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보살계의 근본취지[受菩薩戒法序] 강의 21

qhrwk 2025. 2. 24. 07:42

 

 

보살계의 근본취지[受菩薩戒法序] 강의 21

 

纔發一念 已過聲聞이니 諸佛挍量하사 羣經具載니라 不可以情思臆斷으로 背佛違經하야 

謗大之愆 罪淪長劫이니라

 

[원문] 이러한 보살계에 대해서 겨우 한 생각만 내더라도 벌서 소승 성문의 경지는

넘어선 것이다.

그래서 모든 부처님이 그러한 이치를 헤아려서 여러 경전 곳곳에 설하여 두었다.

공연히 개인적인 좁은 소견과 억지생각으로 부처님을 등지고 경전의 가르침을 어겨가며

대승의 가르침을 비방하면 그 허물로 인하여 오랜 세월동안 지옥에 빠지는

삶을 살게 되리라.

 

(해설) 보살계의 근본취지를 알고 겨우 한 생각만 내더라도 소승 성문들의 경지는

훨씬 넘어간다. 소승 성문들은 제아무리 수행해서 깨달음을 얻더라도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이라는 이 네 가지의 경지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알고 있다.

 

인간이 절대로 부처님이 될 수는 없다고 가르친다.

부처님도 초기에는 아함부(阿含部) 경전을 통해서 방편으로 근기에 맞추느라고 별의별

말씀을 만들어서 가르쳤으나 나중에는 대승경을 설하여 모든 것이 방편이요 진실이

아니라고 하였다.

 

“내가 중생들을 이끌어 오기 위해서 있는 말도 하고 없는 말도 하고 자신의 경험도 이야기

하고 남의 경우도 이야기하면서 오직 중생들의 마음을 크게 열어주고 제도하는데만

마음을 썼다.”라고 하였다.

그러다가 대승에 와서는 모든 진실을 다 말하였다. “마음과 부처와 중생이 이 셋은

차별이 없는 것이다.”라는 가르침과 모든 사람이 그대로 문수보살이요, 보현보살이요,

여래라고 하여 사람 사람들이 본래로 부처님이라는 말로 결론을 지으셨다.

 

이러한 사실들이 여러 경전과 수많은 어록들에서 잘 설명되어 있다.

그러므로 공연히 자신의 과문과 좁은 소견과 억지 생각으로 부처님과 조사님들의 진실한

뜻을 등지고 경전과 어록들을 비방하는 잘못을 범하면 안 된다.

한국에는 일찍이 대승불교와 선불교가 들어와서 세상과 인생에 대한 불자들의 지혜가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우수하다.

 

그런데 근래에 교통이 발달하면서 상좌부불교권인 남방, 즉 태국이나 미얀마나 스리랑카

등지에 가서 그곳의 소승 교리인 아함부 불교를 공부하고 돌아온 이들이 또 다시

소승불교를 진정한 불교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설사 아함부의 교리가 근본불교라 하더라도 일찍이 노자사상과 장자사상을 공부하였거나

유교의 대학이나 중용이나 주역 등과 그리고 동양의 성리학에 조예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함부의 교리는 한마디로 차원이 낮아서 아무런 재미가 없는 가르침이다.

 

그래서 중국과 한국과 일본에서는 대장경 속에 아함부 경전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번역까지 하였으나 크게 눈여겨보지는 않는다.

그런데 법화경이나 화엄경이나 금강경이나 능엄경 같은 경전을 읽은 사람들에게는 아함부의

경전은 더욱 눈여겨 볼만한 교리가 못된다.

 

더구나 불교가 최고조로 발달한 최첨단의 선불교의 선어록을 즐겨 읽은 사람들에게는 아예

이야기꺼리가 될 수 없다.

아무리 불교경전 안에 속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근기에 따라 설한 온갖 차별한 것이 많기

때문에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열반경에는 부처님이 유언으로 말씀하시기를

“완전한 의미를 갖고 있는 대승경전을 의지하고 불완전한 의미의 소승경전은 의지하지

말라[依了義 不依不了義].”고 하셨던 것이다.

 

세월은 유수하여 인생은 저토록 빨리 지나가고 세상은 저렇게 바쁘게 돌아가는데 언제

그와 같은 소승경전을 읽고 있을 시간이 있는가.

감동도 없고 재미도 없을뿐더러 바쁜 시대에는 빨리 결론부터 알아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서구사회에서까지 부처님과 조사님들의 직설인 선불교를 그렇게 선호하는 것이다.

 

출처:다음카페 염화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