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2.산에는 꽃이 피네 - 농촌을 우리 힘으로 살리자
♣농촌을 우리 힘으로 살리자♣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저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스승은 불타는 눈동자로 제자를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에서는 구원久遠의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제자는 이윽고 침묵 속에서하는 스승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질문이 그대의 존재 가장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메아리가 되게 하라.
항상 그 메아리 속에서 살라.
한 순간도 그 질문을 잊지 말라.
그대 삶의 매순간이 그 질문 속으로 녹아들 수 있도록 하라.
그러면 그대는 언젠가 그 해답을 찾게 되리라."
눈이 내려 쌓이고 있다.
얼어붙은 개울가에서 버들강아지가 솜털 얼굴을 내밀고 있다.
한겨울 속에서도 봄을 잉태하고 있는 것이다.
추운 겨울철이 없다면 버들강아지의 존재는 우리 눈길을 끌지 못할 것이다.
모진 추위에도 움츠러들지 않고 싹을 틔우고 있는 버들강아지의
그 강인한 생명력이 정다운 모습으로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올 겨울 들어 쌀을 비롯한 농산물 수입개방 소식이 세모의
우리 마음을 더우 썰렁하게 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들은 산업사회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도 의식은
전통적인 농경사회에 뿌리를 깊숙이 내리고 있다.
이해관계와 수지타산에 약삭빠르고 냉혹하기 짝이 없는 국제사회에서
뒤떨어진 농경에 연연하고 있는 것이 어떻게 보면 부질없는 고집으로 여겨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의 삶 자체가 날이 갈수록 닳고 시들어 가는 세태여서 직접 자연과 마주하여
생산해 내는1차산업은 그만큼 인간의 선 자리를 든든하게 만든다.
흙은 모든 생명의 의지처요 고향이기 때문이다.
다른 분야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소득이 형편없이 낮고,
교육과 문화시설 등 여러 가지 사회적인 여건이 몹시 열악한 오늘의 우리 농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참고 견디면서 피땀흘려 일하는 농촌이 있었기 때문에
이 나라가 그나마 오늘을 이루게 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농림, 어업 등 1차산업이 전체 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7.7퍼센트이고,취업 인구는 전체의 16퍼센트에 불과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정책 당국에서는 소수라고 해서 소홀히 다루거나 무시햇는 안 된다.
대지를 경작하고 상대는 1차산업의 득실을 겉에 나타난 숫자로만 따지지 말아야 한다.
인간의 심성과 국민적인 정서는 형식적인 수치만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불가사의한 영역이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이란 말은 단순히 농경사회에서만 통용되던
찬사가 아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먹지 않으면 살지 못한다.
사람이 먹는 것은 땅에서 나는 곡식과 푸성귀와 열매와 그 언저리에서 그르는 생물 등이다.
그러므로 농업이 인간의 생업 중에서도 가장 근원적인 뿌리라는 말은 만고의 진리다.
우리는 '농어촌 구조 개선사업' 이란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수없이 들어왔다.
선거 때마다, 또는 농어촌에 어떤 문제가 제기됐을 때마다 정부 당국이 입버릇처럼 한 말이다.
그러나 역대 정권에서는 말의 잔치로만 그쳤을 뿐 제대로 실행을 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 '구조 개선' 이란 말이 다시 나오게 된 것이 아닌가.
개혁을 내세운 문민정부에서 국민 앞에 한 약속이니 속는 셈치고 한번 더 지켜볼 일이다.
국제 경쟁사회에서는 '절대 불가' '결사 저지'라는 의지가 잘 안 통하는지
굳게 닫으려던 문이 마침내 열리고 말았다.
기왕에 이렇게 된 상황이라면 '불가'와 '저지'만을 외칠 게 아니라 도전에 대한
응전의 자세를 가다듬을 때가 온 것이 아니겠는가.
뒤로 물러앉는 소극적인 수세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적극적인 공세로, 방어적인 자세에서 전진적인 공격으로 정책을 바꾸어 봄직하지 않은가.
우리는 역경에 처했을 때 강한 민족이었다.
몽골의 침공을 받았을 때 보인 그 항몽의 기상과 임진, 정유의 왜란을 극복했던
그 끈기와 의지가 우리 겨레의 핏줄에는 지금도 연면히 흐르고있을 것이다.
맑게 갠 날과 잔뜩 흐린 날은 같은 하늘 아래서 일어나는 음양의 조화다.
즐거움과 괴로움도, 건강과 질병도, 행복과 불행도 따로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삶의 뿌리에서 나누어진 가지들이다.
문제는 그 현실을 어떻게 보고 받아들이며 또한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이 열린다.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 닥쳐 왔기 때문에 거기에 대응하여 필사적인 노력으로
극복하다 보면 우리 잠재력이 새롭게 분출될 수 있다.
여기에 삶의 묘미도 따르게 마련이다.
강대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부추긴 무역전쟁에서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미래를 내다보는 정부의 현명한 정책과 경쟁력을 갖춘 기업의 활동과 윤리에 못지 않게,
소비자인 국민의 의지와 선택이 무엇보다도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한때 뜻있는 젊은이들 사이에 '양담배 피우는 녀석들 5분간 째려보기'
운동(?)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째려보는 눈도 없을 뿐 아니라 그 판매량이 날로 늘어가는 실정이다.
값싼 외국 농산물이 들어오더라도 소비자 개개인이 민족적인 자존과
우리 땅을 우리가 지킨다는 의지로 거부한다면 그렇게 걱정될 일만은 아닐 것 같다.
그러나 우리의 단점인 그 '건망증'때문에 걱정 근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명심하자, 우리 것을 우리가 지키자.
우리들의 고향인 농촌을 우리 힘으로 살리자.
<9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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