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장 무분별지(無分別智)
“대해(大解)와 대행(大行) 등 여덟 종류의 큰 사람들은 행하는 행법(行法)이 지극히 치밀하지만, 세간에 사는 것을 좋아하여 결코 성불할 수 없는 천제(闡提)의 길로 나아가 끝이 없는 아비지옥(阿鼻地獄) 등에 떨어진다는 것은 어떠한 뜻인지요?”
“이 사람들은 아직 일승의 종성(種性)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부터 아래로 출가하지 않고 세간에 있는 사람들까지로 올바르고 착함이 없는 사람들을 나열한 것이니 곧 제3계(第三階)의 사람입니다. 말한 데로 그 행이 대단히 치밀하지만, 세간에 사는 것을 좋아하는 병이 있으므로 출세간의 올바른 선근(善根)을 얻을 수 없습니다.”
“어떠한 것들이 세간에 사는 것을 좋아하는 병인지요?”
“이 병에는 거친 것과 세밀한 것이 있습니다. 거친 것은 이미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 않겠습니다. 세밀한 것은 설령 매우 깊은 교법(敎法)과 스승의 매우 자세한 이치를 듣더라도, 자신의 분별하는 마음으로 살펴보고 관찰하여 불법(佛法)이 이와 같다고 알아서 헤아려 버리고, 법의 분제(分齊)를 스스로 알아서 나누어 버립니다. 그래서 결국 자기 마음이 그 보고 듣는 곳에 머물러 사혜(思慧)와 수혜(修慧)를 얻을 수 없고, 세간을 벗어나는 무분별지(無分別智)를 장애 함에까지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세간에 존재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리에 따라 뜻을 취하여, 부처님의 말씀을 글자 그대로만 받아들여서 바르게 믿지 못하고, 용맹정진에서 물러나고, 다른 사람을 속이고, 부처님을 비방하고, 불법을 가볍게 여기는 다섯 가지의 잘못에 떨어지므로 앞으로 나아가 닦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바른 믿음(信)과 이해(解)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이 잘못을 벗어날 수 있는지요?”
“자기 마음으로 헤아려 알 수 없는 곳에 이르면, 우러러 부처님께 미루고 스스로 자기 마음이 알 수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오직 부처님만 아시고 나의 경계가 아니라고 하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곧 부처님의 지혜를 깊게 믿는 사람(深信佛智慧者)입니다.”
“어떠한 깊은 이치를 듣는지요?”
“일체의 말이 모두 같다거나 나아가 일체의 법이 모두 고정되어 있지 않고(無住) 주체가 없다(無我)는 말을 들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들은 것을 글자 그대로만 받아들여, 듣지 못한 것을 얻지 못하므로, 그 고정됨이 없다(無住)는 깊은 이치에 대해 미혹(迷惑)하게 됩니다.”
“이미 고정됨이 없다는 말을 듣고 고정됨이 없는 이치를 잘 믿고 이해하였는데 어째서 미혹되는지요?”
“마땅히 고정됨이 없다는 말을 듣고 그 마음으로 고정됨이 없는 이치를 보았다고 여기는 사람은 단지 자기 마음으로 고정됨이 없음을 알아서 나름대로 ‘지은 것’일 뿐이고, 그 사람이 이해한 것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고정됨이 없는 이치가 아니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마음이 무분별지(無分別智)를 얻지 못하였는데 어떻게 그 고정됨 없음의 이치를 볼 수 있겠습니까. 만약 보지 못하고도 보았다고 여긴다면 어찌 바른 믿음이겠습니까.
스스로 바르게 믿지 못하고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여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부처의 경지를 깨달아 보지 못하였으면서도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하였다고 그럴싸하게 말하는 사람은 부처님을 비방하는 것입니다. 또한, 부처님의 경계를 보지 않았으면서 보았다고 말하는 것은 증상만(增上慢)이어서 용맹정진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또한, 이러한 사람은 자신의 견해와 어긋나는 사람을 만나면 곧바로 있는 대로 화를 내어, 여러 악업을 짓게 되므로 곧 일천제(一闡提)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절대 삼가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입니다. 이것은 수행하는 사람의 요체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이치를 볼 수 있는지요?”
“이미 들은 분별없음의 이치(無分別之理)는 무분별지(無分別智)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찰나찰나(念念)에 무분별지(無分別智)의 방편을 닦을 뿐 그 밖의 다른 길은 없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어떻게 해야 바르게 믿을 수 있는지요?”
