에 담아 주머니에 넣어 주면서

"둘째 미누리 아아가 여태 태기가 없다캐도... 잠이 안 온다캐도요.
둘째놈 제대 만기제대하고 취직하마 시님 은공 갚을끼라캐도요.
그마 시님이 곡차 한 잔 자시고요. 칠성님께 달덩이 머스마 하나
점지하라카소. 약소하다캐도 행편 안 그렁교?"


하고 빠꼼빠꼼 스님을 쳐다보자 스님은 흰 봉투 속을 들여다보고는
神話 하나를 만들었지요.
"아즈매 보살! 요새 송아지 새끼 한 마리 값이 얼마인 줄 알고 캅니꺼?
모르고 캅니꺼? 도야지 새끼도 물 좋은 놈은 몇만원 한다 카는데에
이것 가지고 머스마 값이 되겠니꺼?"

그러자 그 맞은편 좌판 앞에서 물오징어를 팔고 있던 젊은 아즈매 보살이
쿡쿡 웃음을 참다 못해 밑이 추지도록 웃고 말았는데, 때마침 먹이를
찾아왔던 갈매기 한마리가 그 웃음소리를 듣고 멀리 바다로 날라 갔는데,
그 소문을 얼마나 퍼뜨렸는지.......


그 후 몇 해가 지나 설봉스님 장례식 때는 부산 앞바다 그수백 마리의
갈매기들이 모여들어서 아즈매 보살들의 울음소리를 흑흑흑......
흉내를 내다가 눈물 뜸뜸 떨구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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