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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심법요] 6. 마음을 잊어버림

[전심법요] 6. 마음을 잊어버림 6. 마음을 잊어버림 9월 1일 대사께서는 배휴에게 말씀하셨다. "달마스님께서는 중국에 오신 이후로 오로지 한 마음만을 말씀하셨고 한 법만을 전하셨다. 또한 부처로써 부처에게 전하실 뿐 다른 부처는 말씀하지 않으셨고, 법으로써 법을 전하시고 다른 법을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법이란 설명될 수 없는 법이며, 부처란 취할 수 없는 부처로서 본래 근원이 청정한 마음이다. 오직 이 일승(一乘)만이 사실이고, 나머지 이승(二乘)은 참됨이 아니다. 반야는 지혜라는 뜻으로서, 모양이 없는 본래 마음이다. 범부는 도(道)에 나아가지 않고 단지 육정(六情)만을 함부로 하여 육도(六道)에 빠져 방황한다. 도를 배우는 사람이 한 생각 모든 견해를 일으키면 곧바로 외도에 떨어진다. 또한 남(生..

불교공부 2025.03.11

[전심법요] 5. 허공이 곧 법신

[전심법요] 5. 허공이 곧 법신 5. 허공이 곧 법신 팔만 사천 법문은 팔만사천 번뇌를 치료하는 것으로서, 다만 대중을 교화 인도하는 방편일 뿐  일체 법이란 본래 없다. 그러므로 여의는 것이 곧 법이요, 여의줄 아는 이가 곧 부처이다.  일체 법을 여의기만 하면 얻을 만한 법이 없으니, 도를 배우는 사람이 깨닫는 비결을  터득하고자 한다면, 마음에 어느 것이라도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부처님의 참된 법신은 마치 허공과 같다'고 한 비유가 바로 이것이다.  법신이 곧 허공이며 허공이 곧 법신인데도 '법신이 허공계에 두루하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허공 가운데에 법신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법신 그대로가 허공이며  허공 그대로가 법신임을 모른다. 만약 결정코 허공이 있다고 한다면 법신은 허공이 아..

불교공부 2025.03.11

[전심법요] 4. 일체를 여윌 줄 아는 사람이 곧 부처

[전심법요] 4. 일체를 여윌 줄 아는 사람이 곧 부처 4. 일체를 여윌 줄 아는 사람이 곧 부처 그러므로 도를 배우는 사람은 의심치 말아야 한다. 4대(四大)로 몸을 삼으나, 4대에는 '나(我)'가 없고, 그 '나'에도 또한 주재(主宰)가 없다. 그러므로 이 몸에는 '나'도 없고 '주재'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오음(五陰)으로 마음을 삼지만, 이 5음 역시 '나'도 '주재'도 없다.그러므로 마음 또한 '나'도 '주재'도 없을을 알아야 한다. 6근.6진.6식이 화합하여 생멸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18계(十八界)가 이미 공(空)하여 일체가 모두 공하고, 오직 본래의 마음이 있을 뿐, 맑아서 호호탕탕 걸림이 없다. 분별의 양식[識食]과 지혜의 양식[智食]이 있다.즉 4대로 된 몸은 주림과 질병이 ..

불교공부 2025.03.11

[전심법요] 3. 근원이 청정한 마음

[전심법요] 3. 근원이 청정한 마음 3. 근원이 청정한 마음 본래 부처 자리에는 실로 그 어떤 것도 없다. 툭 트이고 고요하여 밝고 오묘하며 안락할 따름이다. 스스로 깊이 깨달으면 당장 그 자리이므로 원만구족하여 다시 모자람이 없다. 설사 3아승기겁을 정진 수행하여 모든 지위를 거치더라도 한 생각 증득하는 순간에 이르러서는 원래 자기 부처를 깨달을 뿐, 궁극의 경지에 있어서는 어떠한 것도 거기에 더 보탤 것이 없다. 깨닫고 난 다음 지난 세월의 오랜 수행을 돌이켜 보면 모두 꿈속의 허망한 짓일 뿐이다. 그래서 여래께서는, '내가 아뇩다라삼막삼보리에 있어서 실로 얻었다 할 것이 없느니라. 만약 얻은 바가 있었다면, 연등부처님께서는 나에게 수기하시지 않았을 것이다'고 하셨다. 또 말씀하시기를, '이 법은 ..

불교공부 2025.03.11

[전심법요] 2. 무심(無心)이 도(道)

[전심법요] 2. 무심(無心)이 도(道) 2. 무심(無心)이 도(道)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것이 무심도인 한 사람에게 공양 올리 것만 못하다. 그것은 무심한 사람에게는 일체의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진여 그대로인(如如) 몸이 안으로는 목석같아서 움직이거나 흔들리지 않으며, 밖으로는 허공 같아서 어디에도 막히거나 걸리지 않으며, 주관 객관의 나뉨은 물론 일정한 방위와 처소도 없다. 후학들이 감히 법에 들어오지 못하는 까닭은 공에 떨어져 닿아 쉴곳이 없을까 두려워해서인데, 이런 태도는 막상 벼랑을 보고는 물러나서 거기다가 널리 지견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견을 구하는 자는 쇠털처럼 많아도 정작 도를 깨친 이는 뿔과 같이 드물 것이다. 문수보살은 이치(理)에, 보현보살은 행실(行)에 해당한다..

불교공부 2025.03.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