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8장 백화도량(白花道場)
“화엄경에서 보살의 작은(小相) 광명이 지옥의 중생들을 비추니 빛을 입은 중생들이 지옥에서 나와 도솔천에 태어나 십안(十眼) 등을 얻는 것에 관해 자세히 이야기하였고, 이에 대해서 수현기(搜玄記)에서는 ‘이 문장이 난해하다. 즉, 석가보살의 빛이 한 중생을 이롭게 하고 그 한 중생이 다시 일체의 중생을 이롭게 하여 이처럼 먼 미래까지 다 이롭게 한다’라고 말씀하였는데 그 뜻이 무엇인지요?”
“이것은 보살(菩薩)의 광명(光明)의 힘이 커 미래까지라도 이익이 됨을 드러낸 것입니다. 또한 교화되는 중생이 다른 중생들을 다시 번갈아 이롭게 함을 들어 본래 광명(光明)의 힘이 크다는 뜻을 드러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빛은 법(法)과 일치하는 광명(光明)이므로 그 법(法)과 같이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이익을 짓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곧 한때로부터 삼세(三世)에 이르도록 바라보는(望), 즉 하나하나의 중생마다 서로 다른 이익을 얻고 남을 이롭게 하는, 이렇게 불가사의한 이익이 되는 일을 짓는 것입니다. 이 일은 참으로 불가사의한(不可思議) 일입니다.”
“이것은 단지 보살의 광명인데 어째서 부처님의 지혜와 덕을 드러내게 되는지요?”
“보살의 보잘것없는 광명을 들어 부처님의 작은 몸의 뛰어남을 비교하여 드러내고 부처님의 작은 모습을 들어 큰 모습의 뛰어남을 드러낸 것입니다.”
“화엄경 이세간품(二世間品)의 여러 행법(行法)은 모두 앞의 여러 위계(位)에서 행한 것들인데 다시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행(行)에 의거하면 실제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앞에서는 단지 위계(位)에 의거하여 보법(普法)을 드러내 보이는 것만 이야기하고, 그 드러내 보인 보법의 수행자가 어떠한 수행의 과정(道品)을 행하는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행(行)을 일으키는 첫 번째 회(會)인 보광법당(普光處)에서의 가르침에 부쳐 탁법진수수행분(托法進修成行分)이라고 하고 제시된 일승(一乘) 보살(菩薩)이 행하는 수행법들인 이천 가지 구체적인 수행 과정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앞에서 이미 여러 위계(位)의 인과(因果) 방편 및 성기(性起)의 도리를 이야기하였는데 무엇이 부족하여 이세간품(二世間品)에서 다시 이야기하는지요?”
“앞에서는 방편을 닦아 이루는 인과(因果) 및 이 인과의 행덕(行德)을 어떻게 이루고 그다음에 무엇이 오는지를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행법(行法)을 얻어 수행하는 사람이 이러한 행법을 닦는 의칙(儀則)은 아직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비로소 믿고 이해하여(信解) 법(法)을 알게 된 사람들에게 이러한 행(行)들을 수행하도록 이야기 한 것입니다.”
“이세간품(二世間品)에서 이미 인(因)을 닦아 과(果)를 얻는 행의 모습(行相)을 이야기하였는데 왜 입법계품(入法界品) 기림(祇林)에서 다시 법문을 얻는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인지요?”
“이세간품(二世間品)에서는 믿고 행하는 법에 의거하여 수행을 전진시키는 모습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람에 의지하여 수행하여 이러한 법을 얻는 뜻은 보이지 못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 다시 선지식(善知識)에 의지하여 수행하여 얻는 행의 모습(行相)을 드러내 보여 뒷사람의 모범으로 삼은 것입니다.”
“이 기수급고독원(祇林)은 부처님께서 성도(成道)하시고 나서 여덟 번째 해에 만든 것이고 사리불 등의 여러 제자는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다른 나라에서 출가하여 입도(入道)한 사람들인데 어떻게 이 성도 이후 두 번째 7일의 한때에 나열하였는지요?”
