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법정)

맑고 향기롭게 5.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라-수첩을 펼치면서

qhrwk 2022. 7. 2. 10:57

♣수첩을 펼치면서♣ 

해마다 연말이 되면 새해의 수첩을 사 온다. 수첩 끝에 붙어 있는 방명록난에 친지나 거래처의 이름과 주소와 

전화번호를 옮겨 적는다.
그런데 이 일이 요 몇 해 사이에는머리 무겁게 여겨져 자꾸만 미루다가 해가 바뀐1월 중순이나 하순에 가서야

하는 수 없이 큰맘 먹고 정리한다.
보다 단순하게 살고 싶어서 될 수 있는 한 엄격히 선별 하고 통제하여 그 칸을 해마다 줄여 오고 있다.

그러나 이 줄이는 일만은 굳이 연말이나 연초를 기다랄 것도 없이 안으로 어떤 결단이 있을 때마다 북북

그어 버린다.

내 의식의 분산을 막기 위해 가진 것들을 미련없이 정리 정돈 하듯이 내 속뜰에서 시들해진 그 자취를 지워 버리는

것이다.작년 것을 보니 열두군데가 지워졌고,올 해 수첩에는 무려 스물세군데나 지워졌다.지워진 곳이 남아 있는

곳보다 훨씬 많다.
 물론 수첩을 바꿀때는 빈칸이었다가 도중에 새로 써넣은 것도 더러는 있다.
 하지만 그 수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복잡한 세상살이에 견줄 때 산의 생활은 지극히 단순 명료하다. 

그렇기 때문에 수첩에 적어 놓은 일들을 보면 남들이 보기에는 너무도 싱거운일들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

어쩌다 길에 흘린 내 수첩을 누가 주워 본다면 미소를 머금고 주인에게 당장 돌려주고 싶을 것이다.

타인에게는 싱거운 일일지 모르지만 내게는 그 기록들이 결코,싱거운 일도, 작은 일도 아니다.

그러면 어떤 일들이 주로 적여 있는지 몇군데 펼쳐 보기로 한다.

부풀어 오랐던 매화 꽃망울이 지난밤 휘몰아친 눈바람에 많이 졌다.
속이 상한다(2월 22일)석축아래서 수선화가 문을 활짝 열었다.(4월7일)
보성 차 밭에 다녀오다.햇차의 신선한 향기, 모란 피어나기 시작.(4월 30일)
밀화부리 소리! (머슴새가 지난 주에 왔었지) 투명한 5월 햇살, 영롱한 아침이슬.
(5월7일)5월8일에는 첫 꾀꼬리 노래를 듣고, 이틀후에는 뻐꾸기도 왔다고 적었다.

언제 장마가 개고, 어느날 해질녘엔 무지개가 돋았고,김자은 언제 갈고,어느장에 가서 무슨 연장을 사오고,

무슨책을 읽고, 누구한데 편지 보내고 받고, 어디서 강연하고,누가 찾아오고,누워서 별을 쳐다보고....

주로 이런 기록들이다.

산에 들어와 살면서부터 해마다 꼭박꼬박 기록한 수첩이 어느덧 서른 개나 된다.
이곳으로 옮겨 올때 내 삶을 다시 시작하고 싶어 그때까지의 수첩은 모두 태워 없앴다.
태워 없애는 일은, 그때그때 자시 삶의 정리 정돈을 위해서는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난날의 너절한 찌꺼기에 걸려 현재의 삶이 개운치 않다.
내가 무슨 역사학도라고 대단지도 않은 기록을 남기겠는가.
언젠가는 이 봄도 태워지고 말텐데.

연말이면 행사처럼 아궁이 앞에 않아 편지도 태우고 사진도 불태워 없애고 불필요한 기록들도 불 속에 던져 버린다.

기록이란, 특히 우리처럼 단순 명료하게 살려는 사람들은 그 자체에 의미를 두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인 연장은 불필요하다.태워 버리고 나면 마치 삭발하고 목욕하고 난 뒤처럼 개운하고 홀가분해서 새 삶을

시작하고 싶은 의욕이 솟는다.