“마땅히 부처님의 말씀은 인연이 있는 곳에서 말씀하신 것일 뿐이고, 그 법이 그와 같이 말해진 것과 같이, 고정되어 정해진 법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만약 이렇게 이해하여 고정된 견해가 없게 되면, 곧바로 이해하려고 하였으나, 이해하지 못했던 곳을 점차 깨달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빨리빨리(速速)’ 무분별지(無分別智)를 닦으시길 바랍니다. 부처님의 진정한 뜻은 대부분 이와 같이 듣고 이해한 사람들이 나아가 닦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 지은 여러 글의 뜻도 모두 이렇게 이해하고, 단지 말한 것에만 나름의 견해대로 집착하여 이해하지 마십시요.”
의상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좋아해서 결국 지옥에 떨어지는 천제도(闡提道)의 존재를 언급하고 나아가서 그러한 천제도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사물을 고정적으로 보지 않는 무분별지(無分別智)를 갖추고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 결정하지 않고 자신의 이해를 넘어선 것이라고 인정하는 태도의 행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하여 말씀하고 있었다.
“오문론자(五門論者)들은 자체연기(自體緣起)에 의거하여 존재들이 ‘완전히 밝고 덕을 갖추고(圓明具德) 막힘없이 자재하다(無礙自在)’는 뜻을 밝혔는데 지엄 스님의 별교일승(別敎一乘)의 보법(普法)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요?”
“이 뜻은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구별하는 약간의 방편이 있습니다. 그 오문론자 스님 등은 현상(相)을 뭉뚱그려 본성으로 돌린(歸性) 자체문(自體文)에 의거하여, 막힘 없이 자재한(無礙自在) 뜻을 밝힌 것이지, 곧바로 현상(相)과 구체적인 일(事)에 의거하여 본래의 막힘없는(如如無礙) 뜻을 밝힌 것이 아니므로, 동교(同敎)의 분제(分齊)에 해당합니다. 우리 지엄 스님 등은 현상(相)과 일(事)에 의거하여 막힘과 걸림이 없는(無障礙) 뜻을 밝혔으므로 별교(別敎)의 분제(分齊)에 해당합니다.”
“여래장(如來藏)의 자체(自體)에서 막힘 없이 자재함(無礙自在)을 밝혔으니 곧 숙교(熟敎 : 마지막에 이른 성숙한 가르침) 등의 뜻인데 어째서 동교(同敎)의 분제(分齊)라고 하시는지요?”
“이 오문론자 스님들의 주장은 별교(別敎)의 분제(分齊)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승별교(一乘別敎)의 뜻은 여래장(如來藏)의 상(相)에서 드러나는데 이들의 뜻은 다만 여래장의 체(體)의 측면에서 일승의 뜻과는 같습니다. 그래서 동교의 분제인 것입니다. 만약 부처님의 가르침이 근기에 맞추어 이야기된 것에 의거하여 분제를 구별한다면, 그 모습이 확연히 다르니 어떻게 구별하지 않겠습니까. 즉, 열반경(涅槃經) 등에서 여래장은 둘이 없다는 뜻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근기가 무르익은 이승 등의 근기를 상대하여 설하였으며 설한 장소와 시간도 달랐습니다.
화엄경은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두 번째 7일의 십세·구세의 때에 일중다(一中多)·다중일(多中一), 일즉다(一卽多)·다즉일(多卽一) 등의 사법계(事法界)와 이법계(理法界) 등의 법문에 의거하여 보현보살 등의 순수한 일승의 큰 근기(一向大機)를 상대하여 설한 것입니다. 근기와 가르침이 이미 다르니 그 궁극적 가르침(宗)이 어찌 같겠습니까. 이에 준하여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의상은 남북조시대 말기 북조의 동위(東魏)와 서위(西魏) 지역에서 활동하던 불교사상가들인 오문론자(五門論者)들이 이야기하는 자체연기(自體緣起)의 무애자재(無礙自在)와 화엄 교학에서 이야기하는 보법(普法)의 무애자재(無礙自在)에 대하여 전자는 체(體)만 있고 상(相)이 없지만 후자는 모두 갖추었다고 이야기하고 나아가 보법(普法)의 수행과 과덕(果德)으로서의 십지(十地)를 설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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