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식 「書王定國所藏煙江疊
산인지 구름인지 멀어서 모르겠더니
단원 그림 중에 <운산도>가 있다. 아무런 인물도 그려지지 않은 산골자기의 비탈 하나가 툭 하고 붉어진 모습을 그린 평범한 산수화이다. 사람의 눈길을 끄는 인물이나 누각이 없어 단원 특유의 산 주름 표현이나 나뭇가지 모습이 더욱 눈에 잘 들어오는 그림이기도 하다. 산 기슭표현은 약간 각진 선으로 묘사하고 그 사이로 그늘이 될 만한 곳에는 옅은 먹 선을 그은 뒤 짙은 먹 점이나 짧은 먹 선을 여러 번 칠하고 살짝 먹이나 황토색을 입혀 입체감을 나타내는 게 단원식 산수표현이다.
똑바로 서있는 비탈이나 붉어져 나온 기슭은 모두 이렇게 표현돼 있다. 그 한 쪽에 ‘단원’이란 사인과 함께 ‘연야운야원막지 연공운산산의연(烟耶雲耶遠莫知 烟空雲散山依然)’라고 적혀 있다. 이는 송나라의 대시인 소식의 시 「서왕정국소장연강첩장도(書王定國所藏煙江疊嶂圖)」의 한 구절이다. 소식은 시인기도 하지만 그림도 그려 대나무를 잘 그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이처럼 남의 그림을 소재로 시를 지으며 이른바 평을 해놓은 것도 많이 전한다. 그러나 물론 대상이 된 그림 중에 현재까지 전하는 것은 거의 없지만 기이하게도 이 그림은 현
재까지 타이페이 고궁박물원에 전하고 있다.嶂圖서왕정국소장연강첩장도)」 - 김홍도 <운산도>

왕선 <연강첩장도> 견본채색 45.2x166cm 상하이박물관
소식 시의 제목은 ‘왕정국이 소장하고 있는 연강첩장도에 대해 짓다’라는 뜻이다. 왕정국의 본명은 왕선(王詵, 1036-1093)으로 자를 써서 왕진경(王晉卿)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는 북송때 문인관료로서 그림도 잘 그렸는데 무엇보다 북송황제 영종의 딸 촉국(蜀國) 대장공주와 결혼을 한 부마였다. 그래서 정국공에 봉해져 왕정국이라 이름한 것이다.
그는 부마이고 관료이고 문인이었으며 거기에 그림도 잘 그렸고 소식과 그 주변의 황정견, 미불, 이공린 등과도 모두 친했다. 단원이 34살 때부터 여러 차례 그린 <서원아집도(서원아집도)>는 그의 집의 정원인 서원에 소식에서 이공린 그리고 스님과 도사 친구들까지 불러 유쾌한 모임을 가진 고사를 그린 그림이다.
그는 이처럼 그림 속 주인공이 되기도 했지만 그 역시 그림을 잘 그렸다. 소동파가 ‘왕정국이 소장한 연강첩장도’라고 한 것은 실은 ‘왕정국 자신이 그려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연강첩장도’를 말한다. 소식은 이 그림을 언제가 보고서 시를 지었는데 그 시가 천하에 명시로서 조선시대 후기에 글공부의 첫 번째 교재로 손꼽혔던 『고문진보』 에도 수록돼있다. 연강첩장이란 안개에 쌓인 강과 첩첩히 포개진 산이란 뜻이다. 원시는 그 내용이 몹시 긴데 첫머리만 보면 이렇다.
江上愁心千疊山 강상수심천첩산
浮空積翠如雲煙 부공적취여운연
山耶雲耶遠莫知 산야운야원막지
煙空雲散山依然 원공운산산의연
강 위에 수심 더하는 천 겹의 산
하늘에 뜬 푸른 기운 구름과 연기같네
산인지 구름인지 멀어서 모르겠더니
안개 비고 구름 흩어지니 산은 그대로도다
소식은 이 그림을 보고 시를 지으며 자신도 그림 속의 풍경으로 들어가고 싶으나 찾아갈 길이 없다며 세 번이나 탄식했다고 쓰고 있다. 왕진경의 <연강첩장도>는 화면을 가득 메울 정도로 안개에 쌓인 강이 넓게 퍼져 있으며 그 한쪽으로 봉우리가 첩첩이 깊은 산이 아련히 모습을 보이는 그림이다.
북송 시대는 흔히 산수화 기법이 완성된 시기라고 한다. 그 이유로서 물위의 안개 표현이나 산 아지랑이와 같은 보이기는 하지만 그리기는 힘든 대상을 그려내는 기법을 마스터했기 때문을 꼽는다. 이 <연강첩장도>에서도 물 안개와 산 아지랑이가 계속되면서 넓디넓은 강과 깊고 깊은 산의 웅장하고 우람한 모습을 유감없이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시의 첫 부분을 가지고 그림을 그린 단원은 강은 제외하고 산만을 대상으로 그림을 그렸다. 김홍도는 몇 번이고 말한 것처럼 시의 자구 하나에 시시콜콜하게 억매이는 자잘한 성격은 아니었다. 여기에서도 원시는 ‘산야운야(山耶雲耶)’했지만 그는 ‘연야운야(烟耶雲耶)’하고 있다.

김양기 <산수도> 지본담채 20.5x29.8cm 선문대 박물관
그런데 똑같은 그림을 아들 김양기도 그렸다. 그가 그린 <산수도>에는 낙관은 없다. 이 그림도 보면 왼쪽으로 바짝 서있는 산비탈에 이어서 오른쪽으로 비쭉하고 붉어진 언덕 하나가 그려져 있다. 몇 그루의 잡목이 비탈과 언덕에 그려진 것도 모두 비슷하다. 여기에서도 긍원은 부친의 필치를 흉내 내고 있다. 단원 그림의 산비탈과 나무들이 훤칠한 느낌인데 비해 긍원쪽은 조금 납작한 인상정도가 다르다.
게는 평소에 자기는 옆으로 기어가면서도 자식 게에게는 똑바로 걸으라고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마 단원도 자신은 ‘연야운야’했지만 아들에게는 ‘산야운야’하길 바랐을 지도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y)
글/사진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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