“이것은 모두 여래께서 구세(九世)·십세(十世) 등을 해탈하여 막힘이 없게 되신 때 일체의 장소가 하나의 장소이고 일체의 때가 한때인 곳에서 설하신 일에 의거하여 나열한 것입니다. 점교(漸敎)의 모습을 드러내 나열한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점교(漸敎)의 모습(相)에서는 사리불 등이 법화회(法華會)에 이르러 비로소 일승(一乘)에 들어갔는데 들어간 일승(一乘)이 곧 화엄별교(華嚴別敎) 입니다. 이미 별교(別敎)에 들어갔는데 왜 이 입법계품(入法界品)에서는 함께 기수급고독원(祇林)에 있으면서 보지 못하는 사람이나 듣지 못하는 사람처럼 부처와 보살이 드러내는 일을 듣고 보지 못하였는지요?”
“일승의 교의(敎義)가 깊은 것을 드러내기 위하여 사리불이 이전에 불교에 들어오지 않았거나 소승(愚法)이었을 때는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였음을 보인 것입니다. 근기가 점차 익어가자 조금 이해하였으므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회(會)의 뒤에서 법을 들었으니 이것은 곧 일승(一乘)으로 전향(轉向)하여 들어오는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여기서 일승에 들어가는 성문들은 소승(愚法)의 성문들뿐인지요, 아니면 삼승 중의 성문들도 있는지요?”
“소승과 삼승의 두 교(敎)의 이승(二乘)이 모두 있습니다. 만약 일승에 들어가는 근기가 익었다면 여래 일대(一代)의 가르침의 대상이 모두 이 회(此會)에 있습니다.”
“어째서 성문들이 다른 회(會)들에는 없었는지요?”
“모습(相)에 입각하면 앞의 여러 회(會)는 오직 보살이 위계(位)에 따라 보살의 인과(因果)를 설하였으므로 성문들이 구별되는 모습(不共相)을 드러내기 위하여 없었습니다. 지금의 이 회(會)는 법계(法界)에 들어가는 마음과 법계에 들어가는 사람이 크고 무한함을 드러내기 위하여 그리고 법(法)을 얻고 덕(德)을 이루는 곳이므로 처음에 회심하는 사람과 마지막에 회심하는 사람들이 모두 참여 하였습니다.”
“여기서 보인 구별되는(不共) 모습은 이승이어서 구별되는 것인지요, 아니면 삼승의 대승 보살 등도 구별되는 것인지요?”
“만약 일승에 들어가지 못한 뜻에 의거한다면 모두 다 구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낮은 것을 따라 이승을 말하였을 뿐입니다.”
“이 회(會)에서 법계에 들어가는 사람에는 몇 가지 부류(品類)가 있는지요?”
“무한히 많지만 경전 내용에 입각하여 드러낸다면 두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즉, 처음에 부처님께서 사자분신삼매(師子奮迅三昧)에 들어가 드러낸 법계의 행덕(行德)을 보고 여러 보살과 천왕(天王)이 곧바로 법계에 들어가 불가사의한 법들을 얻는 것이 첫 번째 부류입니다. 이 부류는 깨달음에 임박한 단계의 사람들입니다. 이 보살 등의 부류는 불법(佛法)에 들어가 곧 부처와 같아지는 단계입니다. 법(法)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문수보살(文殊菩薩) 등의 여러 선지식이 자신들이 얻은 법으로 아래로 근기와 인연(因緣)의 중생들을 포섭하여 법계에 들어가게 하여 사리불 등과 선재동자 등의 사람들이 교화되어 법계에 들어가는데 그들이 두 번째 부류입니다.”
“선재동자가 선지식을 만날 때 들은 법문은 모두 들었을 때 깨달을 수 있었는지요, 아니면 들은 후 수행하여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는지요?”
“들은 법문에 따라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미 법문을 얻은 것이 되는데 인연득익(因緣得益)에서는 과거 무량겁 동안 모든 부처님을 만나 법을 듣고 공양하는 등의 여러 행을 닦아야 비로소 이 법문을 얻는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선재동자는 지금 비로소 부처님께서 설한 법문을 들었을 뿐 무량겁 동안 행(行)을 수행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법문을 얻은 것인지요?”
