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忽聞人語無鼻孔 頓覺三千是我家
六月鷰巖山下路 野人無事太平歌
- (鏡虛禪師 悟道頌)
문득 콧구멍이 없다는 말을 듣고
온 우주가 나 자신임을 깨달았네,
유월 달 연암산 아랫 길에
할 일 없는 들사람이
태평가를 부르네.
心月孤圓 光呑萬像
光境俱忘 復是何物
(鏡虛禪師 涅槃頌)
마음 달이 외로이 둥그니
빛이 만상을 삼켰네,
빛과 경계를 함께 잊으니
다시 이것이 무슨 물건인고?
[해설]
이 두 게송은 鏡虛 禪師의 悟道頌과 涅槃頌입니다.
경허 선사는 전라북도 전주시 자동리에서 태어나셨는데, 성은 宋氏이고 法名은
惺牛이고 號가 鏡虛입니다.
일찍이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를 따라 경기도 광주 淸溪寺에서 桂虛 大師에 의해서
머리를 깎고 戒를 받고 스님이 되었습니다.
14세 때 절에 온 선비에게 여름동안 글을 배웠는데 한번 듣는 것은 다 외우고
빠르게 文理가 터득되었다고 합니다.
계허 은사스님이 환속하면서 계룡산 동학사 萬化 講伯에게 편지로 부탁하여 보냈습니다.
선사는 만화 강백에게 부처님 일대 時敎를 다 배웠습니다.
23세 때 대중의 뜻에 따라 동학사 강백이 되었습니다.
선사가 開講하자 전국에서 배우려는 스님들이 구름처럼 모였다고 합니다.
31세 때 계허 스님을 찾아 뵙고자 길을 가다가 소낙비를 만나 어느 마을 집에 들어갔더니,
주인이 내쫓았습니다.
하룻밤만 쉬어가자고 통 사정을 하니, 집 주인이 이 동네는 염병 호열자 전염병이 돌아
걸리면 바로 죽으니, 어서 가라고 하였습니다.
선사는 죽는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해졌습니다.
죽음에 대한 불안감은 선사를 재발심하게 하였습니다.
문자 공부로는 생사를 면할 수가 없음을 깨달고 학인들을 다 돌려보내고 문을 닫고 참선을 하게 됩니다.
話頭는 “나귀 일이 가지 않았는데, 말의 일이 도래 한다(驢事未去 馬事到來)” 였습니다.
선사는 화두를 참구하면서 睡魔를 쫓기 위해서 다리를 송곳으로
찌르고 머리를 쳤다고 합니다.
이렇게 죽자 살자 용맹정진을 석 달을 하는데,學明道一 스님이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구멍이 없는 소란 뜻이 무엇입니까?”
묻는 말에 확철대오를 했다는 겁니다.
깨친 후 선사의 행적은 대 자유인으로서 悠悠自適하였습니다.
51세 때 합천 해인사에서 藏經을 拓本 佛事를 勅命으로 했는데, 대중스님들의
추대를 받아서 法主가 되었습니다.
56세 때 오대산 금강산 연변 석왕사를 순례하고 오백나한 개금불사에
증명법사로 참례를 하였습니다. 그 뒤로는 세상을 피하고 이름을 숨기고
甲山 江界 等地에서 자취를 감추고 號를 蘭州라 하고 머리를 기르고 儒冠을 쓰고 살았습니다.
64세 되는 해 4월 25일 甲山 熊耳房 道下洞에서 열반에 들었습니다.
선사는 대 解脫人으로서 자유 분망하게 사시다가 가셨다고 합니다.
異行 奇行도 많은 선사입니다.
근래 한국불교 禪風을 振作시킨 大禪師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선사님의 제자로는 滿空, 水月, 慧月, 寒岩 禪師 等입니다.
제자 분들도 당대의 큰 선지식들이었습니다.
선사의 行跡은 俗脫 法脫 自在한 無碍行으로 묘사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 눈으로 보면 미친 땡중으로 취급 받았습니다.
물동이 이고 가는 처녀 입을 쪽 맞추고 줄행랑을 쳤으니 말입니다.
세속 윤리의 잣대로 보면 분명 미친 중이 틀림없습니다. 고름이 질질 흐르는
문둥병 여자를 조실 방에서 동침한 사건은 더욱 해괴한 사건입니다.
서산 앞 바다 어부 집에서 머슴살이 하다 집 아낙과 통정하다 죽도록 맞은
일화 등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 당시를 선사가 회고 하는 시구를 보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돈오 하여 깨달음은 부처님과 같지만(頓悟雖同佛)
다생으로 익혀온 습기는 오히려 생생하구나(多生習氣生)
폭풍은 잠잠하나 아직 파도는 남아 솟구치니(風靜波尙勇)
이치는 분명한데 제 버릇이 그대로일세(理顯念猶侵)
그렇다면 頓悟는 되었는데 頓修가 안 되었다는 말인가?
이치는 깨달아 부처님과 같은데, 다생에 익혀온 습기가 파도를 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無碍行은? 業習입니까? 詩句 내용으로 보아서는 선사의 심정을 말한
것이니 그렇게 볼 수밖에 없잖느냐 이겁니다. 그래서 절 안에서도 선사의
무애행에 대한 의구심과 오해가 많았던 것입니다.
경허 선사 하면 지금도 선풍의 중흥조로 말합니다. 한국 선불교를 일으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수행의 내면세계는 각자의 몫입니다. 남이 대신 해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是是非非 曰可曰否는 禁物입니다.
悟道頌은 도를 깨칠 때 읊은 노래입니다. 깨달은 순간 마음을 노래로 노래한 것이
오도송입니다. 涅槃頌은 죽을 때 읊은 노래입니다. 수행의 결산이 열반송입니다.
생의 마지막 노래가 열반의 노래입니다. 생을 마치면서 삶을 총 결산하는 것이
열반송입니다. 수행의 결산이 열반의 노래입니다.
선사의 열반송을 봅시다.
“마음 달 외로이 둥그니 빛이 만상을 삼켰다.” 라고 했습니다.
둥근 마음 달은 불성을 말한 겁니다. 선사의 불성, 자성을 말한 겁니다.
그 빛이 삼라만상을 삼켰다고 했습니다. 달 따로, 빛 따로, 만물 따로가 아니라
우주 만물과 하나가 되었다는 겁니다.
“빛과 경계를 모두 잊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라는 생각도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이냐?”고 自問하고 있습니다.
‘없다는 이것은 무엇이냐?’ 이겁니다. 선사의 내면의 세계를 본 것 같지 않습니까?
수행자의 면목을 여실하게 드러내놓고 있습니다. 여기에 무슨 군두더기가
붙겠습니까?
이러쿵, 저러쿵 논란이 붙겠습니까? 선사의 삶이 오도송 열반송으로
드러났습니다. 한 시대를 살아간 수행자의 진면목을 본 것 같지 않습니까?
수행자의 삶은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남이 대신 해줄 수도 없고 남이
평가할 문제도 아닙니다.
화옹 이계묵 거사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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