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물처럼 너그럽고 따뜻하게 흘러야♣
법정스님이 내비친 ‘출가 50년’ 소회
“젊은날 괴팍 많이 떤게 마음에 남아”
▲ 법정스님
싸락눈이 내리던 어느 겨울날, 책 읽고 사색하는 것을 좋아했던 스물두 살 청년은 홀연히 집을 나섰다.
전쟁의 포화(砲火)를 겪은 뒤 그는 세속적인 욕망의 끈을 놓아버리려 했다.
고통스러운 방랑(放浪)의 길을 떠난 지 2년, 경남 통영 미래사 (彌來寺)에서 청년은 효봉(曉峰) 스님으로부터
계(戒)를 받았다.
법정(法頂·74)스님. 그의 수행이 올해로 쉰 해를 맞았다.
출가(出家) 50년의 감회를 묻자 스님은 찻잔을 내려놓고 잠시 눈을 감았다.
“수행자에게는… 본래 세월이란 붙지 않는 것이지요. 헛 이름만 세상에 떨치고, 실속 없는 중 노릇만 하지 않았나
반성이 됩니다. 특히 출가 초기에 괴팍을 많이 떨었던 게 마음에 남는군요.”
젊은 법정은 혈기왕성한 승려였다.
“마치 억새처럼, 늘 서슬 퍼런 기세였다고 남들이 그러더군요.”
한 사진기자는 그를 만나러 산으로 올라왔다가 ‘눈빛이 너무 무서워’ 그냥 내려가기도 했다.
‘설사 부처가 가는 길이라도 누가 한 번 간 길이라면 나는 그 길을 따르지 않겠다’는 것이 선(禪) 불교의 가르침이기도
했고, 법정 역시 그렇게 살았다.
불교신문사 주필을 맡던 1960년대에는 신문에 ‘월남전 파병을 반대한다’는 글을 실었다.
2차대전 때 일본군이 쓰던 무운장구(武運長久)라는 말을 다시 끄집어내며 우리 젊은이들의 목숨을 내놓아서야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당시 총무원장이 ‘승적을 박탈하겠다’며 펄쩍 뛰었다.
“그때부터 제도권 불교와는 그만 인연을 끊은 셈이지요. 가타부타 언급하지 않았어요.
더구나 이젠… 나서지 않을 겁니다. 후배들도 많고….”
그 후에도 시국을 비판하며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던 어느 날, 법정은 정권에 대한 증오심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꿈틀거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증오심이란, 독을 품은 것이지요. 내 수행이나 인간 형성에도 도움이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975년, 촉망받는 중진 스님이었던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산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무소유’ ‘산방한담’ 등의 산문집을 내기 시작했다.
50년 동안의 수행 끝에 그가 이른 곳은 과연 어디일까.
“허허, ‘현재의 나’일 뿐입니다. 연륜 값을 하고 있는 건지, 수행자답게 살고 있는 건지 의문을 품으며 함부로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지요.”
오랜 칩거 생활에서, 그는 ‘고독’할 수는있어도 ‘고립’돼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의 한 생애에서 남는 것이란 재산도 명예도 아닙니다.
얼마나 주변 이웃에게 덕(德)을 베풀었는지가 중요하죠. 바로 덕이 사람의 근원적인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시인 류시화씨가 엮은 법정 스님의 잠언집
‘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조화로운삶 刊)가 출간된 12일,
스님은 서울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에서 열린 동안거 해제 법회에서
“보드랍게 흐르는 물도 한겨울 꽁꽁 얼어붙을 수 있듯, 우리들의 마음도 바늘 하나 꽂을 틈 없이 옹졸해질 수 있다”는
법문을 전했다.
“마음이 닫혀 있다면 오늘부터 모두 풀어 버리십시오. 마음이 물처럼 너그럽고 따뜻하게 흘러야 인생에서 화창하고
향기로운 봄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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