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한시 감상

심생전 [‘古典 여걸’ 열전] 沈生傳 全文2.

qhrwk 2025. 11. 10. 20:15

여인 마음 열리는 과정 생생히 묘사

 
자료 제공·앨피 출판사 ‘춘향이가 읽은 연애소설’

 그것은 안타깝게도 이미 죽은 궐녀의 절절한 유서였다.
“도련님과 상봉한 이후 세월이 오래지 않음도 아니요, 

지어드린 의복이 적다고 할 수도 없는데, 한 번도 도련님께서 한 사발 밥도 집에서 

자시게 못하였고 한 벌 옷도 입혀드리지 못하였으며, 도련님을 모시기를 다만

침석(枕席)에서 뿐이었습니다.”

그녀는 부모님께 모든 것을 고백하고 그를 ‘남편’으로 받아들였으나, 심생은 그녀를 ‘

잠자리’에서만 아내로 여겼다는 사실을 궐녀는 뒤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창자가 끊어지고 뼈가 녹는 듯한 고통 속에서 그녀는 혼자 죽어가며 절규한다.

“창 사이의 밀회는 이제 그만입니다. 바라옵건대 도련님은 소녀를 염두에 두지 마옵시고,

더욱 글공부에힘쓰시어 일찍이 청운의 뜻을 이루옵소서.”
그녀는 삶은 물론 죽음까지 한 남자에게 바쳤지만, 심생은 부모에게도 자신에게도

그리고 세상에게도 솔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의 유서를 읽고 큰 충격에 빠진 심생은 글 공부를 때려 치우고 의금부 낭관이 됐으나,

슬픔을 이기지 못해 일찍 죽고 만다.

이 이야기에는 한 여인의 마음이 열리는 과정, 그 복잡 미묘하면서도 신비로운 설렘이

손에 잡힐 듯 생생히 묘사돼 있다.
마음을 여는 것은 우주를 들어 올리는 일만큼 어렵지만, 한번 열린 마음을 닫는 것은

그보다 훨씬 어렵다. 한 여인의 목숨을 건 사랑은 비록 보상받지 못했지만, 이름 없는 

그 여인의 절절한 사랑은 수백 년 간극을 뛰어 넘어 오늘날에도 슬픈 사랑의

리얼리티를 눈부시게 전달한다.

자료 제공·앨피 출판사 ‘춘향이가 읽은 연애소설’ / 주간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