<금강경>에이런 구절이 있다.
"과거의 마음도 찾아볼 수 없고 미래의 마음도 찾아볼 수도 없으며,또한 현재의 마음도 찾자볼 수 없다." 

찾을 수도 얻을수도 없는 이 마음을 어디에 메어 두어야 한단 말인가. 찾을 수 없는 마음이라면 텅텅 비워

버려야 한다.
텅 빈데서 메아리가 울린다.

어디에도 집착이 없는 빈 마음이 훨훨 날 수 있는 자유의 혼을 잉태한다.
거울에 사물이 비치는 것은 거울 자체가 비어 있기 때문이다.
거울 속에 무엇이 들어가 있다면 거울은 아무 것도 비출 수가 없는 것이다.
좋은 친구란 서로가 빈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 사이일 것이다.
서로의 빈 마음에 현재의 자신을 비쳐볼 수 있는 그런 사이어야 할 것이다.
그 어떤 선입관념을 가지고는친구가 될 수 없다.맞은편의 빈 마음에서 메아리를 들을 수 있다면그때 비로서 속옛말을

터 놓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기 전에는 친구이고 싶을 뿐이지 진정한 친구가 되지 못한다.

칼릴 지브란은 그의 <예언자>가운데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친구를 사귐에는 오로지 정신을 깊이 하는일 말고는 딴 뜻을 두지 말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신을 깊이 한다는 것은 참으로 소망스러운 일이다.

정신을 깊이 하는 일을 통해서, 서로가 힘이 되고 빛이 되어 한없이 승화 할 수 있다.

형식논리적으로는 하나 보태기 하나는 둘밖에 안 된다.
그렇지만 정신을 깊이 하는 창조적인 우정에는 둘을 넘어 열도 백도 될 수 있다.
정신을 깊이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예절과 신의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 예절과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간에 창조적인 노력이 기울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범속한 사귐과 한때의 알고 지냄에 그치고 만다.


지난 여름 휴가철.내가 잘 아는 집 아무개 양이 집안에서 혼담이 오고가는 사이라는 청년을 데리고 왔었다.

그런데 날씨가 좀 덥다고 해서 그 청년이 파자마 차림으로 갈아 입는 것을 보고는 아연실책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같은 중이야 사람축에도 못 끼리까 실례될 건 없다 치더라도, 아직 결혼도 하기 전에 속옷 바람으로 마주 하고

있다니 버릇없고 무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결혼한 사람이라 해도 그렇지, 초면이라 당사자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이 내려간 뒤 그 '파자마'의 처남될

ㅅ군에게 가까운 사람일수록 예절을 지켜야 할 거라는 잔소리를 한참 해주었다.
물론 그들에게 전하라고 해서다.

우리가 친구를 찾는 것은 우리들의 좀 모자란 구석을 채우기 위해서이지, 시간이 남아 주체할 수가 없어서 찾는 것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예절과 신의와 창조적인 노력이 따르지 않으면 서로에게 아무런 덕도 끼칠 수 없다.

빈 꺼풀끼는 이내 시들해 지고 마는 법이니까.
그러니 상호간에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 그사이가 날로 새오워져야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된다.
"서로 살하되 사랑으로 앍매이지는 말게.마치 한 가락에 울리는 거문고 줄이지만
그 자리는 따로따로 이듯이." 역시 지브란의 말.

새해의 수첩은 구해 왔지만 아직 주소록은 옮기지 못했다. 

이번에는 더욱 엄격히 가려 내 삶의 행동 반경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다.
50여 년 전 내장산에서 살다가 돌아가신 학명 스님은 새해 아침에 이렇게 읊었다.

묵은해니 새해니 가리지 말게
겨울 가고 봄이 오니 해 바뀐 듯 하지만
보라고. 저 하늘이 달라졌는가
우리가 어리석어 꿈 속에 살지.
그렇다 하더라도 해가 바뀌면 저마다 자기 삶을 새롭게 다질수 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