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정 스님께♣
언제 한번 스님을 꼭 뵈어야겠다고 벼르는 사이 저도 많이 아프게 되었고 스님도 많이 편찮으시다더니
기어이 이렇게 먼저 먼 길을 떠나셨네요.
2월 중순,스님의 조카로부터 스님께서 많이 야위셨다는 말씀을 듣고 제 슬픔은 한층
더 깊고 무거워졌습니다.
평소에 스님을 뵙지 못해도 스님의 청장한 글들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큰 기쁨을 누렸는지요.
우리나라 온 국민이 다 스님의 글로 위로 받고 편화를 누리며 행복해 했습니다.
웬만한 집에는 다 스님의 책이 꽂혀 있고 개인적 친분이 있는 분들은 스님의 글을
표구해 걸어놓곤 했습니다.
이제 다시는 스님의 그 모습을 뵐 수 없음을, 새로운 글을 만날 수 없음을 슬퍼합니다.
'야단 맞고 싶으면 언제라도 나에게 오라'고 하시던 스님.스님의 표현대로 '현품대조' 한지 괘나 오래되었다고
하시던 스님.
때로는 다정한 삼촌처럼, 때로는 엄격한 오라버니처럼 늘 제 곁에 가까이 계셨던 스님, 감정을 절제해야 하는
수행자라지만 이별의 인간적인 슬픔은 감당이 잘 안되네요.
어떤 말로도 마음의 빛깔을 표현하기 힘드네요.
사실 그동안 여러 가지로 조심스러워 편지도 안 하고 뵐 수 있는 기회도 일부러 피하면서 살았던 저입니다.
아주 오래전 故정채봉님과의 TV대담에서 스님은
'어느 산길에서 만난 한 수녀님'이 잠시 마음을 흔들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는 고백을 하신 일이 있었지요.
전 그 시절 스님을 알지도 못 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수녀님 아니냐며 항의 아닌 항의를 하는 불자들도 있었고
암튼 저로써는 억울한 오해를 더러 받았답니다.
1977년 여름 스님께서 제게 보내 주신 구름모음 그림책도 다시 들여다 봅니다.
오래전 스님과 한께 광안리 바닷가에서 조가비를 줍던 기억도, 단감20개를 사들고 저의 언니 수녀님이 계신
가르멜수녀원을 방문 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어린 왕자의 촌수로 따지면 우리는 친구입니다.
'민들래의 영토'를 읽으신 스님의 편지를 받은 그 이후 우리는 나이차를 뛰어 넘어 그저 물처럼 구름처럼
바람처럼 담백하고도 아름답고 정겨운 도반이었습니다.
주로 자연과 음악과 좋은 책에 대한 의견을 많이 나누는 벗이었습니다.
'....그름 수녀님 올해는 스님들이 많이 떠나는데 언젠가 내 차레도 올 것입니다.
죽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죽음 현상이기 때문에 겸허히 받아들릴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날 그날 헛되이 살지 않으면 좋은 삶이 될 것입니다.....
한 밤중에 일어나(기침이 아니면 누가 이런 시각에 나를 깨워 주겠어요) 벽에 기대어 얼름 풀린 개울물 소리에 귀를
기울리고 있으면 이 자리가 곧 정토요 별천지임을 그때마다 고맙게 누립니다.'
2003년 제게 주신 글을 다시 한번 읽어 봅니다.
어쩌다 산으로 새 우표를 보내 드리면 마음이 푸른 하는처럼 부풀어 오른다며 즐거워하셨지요.
바다가 그립다고 하셨지요.
수녀의 조촐한 정성을 늘 받기만 하는거 같아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누군가 중간 역활을 잘못한 일로 제게 편지로 크게 역정을 내시어 저도 항의 편지를 보냈더니 미안하다 하시며
그런일을 통해 우리의 우정이 더 튼튼해지길 바란다고,
가까이 있으면 가볍게 안아주며 상처받은 맘을 토닥이고 싶다고,
언제 같이 달맞이 꽃피는 모습을 보게 불일암에서 꼭 만나자고 하셨습니다.
이젠 어디로 갈까요.
스님 ,스님을 못 잊고 그리워하는 이들의 가슴속에 자비의 하얀 연꽃으로 피어나십시요.
부처님의 미소를 닮은 둥근달로 떠 오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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