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한시 감상

다산 정약용 (茶山丁若鏞)의 시

qhrwk 2025. 10. 27. 07:05

 

 

정약용 업적
 
정약용은 실학의 대가로서 당시 실학을 정리하고 집대성한다.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나라 실학의 대표주자로 떠오르게 된다.
정약용이 한 업적은 정말 많다.
 
조선시대 최고의 학자라고 불리는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것을 보면 모두 공통점이 있다. 다 실학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약용은 전통적으로 중농학파였다. 즉 농사를 중시하는 학자였는데,
이러한 그는 북학파라고 불리는 중상학파 또한 포용하였다.
 
결과적으로 당시 실학을 모두 아우름으로서 그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한다.
초4책엔, 약500여권의 책을 만들었고 조선사회를 바꾸는데 기여하였다.

 

 

혼자만의 웃음(獨笑) - 茶山丁若鏞

有粟無人食(유속무인식)
양식 많은 집은 자식이 귀하고

多男必患飢 (다남필환기)
아들 많은 집엔 굶주림이 있으며,

達官必?愚 (달관필준우)
높은 벼슬아치는 꼭 멍청하고

才者無所施 (재자무소시)
재주 있는 인재는 재주 펼 길 없다.

 

 

家室少完福 (가실소완복)
완전한 복을 갖춘 집 드물고,

至道常陵遲 (지도상릉지)
지극한 도는 늘상 쇠퇴하기 마련이며,

翁嗇子每蕩 (옹색자매탕)
아비가 절약하면 아들은 방탕하고,

婦慧郞必癡 (부혜랑필치)
아내가 지혜로우면 남편은 바보이다.

 

16년간 유배생활을 한 강진

月滿頻値雲 (월만빈치운)
보름달 뜨면 구름 자주 끼고

花開風誤之 (화개풍오지)
꽃이 활짝 피면 바람이 불어대지.

物物盡如此 (물물진여차)
세상일이란 모두 이런 거야.

獨笑無人知 (독소무인지)
나 홀로 웃는 까닭 아는 이 없을걸.

 

 

유배지에서 직접 새겼다는글

조선 정조시대 실학자 정약용(1762~1836) 선생께서
1804년 유배지 강경에서 쓰셨다는 시조 '독소(獨笑)'입니다.
250여 년 전의 사회풍자 내용이지만 지금의 세태(世態)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