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글

가슴의 언어

qhrwk 2022. 2. 21. 08:48


가슴의 언어


타인을 믿는 사람은 자신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기독교인, 힌두교인, 이슬람교도, 불교인, 공산주의자나 그 누구도 자기 자신을
믿을 만큼의 용기가 없다.
그리고 그는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을 믿는다.

정말로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그대는 자신의 홀로 있음을 두려워한다.
그는 그의 홀로 있음을 두려워한다.
그대는 그대 자신의 홀로 있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를 필요로 한다.

두 사람 모두 홀로 있음을 두려워한다.
그대는 둘이 같이 있으면 그대의 홀로 있음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두세 배가 될 뿐이다.
따라서 모든 관계는 더 많은 불행과 근심을 낳는다.

신앙도 마찬가지이다.
그대는 왜 예수를 믿는가?
그대는 그대 자신을 믿지 못하는가?
왜 그대는 고타마 붓다를 믿는가?
그대는 그대 자신을 믿지 못하는가?
그리고 그대는 자신을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고타마 붓다를 믿을 수 있는지
그 의미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기본적으로 그것은 남의 믿음이 아닌 ‘그대 자신’의 믿음이다.
고타마 붓다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대가 자신을 믿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으며, 그대는 기만하고 있는 것뿐이다.
그대가 누군가를 믿음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기만하기는 쉬울지 몰라도 그것은
 ‘그대 자신’의 믿음이다.

공허한 사람의 믿음, 자기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믿음,
완전한 어둠과 무의식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믿음, 믿음 없는 사람의 믿음이다.
모든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믿는 것이 전 세계적인 질병으로 만연해있다.
예수마저 신을 믿는다. 그는 자신을 믿을 만큼 용감하지 못하다.

그대는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예수를 믿는다.
그리고 그는 신을 믿는다.
물론 우리는 신이 누구를 믿는지 알지 못하지만, 그는 또 다른 누군가를 믿을 것임에 틀림없다.
믿음이 없고 신앙이 없는 사람들의 끝없는 연결고리이며,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공허함을 충족시켜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 공허함을 충족시켜줄 수 없다.

그대는 자신의 공허함을 마주해야 한다. 그대는 그것을 살고 그것을 수용해야 한다.
그리고 그 수용 속에서 위대한 혁명, 위대한 발견이 일어난다.
자신의 홀로 있음과 공허함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 본질은 변화한다.
그것은 정반대의 것, 풍요로움, 성취감, 에너지, 기쁨이 흘러넘칠 것이다.
신뢰한다면 이러한 흘러넘침을 통해서 그 의미를 갖게 되고, 우정이 일어나면 그것은
중요해지고, 사랑이 일어나면 단지 말이 아니라 가슴의 언어가 될 것이다.

<오쇼의 차라투스트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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