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한시 감상

無題(讖詩) / 난설헌 허초희(蘭雪軒 許楚姬 /1563~1589;조선 명종

qhrwk 2025. 10. 27. 07:23

※ 명대(明代) 화가 구영(仇英)의 <春山圖> 선면(扇面)

 

 

푸른 바다가 옥구슬 바다를 적시고 (碧海浸瑤海 벽해침요해)
푸른 난새는 오색 난새와 어울리네. (靑鸞倚彩鸞 청난의채난)
아리따운 부용꽃 스물일곱송이 (芙蓉三九朶 부용삼구타)
붉게 떨어지니 서릿 달이가 차갑구나. (紅墮月霜寒 홍타월상한)

 

스물일곱 짧은 생을 살다 간 비운의 천재시인, 허난설헌

 

 

 

16세기 조선에서 태어나 스물일곱 짧은 생을 살다 간 천재시인 허난설헌. 빼어난

미모, 탁월한 지적능력으로 우리 나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여자로 평가받는 사람,

동인의 거두인 초당 허엽의 딸로 태어나, 왕실의 공주라 해도 남성과 대등한 글공부를 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시절에 동생 허균과 함께 당대의 시인 손곡 이달에게 시를

배우고, 여덟 살의 나이에 「백옥루 상량문」을 지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녀가 남긴 빼어난 시편들은 중국과 일본에까지 전해져 수많은 이들을 매료시켰고

지금까지도 중국과 일본에서는 허난설헌 연구학회가 이어질 만큼 문학사적으로

큰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조선이라는 닫힌 땅에서 그녀의 삶은 처절한 비애의

연속이었다. 후대의 실학자 박지원마저

“아녀자가 시를 씀은 옳지 못하다. 재주 있는 여자들은 난설헌의 삶을 경종으로

삼으라” 했을 만큼, 문학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남성중심의 조선에서는

철저히 버려진 이름이었다.

 

※ 명대(明代) 화가 문징명(文徵明)의 <春山圖> 扇面

 

 

세상 모든 여자들의 슬픔이자 꿈의 이름, 난설헌

 

“나에게는 세 가지 한(恨)이 있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남편의 아내가 된 것......”

이라고 외쳤던 여인, 허난설헌은 여자의 삶이 오로지 복종과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존재했던 시대에 깨어 있는 자유로운 혼이었다. 그녀는 서릿발처럼

 모진 시집의 냉대, 자신에게 등 돌린 남편의 끊임없는 외도,

친정을 향한 애달픈 그리움, 어린 자식들을 모두 잃고 흘리는 피울음에도, 원망이나

분노로 자신의 예술혼과 자존감을 흐트리지 않았다. 어떤 고통도 난설헌의 영혼을

마모시키지 못했다.

 

 

그런 고통의 마디들은 난설헌으로 하여금 한 줄의 시어(詩語)를 붙들게 만들었고,

곡기를 끊고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그 시를 가슴에 품고 스러져갔다.

그 광경은 억압받은 영혼이 표현할 수 있는 마지막 자존이며, 여자 천재시인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그래서 난설헌의 자유로운 혼과 피는 까미유 끌로델,

시몬드 베이유, 나혜석, 전혜린과 닮아 있다.

<우리 역사 최초의 한류라 할 수 있는, 그러나 철저히 잊혀져야 했던 허난설헌의 시>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碧海浸瑤海)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靑彎倚彩彎)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붉게 떨어지니 (芙蓉三九楹)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紅隋月霜寒)


난설헌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위의 시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27살이라는

짧은 생을 마감했다.
시리도록 아름다웠던 한 여인의 이야기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난설헌'

 

※ 문징명(文徵明)의 <春山圖> 手卷 (1542年作)

 

스물일곱 짧은 생을 살다 간 비운의 천재시인, 허난설헌

 

16세기 조선에서 태어나 스물일곱 짧은 생을 살다 간 천재시인 허난설헌. 빼어난

미모, 탁월한 지적능력으로 우리 나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여자로 평가받는 사람,

동인의 거두인 초당 허엽의 딸로 태어나, 왕실의 공주라 해도 남성과 대등한 글공부를 하

는 것이 불가능했던 시절에 동생 허균과 함께 당대의 시인 손곡 이달에게 시를

배우고, 여덟 살의 나이에 「백옥루 상량문」을 지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녀가 남긴 빼어난 시편들은 중국과 일본에까지 전해져 수많은 이들을 매료시켰고

지금까지도 중국과 일본에서는 허난설헌 연구학회가 이어질 만큼 문학사적으로

큰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조선이라는 닫힌 땅에서 그녀의 삶은 처절한 비애의

연속이었다. 후대의 실학자 박지원마저

“아녀자가 시를 씀은 옳지 못하다. 재주 있는 여자들은 난설헌의 삶을 경종으로

삼으라” 했을 만큼, 문학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남성중심의 조선에서는

철저히 버려진 이름이었다.

 

※ 근현대 중국화가 기대기(祁大夔)의 <산수(山水)> 성선(成扇)

 

 

세상 모든 여자들의 슬픔이자 꿈의 이름, 난설헌

 

“나에게는 세 가지 한(恨)이 있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남편의 아내가 된 것......”

이라고 외쳤던 여인, 허난설헌은 여자의 삶이 오로지 복종과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만 존재했던 시대에 깨어 있는 자유로운 혼이었다. 그녀는 서릿발처럼

 모진 시집의 냉대, 자신에게 등 돌린 남편의 끊임없는 외도,

친정을 향한 애달픈 그리움, 어린 자식들을 모두 잃고 흘리는 피울음에도, 원망이나

분노로 자신의 예술혼과 자존감을 흐트리지 않았다. 어떤 고통도 난설헌의 영혼을

마모시키지 못했다.

 

 

그런 고통의 마디들은 난설헌으로 하여금 한 줄의 시어(詩語)를 붙들게 만들었고,

곡기를 끊고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그 시를 가슴에 품고 스러져갔다.

그 광경은 억압받은 영혼이 표현할 수 있는 마지막 자존이며, 여자 천재시인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그래서 난설헌의 자유로운 혼과 피는 까미유 끌로델,

시몬드 베이유, 나혜석, 전혜린과 닮아 있다.

※ 근현대 중국화가 하해하(何海霞)의 <관작루(?雀樓)>

 

 

<우리 역사 최초의 한류라 할 수 있는, 그러나 철저히 잊혀져야 했던 허난설헌의 시>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碧海浸瑤海)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靑彎倚彩彎)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 붉게 떨어지니 (芙蓉三九楹)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紅隋月霜寒)


난설헌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위의 시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27살이라는

짧은 생을 마감했다.
시리도록 아름다웠던 한 여인의 이야기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난설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