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법정)

맑고 향기롭게 5.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라- 숲 속의 이야기

qhrwk 2022. 7. 2. 11:35


♣숲 속의 이야기 ♣


아침부터 안게비가 내리고 있다.대나무들이 고개를 드리우고,간밤에 핀 달맞이 꽂도 후줄근하게 젖어 있다.

이런날은 극성스론쇠지르레기도 울지 않고,괴꼬리며 밀화부리, 뻐꾸기,산까치,호반새, 휘바람새 소리도 뜸하다.
어제 해질녘,비가 올 것 같아 장작과 잎나누를 좀 들였더니 내 몸도 뻐근하다.

오늘이 산중 절에서는 삭발 목욕날, 아랫절에 내려가 더운 물에 목욕좀 하고 왔으면 싶은데,내려갔다 올라오면

길섶의 이슬에 옷이 젖을 것이고, 또 땀을 흘릴것을 생각하니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솥에 물을 데워 우물가 욕실에서 끼얹고 말까 보다.

숲속에서 살다보면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기분도 상쾌하여 사는 일 자체가 즐겁지만,

비가 오거나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은 심신이 더불어 무겁고 저조하다.
숲솟에서 함께 살아가는 새나 짐승들도 마찬가지다. 감정이 있는 유정들이라 사람이나 짐승이 크게 다를바가 없다.

때로는 정은 나누며 가까이 하다가도, 발 걸음이 뜸 해지면 까맣게 잊은채 관계의 줄이 느슨해 진다.
눈에서 멀면 마음에도 멀어지게 마련이니까.

몇칠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아침 여섯시면 어김없이 부엌에 내려가 아침 공양을 끓여먹는데,그날은 하던 번역일을 한 꼭지 마저 하고 내려

가려고 시간을 좀 늦추게 되었다.

여섯시 반쯤 되어 누가 덧 문을 두들겼다.

이른 아침에 웬 놈이 찾아 왔는가 싶어 마루로 나가 덧문을 열었더니 다람쥐란 녀석이 뽀르르 덧문에서 내려

껑충 뛰어갔다.

아침마다 똑같은 시간에 문을 열다가 그날 아침은 좀 늦었더니, 숲속의 한 식구인 다람쥐가 웬일인가 싶어 문을

두들긴 것이다.

창고에 놓아둔 밥밀콩을 지붕 밑 환기통으로 드나들면서 야금야금 죄다 먹더니, 그 밥값을 하느라고 나를 부른 것인가.

이토록 영특하고 귀여운 다람쥐를 대한 민국에서는 외화 획득에 눈이 어두워 가죽을 벗겨 팔아 먹은 적이 있다.
그 전 날 일을 고되게 하고 나면 어쩌다 깊은 잠에 빠져 예불 시간에 늦어질 때가 있다.

그런 때는 잠결에 누가 '스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벌떡 깨어난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데 분명히 들리는 소리, 그것은 아마 누구에게나 따르고 있는 '수호천사'의 소리일 것이다.

항상 그림자 처럼 따르고 있는 자아의 분신 같은 존재. 그러나 삶의 질서가 없거나 무디어지면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없다. 정신이 맑고 마음이 투명해야자기 분신의 소리를 들을수 있다.

이따금 장끼가 홰를 치면서 큰 소리로 울어대는 때가 있다.또 누가 올라 오는가
싶어 밖에 나가 보면 어김없이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다.
장끼 말이 나온 김에 꿩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겨울철이면 숲 속에 먹이가 시원잖아서인지 꿩들이 많이 뜰가에 내려와 어정거린다. 

처음에는 먹이(콩)를 뿌려 주어도 저만큼서 바라보기만 하지 선듯 다가서려 하지 않는다.

내가 몸을 비켜주면 그때 와서 먹는다.

사람을 못 믿어 하는 모양이다.

이렇게 조금씩 길을 들리다보면 까투리(암꿩)는 내 발부리에까지 와서 마음 놓고쪼아 먹는다.

그러나 장끼는 여전히 바라 보고만 있다.

어쩌다 밖에 나가 며칠만에 돌아 오면 까투리들은 나른 보자 마자 우르르 몰려든다.
이렇게 되면 모든 일을 제쳐 두고 그애들 먹이부터 먼저 뿌려 주어야 한다.
이런 꿩들이 몇칠동안 보이지 않으면 몹시 궁금하다. 혹시 매 한데 채어가지는 않았는가,혹은 다른 짐승한데 물려

가지는 않았나 싶어서다.

한동안 장끼고 까투리고 전혀 보이지 않더니,요 며칠전에 대숲속에서 병아리 만 한새끼 꿩들이 대여섯 마리

몰려가는 것을 보았다.

그동안 알을 품느라고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여름철에는 숲 속에 먹이가 많으니 뜰에는 잘 안온다.

이따금 장끼 소리만 들려올뿐.

숲 속에서도 인간의 도시에서 처럼 이따금 비정한 약육강식이 벌어진다.

그때마다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아주 다급하게 들린다.

