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2.산에는 꽃이 피네 - 밖에서 본 우리
♣ 2.산에는 꽃이 피네 - 밖에서 본 우리♣
잠시 밖에 나와 이 글을 씁니다.
파리 근교 토르시의 '작은 숲'이라는 조용하고 깨끗한 동네에, 송광사 파리 분원으로 명상의
집이 마련되었습니다.
2년 전 유럽 여행길에 파리에 들렀을때, 이곳 교민과 유학생들의 요청으로 몇 차례의 집회를
가진 바있었는데. 그때 오고 간 이야기들이 씨앗이 되어길상사吉祥寺라는 조촐한 절이
이번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일에는 많은 사람들의 성원과 열의와 물질적인지원이 뒷받침되었습니다.
유럽의 관문인 파리에 한국절이 생겼다는 것은 한국 불교의 유럽 진출이라는 외형적인
사실보다도, 우리 한국인의 종교적인 의지와 그 삶의 모습이 유럽 사회에 선보이게
된다는 점에서 무거운 책임과 사명이 주어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이 명상의 집은 현지 불교 신자만의 집합 장소로 그치지 않고, 우리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유럽 사회에 알리고 심는 역활도 함께 할 수 있기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물질문명의 여파로 인간의 설자리가 날이 갈수록 위축되고 있는 암담한 오늘,
인류의 미래에 희망을 갖게 하는 일은 동양의 지혜인 명상을생활화 함으로써 그 통로가
열리리라고 기대됩니다.
밖에 나와서 보면 안에 있을 때보다도 우리의 실체가 더 환히드러나 보입니다.
이곳에 와서 양식 있는 교민들과 유학생들을 만나보고, 그들의 눈을 통해 새삼스레
우리 얼굴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많이 나아져 가고는 있지만, 아직도 국제사회의 수준에는 미흡하다는 단서를 달면서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빨리빨리' 의 조급함을 우리는 아직도 몸에 달고 다닙니다.
유럽 어디를 가나 한길의 교차로에서 푸른 신호등으로 바뀌기 전에 차가 성급히
출발하는 일은 보지 못했습니다.
신호등이 없는 뒷거리에서도 정지 표지판이 있으면 지나가는 차나 통행인이 없더라도 반드시
일단 멈추어 서는 것이 예절이고 질서입니다.
우리나라 관광객이 많이 드나드는 나라에서 '빨리빨리' 라는 말만은 현지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실정입니다.
기껏 달려 봐야 두 시간밖에 더 갈 데가 없는 동강난 비좁은 땅덩이에서 우리 경제력에 힘겨운
막대한 예산으로 고속전철을 놓아야 하는 것도 이 빨리빨리의 조급함이 뒷받침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저 빨리빨리에 밀리고 있는 우리는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마주치는 길거리에서 어깨를 툭툭 치며 지나가면서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는 것도
우리가 고쳐야 할 무례하고 이기적인 동작입니다.
이도 또한 빨리빨리에서 온 형태일 것입니다.
우리도 이제는 우리 것에 대한 긍지와 자존과 자신감을 챙겨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해외 유학에 대한 문제인데, 많은 돈과 정력을 들여서해외에서 배운 것만큼 실효를
거둘 수 있는가하는 의문입니다.
한마디로 말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지만, 당사자의 자질과 그역량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해외로 유학을 보내기만 하면 크게 되는 걸로 잘못 생각하는 부모들이 더러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견문을 넓히면서 배우고 익히는 일이 인간 형성의 길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학구적인 열의와 탐구력과자기 주관을 지닌 소수에 국한되는 경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해외유학' 이라는 허울좋은 이름에 팔려 공연히 돈과 시간과 체력을
소모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 염려가 됩니다.밖에 나와 보면 여러 곳에서 목격되는
떨떠름한 현실입니다.
현지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특히 여학생의 경우 믿을 만한 친지나 미리 거처를 마련해 놓지
않고 무턱대고 나와서 방을 구하려고 할 때 예상 못했던 일들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유럽 어디를 가든지 외국인들이 방을 구하기는 지극히 어렵습니다.
현지의 언어도 제대로 소통되지 않는 상태에서 방을 구하려고 하면,자연히 이 사람
저 사람의 도움을 받게 마련인데 이 과정에서 불미스런 일이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이런 경우를 노리는 못된 외국인과 내국인이 있다고 하니 조심할 일입니다.
이곳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니는 몇몇 교민의 자제들을 만나 이야기하면서, 우리 교육이
얼마나 인간을 괴롭히는 잘못된 교육인지를 실감합니다.
우리 학생들은 입시 지옥에 잔뜩 주눅이 들어 청소념으로서 지녀야 할 정상적인 정서를
지닐 수가 없습니다.
늘 무엇에 짓눌리고 쫓기는 초조하고 불안한 얼굴들입니다.
성장 과정부터가 이러니 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한국인의 인성과 인격에 적잖은 문제가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이곳 학생들 얼굴에는 그런 그늘이 전혀 없이
젊음으로 활달하고 생기에 넘쳐 있습니다.
공부나 연구를 해도 혼자가 아니라 친구와 함께 할 수 있는공동 과제를 준다고 합니다.
우리 교육은 앞을 다투어 수석을 차지하도록 부추기는 교육, 경쟁심만 잔뜩 조장하는 그런
비인간적인 교육이 아닙니까.
서로 도와가면서 함께 협력하는 교육환경 아래서 자란 사람들과 국제사회에서 그 역량을
겨룰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뻔한 일입니다.
우리가 신 한국을 창조하려면 하루바삐 비인간적인 교육에서 탈피,인간을 위한 교육으로
그 제도가 크게 혁신되어야 합니다.
가을 날씨로 치면 이 지구상에서 우리가 가장 혜택받는 나라일 것입니다.
우리가 마시는 식수는 뭐니뭐니 해도 아직은 양호한 편입니다.
우리의 국토와 하천이 허물어지거나 더럽혀지지 않도록 지키고 보살피는 일을,이 시대
이 땅에 사는 우리의 의무요 사명으로 여겨야 합니다.
요즘 이 고장의 날씨는 변화가 무쌍해서 우리 가을 날씨가 더욱 귀하게 여겨집니다.
평안히들 계십시오. (파리에서)
<9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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