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하고 싶습니다 ♣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매 단정하고 콧날 반듯한 청년하나가 허연 입김을 내뱉으며 철길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눈은 겨울의 찬 공기처럼 투명하고 맑았다.
그는 감혹 왼족 가슴을 외투 밖으로 만지며 무언가를 확인했다.
아마 낡은 외투의 안주머니 속에 있는 서울행기차표를 확인하려는 듯 했다.
그의 이름은 박재철. 고향은 전남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였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사람들 가슴속에 켜켜이 쌓여 있는1955년, 청년의 심장은
겨울눈보다 더 차가워져 있었다.
그는 이제 24세,삶의 고통을 알기에 이른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2년전 정전한 전쟁의 고통으로 인해 보통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어리석음과 쾌활함을 잃었다. 그
건 비단 그 뿐이 아니었다. 같은 대학을 다니는 동년배나 또래들도 모두 극악한 조국의 현실에 맑은 눈빛을 잃은지
오래였다.
재철은 쏟아지는 눈을 보며 지난날 친구 박광순과 다녀왔던 흑산도의 푸른 바다를떠올렸다.
그 시퍼런 물에 자신의 가슴속에 있는 전쟁의 공포와 삶의 고통을 씻고 싶었지만 좀처럼 씻어지지 않았다.
재철은 고향의 대흥사를 떠 올렸다.
대흥사를 품고 있는 너른 두륜산이 그리워졌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야해.'
제철은 부모님을 더 올리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어려운 시절 대학까지 보내주신 부모님을 떠 올리면서 자신이
선택한길이 '올 바른 길인가'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지만 고민 끝에 한 결심을 쉬이 버릴 수도 없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
마침내 기차는 달리기 시작했다.
재철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낮익은 풍경을 보며 나지막히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부모님이 지어 주신 자신의 이름은 이제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제철은 스스로 이름을 부르자 울컥 울음이 치솟는 것을 느꼤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러나 그뿐이었다.제철은 그리움과 모든 과거를 삼켰다.
그는 그저 이 모든 번뇌를 끝내고 자유인이 되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그리고 뒤돌아섰다.
밤 기차는 가본적이 없는 미지의 세상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렸다.
''출가하고 싶습니다."
재철은 낮지만 또박또박한 어조로 말했다.
그의 앞에는 당대의 선승인 효봉스님(1888~1962년조계종 통합종단이 출범한 후 초대종정)이 마주하고 있었다.
서울은 고향 땅보다 더 춥게 느껴졌다.
재철이 도착한 안국동 선학원의 방바닥은 군불을 때 온기가 은은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네 생년월일이 언제이냐?" 효봉이라는 노승이 재철에게 물었다.
"1932년10월8일 생입니다." 효봉스님은 한참을 무언가 되짚더니 입을 열었다.
"네 뜻을 받아 들이마" 재철은 일어나서 조실방으로 갔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삭발을 하고 먹물옷으로 갈아 입었다.
재철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法頂법정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법정은 그 길로 다시 효봉스님을 찾아 말씀대로 따랐다고 하자 노승은 선뜻 모습이 변한 법정을 알아보지 못했다.
곁에서 누군가 방금 삭발하고 옷을 갈아 입은 행자라고 말하자
"허허,구참 같구나." 효봉스님은 웃으면서 감탄했다.
이제 막 출가한 법정은 구참이란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구참이란 오래된 중이란 뜻이었다.
효봉스님은 법정이 출가한지 한참 된 스님같이 보인다는 말을 한 것이다.
또한 법정에게 어울리는 옷이라는 뜻도 있었다.
법정에게 승복이 맞는 것인지 아닌지는 두고 볼 일이었지만 법정은 이제 막 삭발하고 먹물옷으로 갈아입고 나니
훨훨날듯 기분이 좋았다.
그는 그 길로 밖에 나가 종로통을 한바퀴 돌았었다.
약간 상기돤 법정의 얼굴은 그제야 보통의 20대 중반 청년으로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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