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심을 일깨우고 자라나게 하소서
중요한 것은 불교의 가르침에 담긴 진리이지 스승이라는 한 개인이 아닙니다.
붓다가 우리에게 <네 가지 의지처>를 환기시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스승이 아닌 스승의 가르침에 의지하라.
- 말이 아닌 그 의미에 의지하라.
- 일시적인 의미가 아닌 참된 의미에 의지하라.
- 일상적인 판단력이 아닌 지혜의 마음에 의지하라.
참된 스승이란 진리를 대변하는 인물, 즉 자비로 충만한 <지혜의 현현체>임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붓다와 스승, 그리고 예언자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수한 방편과 지혜를 갖추고서
진리의 화신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곤 했습니다.
자신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를 참된 본성으로 이끌어주려고 말입니다.
스승을 찾아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진리를 발견하여 그 것을 따르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가르침이 전하려는 진리와 관계를 맺고 난 후에야 비로소
스승과도 살아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티베트 전통에서 스승은 붓다보다 한층 더 친근한 존재로 존경을 받습니다.
붓다의 자비와 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있지만, 미혹으로 인해 우리는 붓다와 직접 만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스승과는 직접 만날 수 있습니다.
스승은 이곳에서 함께 숨쉬며 살아가고, 말하고 행동하면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붓다의 길과 해탈의 길을 보여주려 합니다.
내게 있어 스승은 살아 있는 진리의 화신이었습니다.
스승은 현생에서, 이 세상에서, 심지어 바로 지금, 바로 여기에서 육체를 입고도 깨달음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였습니다.
스승은 나의 수행을 통해, 나의 삶을 통해, 그리고 나의 해탈 역정을 통해
나에게 엄청난 영감을 불러일으킨 존재였습니다.
내가 실제로 깨달를 수 있을 때까지 깨달음의 추구에 경건하게 몰입하도록
지속적으로 이끌어준 화신이 다름 아닌 나의 스승이었습니다.
깨달음에 이르렀을 때에만 비로소 스승이 어떤 존재였는지, 또 얼마나 무한한 관용과 사랑과 지혜를
베풀어주었는지 알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이제야 충분히 알겠습니다.
<보디 치타bodhicitta>라는 산스크리트어는
깨달음을 얻어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자비로운 소망을 뜻합니다.
<보디bodhi>는 깨달음, <치타citta>는 마음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보디치타란 <깨달은 마음>인 셈입니다.
깨달은 마음을 일깨우고 키워나가기 위해 우리는 불성佛性의 씨앗을 서서히
숙성시켜가야 합니다.
자비를 실천하는 수행이 마침내 완전해져 일체 중생을 껴안게 될때, 불성의 씨앗은 장엄하게
꽃필 것입니다.
따라서 보디치타는 영적인 길의 근원이자 뿌리입니다.
우리 티베트 전통에서 그토록 절박하게 기도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보디치타를 아직 일깨우지 못한 자
일깨울 수 있게 하옵시고,
보디치타를 이미 발한 자
조금도 줄어듦이 없이
더더욱 자라나게 하옵소서.
죽음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목적은 마음 깊은 곳에서 실질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함입니다.
이를 위해서 종종 일정 기간의 은둔과 깊은 명상이 요구됩니다.
그래야만 살아있는 동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에 눈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명상함으로써 우리가 <자유>라 부르는 것,
티베트어로는 <네 중nge jung>이라 일컫는 것의 깊은 의미를 알게 될 것입니다.
<네nge>는 <헌신적으로>, <틀림없이>란 뜻이고,
<중jung>은 <나오다>, <벗어나다>, <태어나다>란 뜻입니다.
죽음을 깊이 있게 자주 성찰하게 되면,
당신은 자신의 습관적 경향을 점차 혐오하게 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점점 습관적 경향으로부터 벗어날 것이고,
스승의 말씀대로 <버터 조각에서 머리카락을 빼내듯> 부드럽게 그로 부터 풀려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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