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날 새벽, 한 청년은 단출한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집은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아직 잠들어 있는 부모와 현제들에게 말없이 작별인사를 고한 청년은 그 길로기차역으로 떠났다.
그가 갈 곳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저 떠나고 싶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그를 붙잡고 있었다.
가장 빨리 떠나는 기차에 올라탄 청년은 짊어지고 온 가방을 열어 잠시 망서렸다.
가지고 나온 여러권의 책중 어느 것을 읽을지 고민이 되어서였다.
짧은 망서림끝에 그는 집을 한권 들어 올렸다.
법정스님의 『무소유』였다
청년은 책갈피를 꽂아둔 곳을 펼쳐 이내 글속으로 빠져 들었다.
그것은 청년이 태어나기도 한참 전인1971년 에 발표된 글이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글의 제목은
'미리쓰는 遺書유서'였다.
"....사는 일은 곧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내 이름을 부를지라도 네, 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유서는 남기는 글이라기 보다 지금 살고 있는 '생의 백서'가 되어야 한다...그래도 혹시 평셍에 즐겨 읽던
책이 내 머리맡에 몇 권 남는다면, 아침 저녁으로 '신문이요!' 하고 나를 찾아주는
그 꼬마에게 주고 싶다.
장레식이나 제사같은 것은 아예 소용없는 일......육신을 버린 후에는 훨훨 날아서 가고 싶은 곳이 꼭 한군데 있다.'
어린 왕자'가 사는 별 나라,의자의 위치만 옮겨 놓으면 하루에도 해지는 풍경을 몇번이고 볼수 있다는 아주 조그만
별나라,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을 안 왕자는 지금쯤 장미와 사이좋게 지내고 있을까."
청년은 글을 읽어 내려 가면서 마음속에 사라지지 않던 어두운 그림자를 지웠다.
'이번 여행은 죽기 위해서가 아니야.살기 위해서야.'라고 청년은 되뇌었다.
그러자 조금은 마음이 편한해졌다. 도망치듯 떠나온 여행이지만, 그리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여행었지만 법정 스님이라는 친구가 있어 한결 안심이 되기도 했다.
청년은 기차가 지나가는 창밖을 바라 보았다. 산들이 어깨를 서로 걸머지고 서 있는 그 어느 곳엔가 법정 스님이나
혹은 법정 스님을 닮은 스님이 있을 건만 같았다.
그곳에서 작은 텃밭을 일구며 세상사에 초탈한 듯 그렇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만 같은 눈동자로 자신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을 듯했다.
청년은 자신을 바라 보았다.
'나는 누구인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람에게 위안이 되는 것이 무엇일까. 천 명의 사람이 있다면 천 명 모두에게 다 각기 다른 이안의
존재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공통된 무억가를 가진 적이 있었다.
그것은 이 땅에 존재하는 한 명의 구도자였다.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받아도 사람으로 인해 치유 되고 위안이 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법정이라는 법명의 스님은 전 생애를 걸쳐 사바세계의 민초들에게위안 그 자체였다.
그의 글을 읽으면 그가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던 것은 비단 필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던 지난3월 11일 법정 스님은 끝내 이 상을 저버렸다. 그날 오전, 법정 스님의 법구를 든 스님들이행지실에서
나오자 길상사를 채운 수천 명의 조문객들과 신자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무아미타불'을 읇조리기 시작했다.
법구가 자신들의 앞을 지나가자 '나무아미타불'를 외는 소리 속에 흐느낌이 녹아들었다.
그 흐느낌은 전차 높아져, 결국 울음과 통곡 소리로 바뀌었다.
그렇게 법정 스님은 사람들의 곁을 떠나가고 있었다.
법정 스님의 법구는 일체의 장레의식을 열지 말라는 유지에 다라 스님들과 신자,조문객이 지쳐보는 가운데 간소한
절차로 운구 되었다.생전 적을 두었던 송광사와 길상사의 제자들이 스님의 강원도오두막에서 평소에 사용하던 평상위에
법구를 모시고 가사를 덮은 뒤 천천히 극락전 앞으로 갔다.
법구는 극락전 앞 마당에서 부처님 앞에 간단한 인사를 올리는 의식 뒤 곧바로 영구차에 실려스님의 출가 본사안
송광사로 떠났다.법정 스님이 떠났다.
법정스님은 본인이 원하던 대로 어린완자가 살고 있는 그 조그만한 별나라에 가셨을까.그러셨길 진실로 바란다.
그런 세계가 있다면 그만큼이나 잘 어울리는 사람이 없을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무소유'의 정신을 일깨우며 대중에게
청빈한 수도자의 이미지로 남아 있지만 법정 스님만큼 세속의 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한 이가 많지 않기에 그런 마음이 간절하다.
지금은 다시 새벽, 중년이 된 청년은 더 이상 짐을 챙겨 집을 나서지 못한다.
소유한 것이 너무 많고, 잠들어 있는 아내와 자식들 때문인지도 머른다.
떠나지 못 하는 대신 책장을 더듬어 책을 하나 꺼내 든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였다. 한장 한장 다시 읽으며,밤을 밝혀 「법정 스님의 무소유의 행복」을 쓰게 된 까닭은
법정스님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을다시 한번 추억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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