하루는 해가 지고 어스림이 내릴 무렵 채소밭에서 풀을 매고 있는데,우물족 나무위에서 새들이 아주 다급하게

짹짹거렸다.
웬일인가 싶어 호미를 든 채 그쪽으로 가 보았더니 매가 한마리 날아와 새 새끼들을 채 가려고 노리고 있는 참이었다.

"예끼놈! 썩 안 물러갈래?" 하고 큰 소리로 고함을 쳤더니 매는 날아 가고 다람쥐가 나무줄길를 타고 내려 왔다. 

이웃의 위급함에 그도 한몫 거들면서 짹짹 거렸던 모양이다.
다람쥐가 꼬리를 쳐 들면서 짹짹거릴 때는 쇳 소리가 난다.


안개비가 이제는 굵은 빗 줄기로 바뀌었다. 안개는 저 아래 골짝이에 머물러 있다.
이런 빗 속에서도 태산목에서는 꽃 한 송이가 새로 피어났다.
내 눈에는 나무에서 피는 꽃 중에서 이 태산목꽃이 가장 청결하고 기품이 있고 좋은 향기를 지닌 것 같다. 

꽃이파리 하나가 꽃술을 우산처럼 밭쳐 들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생명의 신비앞에 숙연해진다.

일단 피어나기로 작정한 이상 비가 오가나 바람이 불지라도 피고야마는 꽃의 생태에서, 게으른 사람들은

배울 것이 많다.

위채 부엌문 위에서는 요즘 말벌이 집짓기에 한창이다. 

아침에 보니 벌써 작은 호박 덩이만 하게 지어 놓았다.

한 일주일쯤 전 집을 짓는 걸 처음 목격하고 더 커지기 전에 떼어 버려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제작년에도 저 말벌 때문에 나도 몇 차레 쏘이고 나그네들도 더러 쏘인 일이 있넜다.
남의 집에 붙어사는 처지에 주인도 몰라 보고 쏘다니 그 소행이 쾌씸해서 집을 헐어 버렸었다.

아, 그랬더니 집을 잃어버린 벌들은 며칠 도안 집자리를 맴돌면서 떠나갈 줄을 몰랐다.

그 정상이 측은해서 마음에 걸렸었다.

쩍쩍 달라붙는 소리가 거슬리고 또 쏘일까봐 일찍이 뜯어 버려야겠다고 벼르다가. 애써 지는 걸 보고
어제는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래서 벌들한데 이런 말을 해주었다.

"애 벌들아 나하고 약속을 하자.너희들이 나를 쏘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쏘지 않는다면, 집짓고 사는 것을

묵인 하겠다. 그러나 그 전처럼 주인이건 나그네건 한 사람이라도 쏘면 그날로 즉시 철거하게 될 것이다.

알아 들었지?"

언어의 길이 다르니 내말은 못 알아들을지라도, 모든 중생에 불심이 있다고 했으니 내가 한 말뜻은

전해졌으리라 믿는다.

이런 약속의 사실이 활자화되기까지 하였으니,내가 한 말에 대해 서 나도 끝까지 책임을 질 것이다.

이제는 또 토끼 이야기를 할 차레다. 

작년에도 케일 밭에 무단 침입하는 토끼를 물리치기 위해,밤에 등불을 켜고 라디오를 켜 놓았지만 소용이 

없더라는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먹이를 가지고 짐승과 다투는 일이 부끄럽게 생각되어 포기 하고 말았었다.

장마가 들기 시작한 어느날,큰절 일꾼이 우중인데도 케일 모종을 가져다 심어 주었다.
올해는 봄 씨앗을 뿌리고 나서 둘레에 망을 쳐 두었다.

그럼데 잎을 뜯어 먹을 만큼 자라니 밤이면 땅밑으로 토끼가 들어와 뜯어 먹고 부러뜨려 놓았다.

망 밑에 돌을 주워다 눌러 놓았지만 소용이 없었다.이걸 어떻게 할까 고심하던 중인데,하루는 대낮에 망안으로 

들어 왔다가 포식을 하고 나가려던 참에 인기척을 듣고 제 풀에 놀라 들어온 구멍을 잃어 버렸다. 

이리 뛰고 저리 부딛치면서 어쩔 바를 몰랐다. 

"예끼놈"하고 호통을 치니 더욱 놀라서 날뛰었다.
가까스로 땅을 헤치고 달아난 뒤로는 아직가지 얼씬거리지 않는다.
짐승도 크게 놀라야 정신이 드는 모양이다.

몹시 추웠던 한 해 겨울,눈까지 잔뜩 내려 쌓인 밤이었다. 

그때는 덧문이 없던 시절이라 외풍이 심해 깊은 잠을 못이루고 있는데.뒷문께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린가 싶어 문을 열자 잿빛 산토끼가 방안으로 뛰어들었다.
순간 깜짝 놀랐었다. 

춥고 배고파서 한 산중에 사는 이웃을 찾아온 손님을 혼연히 맞았다. 

광에서 고구마를 내다가 주고 하룻밤 재워서 보낸 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