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효봉 스님♣
스승인 효봉 스님(1988~1966)은 법정 스님의 첫 인상에서 무엇을 떠 올렸을까.
법정은 그날에 대해서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효봉 스님도 마찬가지.그렇다면 효봉 스님은 어떤 분이었을까.
'인간이 인간을 벌 할 수 있을까.범부인 내가 무슨 권리로 사람을 죽게 만들 수 있나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인간의 길인가.'
효봉 스님의 속명은 이찬형이었다. 그는 일제 강정기 최초의 판사였다.
법의를 입은지 10년,1923년 평양복심법원(현재의 고등법원) 판사로 있었던 그는3일간 식음을 전폐하고 고뇌했다.
처음 내린 사형선고 때문이었다.
이 민족의 압제에 맞서 독립투쟁을 벌인 동포 사상범을 다뤄야 하는 그에게 법의는 출세와영광의 상징이 아니었다.
양심을 옥죄는 번뇌 그 자체였다.
"이 세상은 내가 살 곳이 아니다.내가 갈 길은 따로 있다."
이찬형은 가족과 판사직을 버리고 홀연히 떠났다. 3년간 엿판 하나 메고 팔도강산을 방랑하는 고행에 나섰다.
그리고 1925년 금강산 유점사를 찾아갔다.
거기서 신계사 보운암의 석두화상을 찾으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어디서 왔는가."금강산의 도인으로 이름 높던 석두 스님이 물었다.
"유점사에서 왔습니다." 이찬형은 대답했다.
"몇 걸음에 왔는고." 석두 스님은 방긋 웃으며 다시 물었다.
이찬형은 벌떡 일어나 방안을 한바퀴 빙 돌고 않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왔습니다." 석두 스님은 가만히 고개만 끄덕거렸다.
"십년간 공부한 수좌보다 낫네!"
곁의 한 노스님이 그렇게 말 하고서 껄껄 웃었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 했다.
스승을 찾아 헤매던 나그네와 제자를 기다리던 스승은 이심전심을 주고 받은 것이다.
이찬형은 그 길로 석두 스님에게 사미계를 받고 스님이 되었다.
그는 '절구통 수좌'라는 별칭으로 유명했다.
엉덩이가 물러 터져 깔고 않은 방석이 붙을 정도로 수행에 정진해 생긴 별칭이었다.
효봉은1937년 금강산과 작별을 고했다.
그의 발길이 머문 곳은 전남 순천 조계산의 송광사였다.
처음 찾아간 절인데도 아주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법정 스님은 말했다.
"스승은 삼일암 조실로 10년을 머물면서 수 많은 후학의 눈을 띄워주고 길을 열어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정혜쌍수의 구도관이 설정되었지요. 이어 해인사 가야 총림방장화상(住 持주지의 높임말)으로
추대 받아 알찬 인재를 길러냈습니다.
가야총림은현재 한국고승의 온상이었고 뒷날 교던 정화운동의 역군들도 이곳에서 수행한 인재들이었습니다."
그 후 효봉 스님의 생활은 검박했다. 흘러내린 촛농을 모아 심지를 박아 다시 불을 밝혀으며 걸레도 너무 심하게 짜면
빨리 떨어진다며 살살짜라고 했을 정도였다.
또한 효봉 스님은 시간관념이 철저했는데, 제자인 법정 스님이 찬거리를 사러 나갔다가 밥 지을 시간을 10분 넘겨
돌아 오자 점잖게 타일렀다.
"오늘은 공양을 짓지 말고 단식이다.수행자가 그렇게 시간관념이 없어서 되겠느냐?"
효봉 스님은 그렇게 준업하게 꾸짖고는 단식에 들어갔다.
법정 스님은 효봉의 일대기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스승은 施沕시물과 施恩을 무섭게 생각 했다.우물가에 어저다 밥알 하나만 흘려도 평소그렇게 자비하신 분이
화를 내곤 했다.
초 심지가 다 타서 내려않기 전에 새 초를 갈아 끼지 못하게 했다.수행자는 가난하게 사는게 곧 부자살림이라고 말씀했다."
또한 공동으로 노동을 하는 울력을 하는 것에 예외를 두지 않았다.
음력 4월 보름부터 석 달간 하는 하안거에 참여하려면 연등을 만드는 일을 비롯한 사월초파일 울력을 해야 했다.
효봉스님은 수행에 힌쓰느라 울력을 소홀히 했던 성철 스님이송광사에 방부를 들일 때 일갈했다.
"책보따리만 메고 다니면 안된다.울력도 함께 해야지."
효봉스님의 전설같은 일화는 이외에도 너무 많다. 이승만 대통령과의 일화도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어느날 효봉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께서는 새일이 어찌 되십니까?" 그러지 스님이 대답했다.
"生不生생불생 死不死사불사,살아도 산 것이 아니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거늘
이 늙은 중에게 무슨 생일이 따로 있겠소이까."
효봉 스님은 1966년 10월15일 새벽3시 예불을 올릴 즈음에 제자들에게 말했다.
"나 오늘 갈란다."
오전10시, 효봉 스님이 굴리던 호두알 소리가 문득 멈추었다.
법정 스님은 스승의 열반을 "장엄한 낙조' 라고 애도했다.
효봉 스님의 제자은 법정 스님뿐만이 아니다. 훗날 조계총림의 초대방장이 된 구산 스님이 맏상좌이고 환속한 제자중엔
시인 고은도 있다.

'무소유(법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무소유 삶-1.법정의 입산과 출가 -종교의 본질은 무엇인가 (0) | 2022.07.06 |
|---|---|
| 무소유 삶 1.법정의 입산과 출가-빨래판 같은 것 (0) | 2022.07.06 |
| 무소유 삶-1.법정의 입산과 출가-출가하고 싶습니다 (0) | 2022.07.06 |
| 무소유 삶-法頂 법정스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0) | 2022.07.06 |
| 무소유 삶-法頂 법정스님 추모의 글-이해인 수녀 (0) | 2022.07.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