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근현대 중국 서화가 오작인(吳作人)의 행서(行書)
우물가 오동잎 쓸쓸히 흔들리고 /백 거 이
井梧凉葉動
정오량엽동
우물가 오동잎 쓸쓸히 흔들리고
隣杵秋聲發
인저추성발
이웃에 다듬이질 가을 소리 들린다.
獨向檐下眠
독향첨하면
처마 밑에 홀로 누워 언뜻 졸다가
覺來半牀月
각래반상월
깨어보니 평상에 달빛 반쯤 들었네.
오동나무 개오동 벽오동
“가을밤에 홀로”(古月獨夜)라는 제목의 백낙천의 시이다.
가을밤의 서정이 진하게 느껴진다.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상이 가장 맑고 쓸쓸해지는
계절이 가을이다. 더구나 가을 달밤은 사람을 애수에 젖게 한다.
온갖 회포에 젖어 상념에 잠기며 달빛 젖은 사색의 다리를 건너는 가을 밤의 엘레지가
들리는 것 같다.
이 시의 작자 백거이(白居易:772~846)는 당나라 시인 중 가장 많은 시를 남긴 사람이다.
자는 낙천(樂天)이며, 호는 향산거사(香山居士)이다. 취음(醉吟)선생이라고도 하였다.
가난한 지방 관리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16세 때 시단에 이름을 알렸고, 29세 때 과거에
합격해 순조로운 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정치적 이상에 불타, 문벌 출신의 관료와 궁정을 지배하는 환관 세력의 악에
대항하는 강직한 선비로 알려졌다. 풍유시의 대부분과 「장한가(長恨歌)」는
이 시기의 작품이다.
그의 거리낌 없는 언행은 권력자의 미움을 샀고 결국 44세 때 월권행위를 구실로 강주(江州)
지사고문(知事顧問)이라는 한직으로 쫓겨났다.
3년에 걸친 그 생활은 그의 내면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때부터 불교와 도교에 접하면서 자신의 내면과 삶을 청정하게 유지하려는 한적(閑適)의
정을 노래하는 작품이 늘어났다. 뒤에 충주(忠州) 지사가 되어 백성들로부터
민생을 중시하는 훌륭한 지사로 찬양을 받아 이윽고 중앙 정부로 복귀했는데,
언행이 한층 신중해지고 예전의 전투적 성향은 사라졌다.
그즈음부터 신관료와 구관료의 항쟁으로 유명한 ‘우이당쟁(牛李黨爭)’이 격화되기
시작했으나, 그는 그 대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방으로 전출되어 항주와 소주의
지사를 역임한 뒤, 수도로 돌아와 57세의 나이에 법무차관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자연에 은거하고자 하는 마음이 점점 강해져 병을 구실로 황태자 고문이라는
한직을 얻어 낙양으로 이주한 뒤 다시는 장안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72세에 법무대신 칭호를 받고 벼슬에서 물러나 세상을 떠날 즈음에는 재상의 지위를
추증(追贈)받았다.
그의 생애는 천하의 백성을 구하려는 ‘겸제(兼濟)’의 뜻과, 물러나 일신을 깨끗이 지키려는
‘독선(獨善)’의 갈등으로 점철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시를 겸제의 뜻을 표현한 ‘풍유시’,
독선을 갈구하는 ‘한적시’, 애상을 노래하는 ‘감상시’, 운율과 수사의 미를 중시하는
근체(近體)의 ‘잡률시’ 등 크게 4가지로 구분한 뒤, 스스로 풍유시를 최상으로 삼고,
한적시와 감상시가 그 다음이며, 잡률시는 취미 정도라고 했다.
그는 『시경』에 나오는
민간 가요의 사회성을 중국 시의 귀중한 전통이라 여기고, 그것을 실제 시작에 응용한 민중파
시인의 최고봉이다. 작품은 평이하고 통속적인 취향을 드러내어 문학을 모르는 서민이라도
들으면 알 수 있게 했다. 속어를 대담하게 사용하고 민간 가요풍의 표현을 근체시의
영역으로 끌어왔다.
형식뿐 아니라 내용에서도 고답적인 문인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같은
민중시인으로 칭송받는 두보와 크게 다르다.

※ 원대(元代) 화가 심주(沈周)의 <야좌도(夜坐圖)>
'고전 한시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백두산 바위 돌은 칼을 갈아 없애고 (0) | 2025.10.25 |
|---|---|
| 月夜舟中(월야주중) - 戴復古(대복고)달밤에 배 안에서 (0) | 2025.10.23 |
| 남은 해 문을 깊이 닫아 걸고서 (0) | 2025.10.23 |
| 관서유감(觀書有感) : 책을 보다 느낀 감회 -주희(朱熹) (0) | 2025.10.23 |
| 하늘 끝자락에 서늘한 바람 이는데 (0) | 2025.1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