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불교공부[붓다의 선물] 성불이란 무엇인가?

qhrwk 2026. 4. 19. 06:44

불교공부[붓다의 선물] 성불이란 무엇인가?

 

4. 지독한 피부병에 걸린 제자를 손수 구완하고 장례 치르신 부처님, 그리고 무상법문

어느 때 부처님께서 강대국 코살라의 수도인 사밧티(금강경에는 사위성이라 표현하고 있는)에 

계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45년의 안거를 지내시는 중에, 그 사밧티의 제타숲절(기원정사)에서 

거의 반을 보내셨습니다. '안거를 지내셨다'는 것은 '일 년을 보내셨다'는 뜻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동안거, 하안거 두 번이지만, 인도에서는 비오는 계절에, '우안거' 한 번입니다.

그때 많은 제자들 가운데 '팃사'라는 젊은 비구가 있었는데, 수행 중에 병에 걸렸습니다. 

온몸에 종기가 생기고, 종기 속에 고름이 차고, 고름이 곪으니 몸에서 냄새가 나는, 지독한 악성 

피부병이었습니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부티가따 팃사'였습니다. '악취를 풍기는 팃사' 그런 뜻입니다. 

심한 병에 괴로워하니 동료비구들이 병구완에 애를 많이 썼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낫지 않고, 온 몸에 고름이 줄줄 흐르고 악취가 풍기는 것이 더 

심해져갔습니다. 친구를 살려보려고 애를 썼지만 백약이 무효였고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쪽 방을 치워 조용히 눕혀 놓는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고타마 붓다께서 그것을 아시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아셨는가... 고타마 붓다께서는 24시간 

동안 중생을 살핍니다. 잠자는 시간은 하루에 두 시간 정도 됩니다. 

고타마 붓다께서 24시간 어떻게 사셨는가 학자들이 연구한 그 시간표가 나와 있어요. 

밤에 주무시는 시간은 두 시간 정도 밖에 안 됩니다. 대부분의 시간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불자들을 만나 상담을 하였습니다. '거룩하게 법을 설했다' 

그런 표현보다는 '상담을 통해 도움을 주시다'가 더 적절합니다. 하루에 한번 집집마다 다니면서 

탁발을 하시고, 탁발을 하면서 집집마다 축복을 기원해주시고, 돌아와서는 제자들을 가르치고, 

또 시간이 나면, 천안으로 세상을 살핍니다. 어디에 고통 받는 중생이 없는가, 어디에 내가 가서 

도와줘야할 그런 중생은 없는가. 그렇게 하면서 시간을 보내시는 겁니다. 이런 걸 생각하면, 

우리는 지금 얼마나 게으른지 참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삼매에 들어 세상을 살펴보니, 당신 가까이서 사랑하는 제자 팃사가 다 죽게 

되었단 말입니다. 그래서 팃사가 홀로 누워있는 방으로 달려가서 병구완을 하십니다. 

피고름이 엉켜, 옷이 몸에 다 달라붙어 있는 팃사의 몸에, 따뜻한 물을 뿌려 손수 옷을 벗겨 내셨습니다. 

손에 고름이 묻고, 악취가 진동하지만, 마지막 속옷까지 다 벗겨내서, 부처님께서 손수 그 옷을 

빨았습니다. 너무 악취가 진동하니, 아무리 부처님이라도, 제자들에게 그런 일을 함부로 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옷을 빨아 가져다 널고, 깨끗한 수건으로 팃사의 몸을 깨끗하게 닦아 냈습니다. 

목욕을 시켰어요. 악취가 풍기고 손에 피고름이 가득 묻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상황입니다.

팃사 비구는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거룩한 세존께서, 내 생명보다 우러러 받드는 그 세존께서 

그렇게 수고를 하시니, 눈물을 흘리면서 그걸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몸을 깨끗이 닦아낸 후, 

인도의 뜨거운 날씨에 금방 마른 팃사의 옷들을 다시 입힙니다. 비구로서의 품위를 회복하도록.
팃사 비구는 숨을 거둘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숨을 막 몰아쉬고 있는 사랑하는 제자 팃사의 손을 잡으시고 머리맡에 앉아 

소곤소곤 이야기를 하십니다. '법을 설했다' 저는 그런 말을 쓰고 싶지 않아요. 

