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법정)

맑고 향기롭게 5.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라-침묵의 눈

qhrwk 2022. 7. 2. 10:44

※ 과거는 강물처럼 지나가 버렸고,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과거나 미래쪽에 한 눈을 팔면 현재의 삶이 소멸해 버린다.
지금 아지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 수 있다면 삶의 죽음도 발붙일 수 없다.
저마다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라.

♣침묵의 눈♣

선가에 '目擊傳修목격전수'라는 말이 있다.

입벌려 말 하지 않고 눈끼리 마주칠 때 전할 것을 전해 준다는 뜻이다.

사람끼리 멀어지고 가까워 지는 것도 사실은 언어 이전의 눈길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말은 해설하고,또 주석을 달아야 하는 번거로움과 시끄러움이 따르지만, 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마주 보면 이내 알아찰릴 수 있고,마음속까지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래서 가까운 사이는 소리내는 말보다도 침묵의 눈으로 전하고 받아 들린다
그렇다 하더라도 눈은 어디까지나 '창문'에 지나지 않는다.사물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은 눈이 아니라 마음이다.

마음의 빛이 눈으로 나타날뿐,그렇기 때문에 창문인 그 눈을 통해 우리들은 그 사람의 실체를 파악하려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의 눈길에서 희망보다는 절망을 느끼는 경우가 더러 있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초점을 잃고 몽롱하게 흐려져 있는 눈,출세를 위해 야삭 빠르게 처신 하느라고 노상흘깃흘깃

곁 눈질을 하는 눈, 자기 뜻에 거슬리면 잡아먹을 듯 살기등등한 그런 눈으로 대할 때 우리는 살 맛을 잃는다.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의 오만하고 차디찬 눈초리는 그래도 견뎌 낼 수 있다.
하지만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어디 호소할 길마저 없는 사람들의 그 불행한 눈만은 도저히 견뎌낼 수가 없다.
하늘을 바라보고 땅을 굽어보는 그 눈이 우리들의 양심을 찌르고 있기 때문이다.

실컨 부림을 당하다가 아무 죄도 없이 죽으러 가는 소의 그 눈을 보라.
그러나 소고기 없이 밥을 먹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눈이 표현 하고 있는 생명의 절규를 읽어 내지 못한다.

나만 맛 있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니까.

생텍쥐페리의<인간의 대지>에서 조종사인 한 사나이는 비행기 사고로 조난을 당한다. 

그는 영하 40도의 추위 속에서 먹지도 못한채 몇칠을 걷다가 스러져 가물가물 사경을 해맨다.

그때 문득 아내의 얼굴이,동료들의 얼굴이 떠 오른다.

라다오 앞에서 자기가 살아 돌아오기을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그 눈들이 떠오르자,이제는 자기 자신이 구제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를 기다리며 떨고 있는 그 눈들을 구해 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뀐다.
그들의 기쁨과 슬픔이 자기 손에 달린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는 마침내 그들 곁으로 돌아간다.

아내와 친구들의 맑은 눈이 그를 살려낸 것이다.
맑고 선량하고 고요한, 그래서 조금은 슬프게 보이는 눈이 우리곁에 있다는 것은하나의 구원일 수 있다.

10여 년 전 산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수녀님의 눈을 두고두고 나는 잊을수가 없다.

그 눈길과 마주 쳤을때 내 안에서는 전율같은 것이 일어났다.
그것은 아득한 전생부터 길이 들어 온 침묵의 눈이었다.
그 눈은 밖으로 내닫기만 하는 현대 여성의 들든 눈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안으로 다스리는 맑고 고요한 수행자의 

눈이었다. 

진실한 수행자의 눈은 안으로 열려 있다.

내면의 길을 통해 사물과 현상넘머의 일가지도 멀리 내다 볼 줄 안다.

그때의 눈길이 때때로 나 자신을 맑게 정화시켜 주고 있다.
영원한 여성이 우리를 이끌어 올린다는 말은 조금도 빈말이 아닐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