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법정)

무소유 삶-1.법정의 입산과 출가 -종교의 본질은 무엇인가

qhrwk 2022. 7. 6. 20:44

♣종교의 본질은 무엇인가♣ 

수행중 깨달은 것도스승을 잃은 뒤에도 법정 스님에게 여전히 붙어 있는
화두는 '한국 불교의 현실' 이었다
법정 스님은 이미 '풋중 시절'인 해인사 선원에서 좌선을 익히고 강원에서 불교 경전을 대 했을 때부터 
한국불교의 현실 앞에 적잖은 회의와 갈등을 갖게 됬다.

법정 본인이 1990년, 한 신문에 벍힌 바에 따르면 그가 처음 겪어던 1950년대 한국불교는
"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본분을 망각한 채 전통과 타성에 젖어 지극히 관념적이고 형식적이며 맹목적인 
이런 수도 생활" 을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는 "선뜻 용해되고 싶지 않았다"라고 했다.
그의 이런 고민은 스승인 효봉 스님이 생전 행해 왔던'불교 정화 운동'과도 맞닿아 있었다.
불교정화 운동은 해방 후 아직까지도 남아 있었던 식민지적 제도 밎 법률을 철페하여 '자주 물교'를 세우고 
조선조의 억불정책의 족쇄로 인해 발생한 '산중 불교'를 극복하고 '민중 불교' 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또한 식민지하에서 오랫동안 망각해 온 불교의 민족사적 지위와 역할을 자각하는 의식적 과제를 들 수 있다
사실상 일제 강정기 36년간 일부의 선각자를 제외한 한국의 많은 승려들이 불교와 민족의 깊은 연관을 보지
못하고 자신의 민족사적 역활을 방관하거나 망각 한 채 친일적 행각을 자행 해온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법정의 고민은 이중 '민중 불교' 의 가치에 대해 가장 많은 고민을 했다.
그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한국불교사 1600년 동안 호국신앙을 제외한 현실 참여의 예가 극히 적었다는 
전이었기 때문이다.

入山俗離입산속리 하여 面璧座禪면벽좌선 하는 것이 득도의 진수라고  여겼던 당시 불교계의 뿌리 깊은 타성도
그의 생리에 맞지 않았던 것도 분명했다.
그런 고민에 바져 세월을 보내던 1960년 중 통도사에 계신 운허 스님에게서 한 통의 서찰이 왔다
."스님 자금을 댈 시주가 나타나 숙원이었던 '불교사전'을 만들까 하는데 통도사에 와서 편찬 일을 도와줄 수 
없겠소."

법정은 기껏이 동참했다.
1960년 초봄부터 이듬해 사전이 출간될 때가지 편찬을 도왔다.
이 기간에 4.19와 5.16을 겪었다.
법정은 운허 스님과 맺은 인연으로 해서 본인의 표현대로 하자면 '원고지 메우는 업'을 계속 했다.

1968년 한국불교 현대화의 최대 이슈로 부각된 우리말「불교 성전』을 준비 하면서 동국역경원이 개설된 후 
편찬 간사를 맡은 것이다.
1972년 12월 법정은 우리말「불교 성전』을 출간 하면서다음과 같이 말했다.
"불교적인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독자들이 보다 쉽고 바르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습니다."

「불교 성전』을 제작하는 5년여 간 법정은 산을 떠나 서울 강남구 삼성동봉은사 다래헌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 
그 기간 종교의 현실 참여를 준비하던 법정에게 새로운 길이 열렸다.
과거 불교사전을 만들때에는 사바세상의 일이라는 관점으로 4.19와 5.16을 겪었지만 봉은사는 그저 
사바세계라고 하기엔 사바세계가 너무 가까웠다.

그는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 앞에 섰으며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봉은사에서 머물기 시작한지 1년여가 지난1969년 신문에 게재된 '나무아미타불'이란 제목의 칼럼을 보면 
아직 30대인 법정을 발견 할 수 있다.

"....나무아미타불이란 '오,주여!' 가 아니라 '돌아가 귀의 한다는 뜻'....
그 세계에 가고 싶은 희망자는 나무아미타불을 지극하게 부르면 죽은 후에 그곳에서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토가 반드시 서쪽의 그 많은 국토를지나서만 있다고 할 수는 없다.

'마음이 곧 부처다.마음이 청정하면 바로 그 자리가 정토다'라는 교설로 보면 불교의 초점은 분명 내세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세에 있는 것....함께 살고 있는이 세계가지금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고 있건 아랑곳없이
초연하려 하는 종교인이 있다면그가 속한 종교는 현장 밖에서 말라 죽을 것이다.

지혜와 자비가 모든 이웃을 위해 청정하게 베풀어 지지 않고 나만의 이해관계때문에 기울어 진다면 그것은 
무한한 광명도 영원한 생명도 될 수 없다. 
시대의 불교도들이'나무아미타불'을 입의로만 외우고 몸소 행 하지 않을 때 골목안 꼬마들 뿐만 아니고일반 
대중들로 부터 날아 오는 돌팔매를 어떻게 감당 할 것인가."


이 글에서 법정은 종교인으로써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의 흔적을 역력히 드러내고 있다.
1971년6월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을 번역해 발간하면서 이렇게 밝히기도 했다.
"선은 순수한 집중을 통해 인간 존재의 실상을 자각하는 일이며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는 실존에의 길로 
다른 종교에서 찾아 볼수 없는 불교의 특색이다. 
사백년전 한국불교의 문제점을 파헤친 서산의 가르침이 바로 오늘 한국불교의 교훈이다."

법정이 그 많은 선승들 중에서 서산대살르 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서산대사는 당시 타락한 중을 가르켜 '박쥐중''벙어리 염소중''머리깍은 거사''가시 입은 도둑'이라고 규탄하고
"출가하여 중이 되는 것은 세상의 뜬 이름이다.따뜻이 입고 배부르게 먹을려고 한 것이 아니고 지혜에 눈뜨고
중생을 건지기 위함."이라고 피력한 바 있다.

법정은 이 구절을 상기시켜 수도승의 역사 의식과 사명감을 일깨우려 했던 것이다.
또한 "현대인은 소음에 휩쓸려 정작 들어야 할 진리는 듣지 못하는 공해의 피해자" 라고 정의하고
"종교는 연민의 정을 가지고 사회부조리를 지적하는 사회참여 의식이 요청된다."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