그렇게 거창하게 하기보다 '이야기를 나눈다', '상담을 한다'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부처님의 심정으로 돌아가서, 여러분의 사랑하는 가족이, 친구가 지금 숨을 거두려고 하고 

있다면, 가까이 가서 몸을 깨끗이 닦아내고 손을 붙들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습니다.

오래지 않아 이 몸 흙바닥에 버려지고
마음 또한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리
그때 덧없는 이 몸 실로 섞은 나무토막 같이 쓸모없으리.

Dhp.41 (법구경. 41게송)
숨 한번 끊어지면 우리 육신은 흙바닥에 뒹굴고, 마음이란 것 또한 사라져버린다 하셨습니다.

 

무상법문을 통해 깨닫게 되는 우리들의 잘못된 마음에 대한 오해

우리 한국불자들이 많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마음, 마음 하니까, 마음이 영원히

어디에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마음을 찾자', '육신은 허망하고 소멸되는 것이지만 마음은 영원한 것이다', '마음은 윤회하는

것이고', '마음은 해탈하는 것이고', '마음은 영원한 생명이고', '자성이다', '자성은 청정한 것이다',

'자성을 보아라'... '자성'을 쉬운 말로 하면 '마음'입니다.

선가에서도 '마음을 보면, 마음을 깨달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그럽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죠? 대부분 이렇게 다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실로 이 마음 또한 없는 것입니다. '마음 또한 어디론가 사라져버리리',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허무하십니까? 육신도 없는 것이고, 마음도 없는 

것이라 하니, 허무하십니까? 그렇게 철저하게 비워야 합니다. 조금도, 그 무엇도 집착하지 마십시오.

무엇도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럼 사도에 떨어집니다. 이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니까,

다음 기회에 자세하게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흙바닥에 버려진 육신은, 나무토막보다 쓸모가 없지요. 나무토막은 쓸모가 많아요. 

통나무집도 짓고 장작도 떼고, 유용성이 많아요. 그런데 죽어 나자빠진 송장은 어디다 써요? 

악취만 나고 기분 나쁘고 소름 끼치고, 그야말로 쓸모없죠? 

원전에도 '쓸모없다'고 나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의 죽음을 보고, 말하자면 

무상법문을 하신 것입니다. 무상법문이라고 해서 거창하게 할 거 없습니다. 이 이상 좋은 무상법문이 

어디 있습니까? '그 애지중지하는 육신, 숨 한번 거두고 나면 나무토막보다 못해' 이 한마디로 

무상법문은 족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너무나 영원한 것에 집착해있기 때문에, 그것을 철저히 깨는 것이 무상법문입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 다 이 영원한 영혼이라는 거에 매달려서, 심령의 종이 되어서, 그것만 믿고 천국에 

간다느니 지옥에 간다느니 하지 않습니까. 영혼의 노예, 심령의 노예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마음의 노예들입니다. 심령 찾는 거나, 마음 찾는 거나 다를 게 뭐가 있습니까? 

그것을 철저히 깨는 무상법문은, 결코 허무가 아니고, 결코 단멸이 아닙니다. 참으로 기쁜 법문입니다.

고타마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제자가 숨을 거두니, 사랑하는 다른 제자들과 힘을 합쳐서 장례를 손수, 

바로 그 자리에서 치릅니다. 부처님께서는 손수 제자의 염을 하시고 바로 다비(화장)를 하신 겁니다.

인도에서는 원래 당일장이었습니다. 24시간 안에 화장합니다. 인도에 가보신 분들은 보셨겠지만,

갠지스강 그 언덕이 전부 화장장입니다. 연기가 계속 솟아오릅니다. 그 사람들은 간단하게 합니다.

뼈를 그냥 강물에 던집니다. 그러나 그걸 조금도 부정하게 보지 않습니다. 생과 사를 둘로 보지 않는

철학을 생득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