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한시 감상

흘러간 세월도 청산에 뜬 먼지인가

qhrwk 2025. 5. 30. 06:50

 

흘러간 세월도 청산에 뜬 먼지인가

伽藍却是新羅舊
가람각시신라구
절은 본래 신라의 옛 절

千佛皆從西竺來
천불개종서축래
천불은 모두 서축에서 왔다네.

終古神人迷大隗
종고신인미대외
옛적에 신인이 대외(도인)를 찾다 길을 잃었으니

至今福地似天台
지금복지사천태
지금은 복된 땅 천태산과 같아라.

春陰欲雨鳥相語
춘음욕우조상어
봄날은 흐려 비가 오려나, 새들이 지저귀고

老樹無情風自哀
노수무정풍자애
늙은 나무 무정한데 바람은 절로 슬퍼구나.

萬事不堪供一笑
만사불감공일소
만사는 한 번의 웃음거리도 못되니

靑山閱世只浮埃
청산열세지부애
흘러간 세월도 청산에 뜬 먼지인가.

개성 송악산에 복령사라는 절이 있었다.
이 시는 복령사라는 제목으로 쓰진 박은(朴誾:1479~1504)의 시이다.
박은은 조선조 연산군 때의 시인이다.
어려서부터 천재적 재능이 있어 4살 때 책을 읽고 15살에 문장에 통달했다고 한다.
18세에 급제한 뒤 사가독서(賜暇讀書)에 뽑혔다.
사가독서란 조정에서 젊은 학자를 뽑아 휴가를 주어 고요한 곳에 머물며 책을 읽게 하는
제도였다. 그러나 그는 20살 때 유자광과 성준을 탄핵했다 파직을 당했다.
불우한 생애를 산 천재 시인이었다.
아내 신씨가 100일이 안된 막내아들을 남겨두고 돌아간 뒤 갑자사화에 연루되어 26세에 효수를 당했다. 이 시도 한시의 역사상 수작으로 꼽는 시이다.

 

※ 청대(淸代) 화가 엄승손(嚴繩孫)의 <深山讀書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