“이미 법문을 얻으면 곧바로 법성(法性)에 들어갑니다. 법성에 들어가면 곧바로 자신과 남이 둘이 아니며 삼세가 앞뒤가 없으므로 선지식이 얻은 인과(因果)와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법문이 곧 선재동자가 스스로 행하여 얻은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얻은 법문마다 모두 그 인과(因果)의 전후(前後)의 법이 모두 다 스스로 행하여 얻은 법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 행은 체(體)를 원인으로 하고 과(果)에 의지하여 이루어지므로 하나의 때를 움직이지 않으면서 곧바로 무량겁의 시간이 되니, 들은 법문마다 모두 무량겁 동안 수행하여 얻은 것이 됩니다. 어찌 닦지 않고 과보를 얻는 뜻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만난 선지식마다 인행(因行)을 발심한 때가 만약 같다면 여러 선지식이 들은 법도 다 같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여러 선지식이 발심하고 부처님을 만나 수행한 때가 다 다른지요?”
“법이 같지 않음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렇게 보였을 뿐입니다. 여러 같지 않음은 모두 같음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같지 않게 될 뿐입니다. 깊이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지엄 스님의 화엄경입법계품초(華嚴經入法界品抄 : 이 책은 현재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의 문장에서 ‘처음 보리심(菩提心) 법문에서 믿음(信)의 법문을 얻고 나서 일만 겁을 지나 성불하는 자는 행불(行佛)이지 위불(位佛)이 아니다’라고 하였고 영락경(瓔珞經)에서는 ‘십신(十信)은 행(行)에 있고 위(位)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일승에서 행불을 이루는 시간이 일 만겁이 걸린다는 것인지요, 아니면 삼승에서 행불(行佛)을 이루는 시간인지요?”
“여러 삼승의 경전에서는 일만 겁 동안의 십신(十信)의 행(行)이 완성된다고 하고 다시 삼승의 행불이 완성되는 곳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니 일만 겁이 걸려 완성되는 것은 삼승의 행이 완성된 부처가 아니고 일승의 행이 완성된 부처도 아닙니다. 다만, 일만 겁은 일만 겁을 움직이지 않은 불가설불가설(不可說不可說) 겁에 비로소 행불(行佛)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팔 만겁 등에서부터 일겁(一劫)이나 이겁(二劫) 등에 행불을 이룬다는 뜻은 마찬가지입니다.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공목장(孔目章)에서 이야기한 화엄경의 빨리 얻는 성불(成佛) 다섯 가지 중에서 보장엄동자(普莊嚴童子) 등 두 사람이 현재의 몸으로 성불하는 것(現身成佛)에 대해서는 그 모습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요?”
“보장엄동자는 이미 현재 몸으로 부처를 만나 법을 듣고 자분위(自分位)와 승진위(勝進位)의 여러 삼매문(三昧門)을 믿고 이해할 수 있었으니 곧 믿음이 완성되어(信滿) 성불(成佛)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도솔천자(兜率天子) 등은 이미 현재의 몸에서 곧바로 이구삼매(離垢三昧)의 일부와 여러 공덕을 얻었으니. 현재의 몸으로 보현보살 선지식에 이르렀고 미륵보살 선지식이 ‘미래에 내가 성불할 때 네가 나를 볼 것이다’라고 하였으므로 다음 생에 성불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이들은 문장의 내용에 의거하면 견문(見聞) 등의 세 위계를 삼생(三生)으로 한 것이므로 이렇게 말한 것일 뿐입니다. 실제에 의거하면 모두 다 동일하게 견문 등의 삼생은 한 생의 몸으로 성불하는 것입니다. 한 몸이라고 한 것은 법성신(法性身)이 분단신(分段身) 등의 몸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만약 연(緣)에 따라 성불을 드러낸다면 곧 삼승교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일승교의 실법(實法)에 의거하면 찰나찰나(念念) 마다 성불하는 것 등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 같습니다.”
의상은 입법계품(入法界品)의 의미와 주요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현신성불(現身成佛)에 관해 말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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