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한시 감상

백두산 바위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qhrwk 2025. 10. 25. 07:06

 

 


백두산 바위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白頭山石磨刀盡
백두산석마도진
백두산 바위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豆萬江水飮馬無
두만강수음마무
두만강 강물은 말이 마셔 없게 하리

男兒二十未平國
남아이십미평국
남아가 스무 살이 넘고도 나라를 평정하지 못한다면

後世誰稱大丈夫
후세수칭대장부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불러 주리오.


 조선조 역사 속에 비극적인 생애를 살았던 인물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남이怡:1441~1468) 장군처럼 아깝게 일찍 생애를 마친 이도 드물다.
 위의 시는 북정가(北征歌)로 알려진 남이의 시이다. 남이는 태종 이방원의 셋째 딸인
정선(貞善)공주의 손자였다. 또한 정도전과 더불어 조선조 개국공신으로 알려진
권람(權擥:1416~1465)의 사위이기도 했다. 권람은 좌의정을 지냈다.

선천적인 무관(武官)의 기질을 타고났던 남이는 17살에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세조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다. 25살 때 여진족을 정벌하고 이시애의 난을 평전한 후 27에
병조판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세조가 돌아가고 예종이 왕이 되면서 그에게는 불운한 기운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가 여진족을 물리치고 지은 북정가 때문에 당시의 간신 유자광의 모함에 걸려 처참한
죽음을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28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예종도 남이를 싫어했다. 어려서 궁중에서 같이 자라기도 한 인연이 있었지만 예종은
남이를 어렸을 적부터 시기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유자광(柳子光)이 남이가 역모를 꾀했다고 무고하여 예종에게 고하면서 북정가 3구
男兒二十未平國을 아니 미(未) 자를 얻을 득(得) 자로 바꾸어 男兒二十未得國)이라 하여
이것이 역모를 꾀한 증거라고 했다.
그리하여 그는 처참한 최후를 맞고 그의 어머니 마저 잔혹한 형벌에 숨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