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말씀

[마음으로 읽는 부처님 말씀] 부처님도 환자를 간호했다

qhrwk 2024. 8. 12. 15:06

[마음으로 읽는 부처님 말씀] 부처님도 환자를 간호했다

제자도 없는 아픈 비구는 대중이 차례로 보살펴야 
병든 수행자 돌보는 소임 총림서는 ‘看病’이라 칭해

부처님이 왕사성 죽림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그때 어떤 비구가 위중한 병을 앓아 누워있었다.

그는 제힘으로 일어날 수도 없고 대소변을 가리기도 힘들었지만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었다.
이를 알게 된 부처님은 그를 찾아가 위로했다.
“어떤가. 좀 차도는 있는가? 간호는 누가 하고 있는가?”
“저의 병세는 갈수록 더해 좋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간호하는 이도 없습니다.”

부처님은 그에게 병들기 전에 누구를 간호해준 적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없다고 했다.
 “그대가 문병을 다니지 않았으니 좋은 복을 짓지 못한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걱정하지 말라. 내가 친히 간호하여 걱정이 없게 하리라.”

동행한 제자들은 민망해 하면서 자신들이 병든 수행자를 보살피겠다고 했다.
“그러지 말라. 내가 하리라. 그대들은 병든 수행자를 외면했지만 나는 부처가
되기 전 보살행을 닦을 때 비둘기 한 마리를 살리려고 목숨을 던졌다.
하물며 지금은 불도를 이루었는데 어찌 이 수행자를 외면하겠는가. 그럴 수는 없다.
나는 일체의 병자를 돌보아주고, 구호할 자가 없는 자를 구호해주고,
장님에게는 눈이 되어주려고 한다.”

부처님은 손수 비를 들고 더러운 곳을 쓸었다. 자리를 다시 깔고, 옷도 빨았다.
그를 부축해서 깨끗한 물로 목욕을 시킨 뒤 돌평상 위에 앉아서 그에게 밥을 먹여 주었다. 

식사가 끝나자 부처님은 그를 위해 설법을 해주었다.
“수행자여. 그대는 이제 삼세의 모든 병을 다 버려야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면 다 늙게 되고, 

늙으면 또한 병들게 된다. 병이 생기면 앉거나 눕거나 신음하고 사백사병(四百四病)이

한꺼번에 닥친다.

 병으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면 정신과 육체는 갈라져 나쁜 세계로 가게 된다.
다행히 지금 그대들은 사람으로 태어나 불법을 만났다.
모든 감각기관이 온전해서 바른 법을 들을 수 있다.
이럴 때 열심히 수행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다.”

부처님은 다시 아난다를 시켜 수행자들을 강당으로 모이게 한 뒤 이렇게 가르쳤다.
“그대들은 스스로 집을 떠나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하는 수행자들이다.
젖과 물과 같이 어울려야 하거늘 서로 잘 보살피지 않는다. 그러면 안된다.
앓는 사람이 있으면 서로 보살펴야 한다. 만일 앓는 비구에게 제자가 없거든
대중이 차례를 정하여 보살펴야 한다.

병자를 돌보는 것은 곧 나를 돌보고 공양하는 것과 같다.
그 공덕은 어떤 것보다 크다. 만일 수행자로서 병자를 보고도 돌보지 않으면
계율로써 다스리도록 하라.”                                      

 -증일아함 40권 구중생거품(九衆生居品) 제7경 

혼자 사는 수행자에게 가장 힘든 일은 병이 났을 때다.
세속사람은 부모형제나 자식이 있어서 병든 사람을 간호해주지만 수행자는
보살펴줄 사람이 마땅하지 않다.
그래서 부처님 당시부터 수행자들에게는 병든 도반을 보살펴 주는 특별한 의무가
부여됐다. 만약 병자를 방치하면 계율로써 다스리게 했다.
이는 율장에도 나온다.

 뒷날 총림에서는 병든 수행자를 전담해서 보살피는 소임을 따로 두기도 했다.
이를 ‘간병(看病)’이라고 한다. 요즘 병원에서 환자를 돕는 ‘간병인’은 여기서
유래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는 큰절에 가면 늙고 병든 스님이 기거하는
서별당(西別堂)이라는 집이 따로 있었다.

해가 서산으로 떨어지듯 이별을 준비하는 곳이라는 다소 쓸쓸한 이름이지만,
원래는 ‘늙고 병든 수행자를 편안하게 모시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교단은 다른 제도는 다 현실에 맞춰 세밀하게 규정하면서도
 병든 수행자에 대한 간병 문제는 소홀하다. 부처님이 아시면 혼날 일이다.

홍사성 〈불교평론〉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