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황진이와 화담 서경덕] 마음이 어린 후이니…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 운산(萬重雲山)에 어느 님 오리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V가 하노라
- 화담 서경덕
내 언제 무신(無信)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데
월침 삼경(月沈三更)에 올 뜻이 전혀 없네
추풍(秋風)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 하리오
- 황진이
* 그리운 정에 떨어지는 잎 소리마저도 님이 아닌가 한다는 화담의 시조에
지는 잎 소리를 난들 어찌하겠느냐는 황진이의 안타까움을 전한다.
● 청산리 벽계수야… <황진이>
청산리 벽계수(靑山裏 碧溪水)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一到蒼海)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쉬어간들 어떠리.
* 황진이와 벽계수와의 이야기는 서유영(徐有英,1801~1874)의
<금계필담(錦溪筆談)>에 자세히 전한다.
-황진이는 송도의 명기이다. 미모와 기예가 뛰어나서 그 명성이 한 나라에 널리
퍼졌다. 종실(宗室) 벽계수가 황진이를 만나기를 원하였으나
‘풍류명사(風流名士)'가 아니면 어렵다기에 손곡(蓀谷) 이달(李達)에게 방법을 물었다.

이달이 “그대가 황진이를 만나려면 내 말대로 해야 하는데 따를 수 있겠소?”라고
물으니 벽계수는 “당연히 그대의 말을 따르리다”라고 답했다. 이달이 말하기를
“그대가 소동(小童)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가지고 뒤를 따르게 하여 황진이의
집 근처 루(樓)에 올라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타고 있으면 황진이가 나와서
그대 곁에 앉을 것이오.
그때 본체만체하고 일어나 재빨리 말을 타고 가면 황진이가 따라올 것이오.
취적교(吹笛橋)를 지날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일은 성공일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오” 했다.
벽계수가 그 말을 따라서 작은 나귀를 타고 소동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들게 하여
루에 올라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한 곡 탄 후 일어나 나귀를 타고 가니 황진이가
과연 뒤를 ?i았다. 취적교에 이르렀을 때 황진이가 동자에게 그가 벽계수임을 묻고
"청산리 벽계수야..." 시조를 읊으니, 벽계수가 그냥 갈 수가 없어서 고개를
돌리다 나귀에서 떨어졌다.
황진이가 웃으며 “이 사람은 명사가 아니라 단지 풍류랑일 뿐이다”라며
가버렸다. 벽계수는 매우 부끄럽고 한스러워했다. 한편 구수훈(具樹勳,
영조 때 무신)의 <이순록(二旬錄)>에는 조금 달리 나와 있다.
-종실 벽계수는 평소 결코 황진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말해왔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황진이가 사람을 시켜 그를 개성으로 유인해왔다.
어느 달이 뜬 저녁, 나귀를 탄 벽계수가 경치에 취해 있을 때 황진이가 나타나
“청산리 벽계수야...” 시조를 읊으니 벽계수는 밝은 달빛 아래 나타난
고운 음성과 아름다운 자태에 놀라 나귀에서 떨어졌다.

● 어져 내 일이야… <황진이>
어져 내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던가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태어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 이별의 회한을 노래한 것으로 황진이가 시조의 형식을 완전히 소화하고
있다는 평을 듣는 시조이다.
● 奉別蘇判書世讓(봉별소판서세양) 소세양 판서를 보내며 <황진이>
月下梧桐盡(월하오동진) 달빛 아래 오동잎 모두 지고
霜中野菊黃(설중야국황) 서리 맞은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구나.
樓高天一尺(누고천일척) 누각은 높아 하늘에 닿고
人醉酒千觴(인취주천상)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流水和琴冷(유수화금랭) 흐르는 물은 거문고와 같이 차고
梅花入笛香(매화입적향) 매화는 피리에 서려 향기로워라
明朝相別後(명조상별후) 내일 아침 님 보내고 나면
情與碧波長(정여벽파장) 사무치는 정 물결처럼 끝이 없으리.
* 소세양이 소싯적에 이르기를, “여색에 미혹되면 남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황진이의 재주와 얼굴이 뛰어나다는 말을 듣고는 친구들에게 약조하기를
“내가 황진이와 한 달을 지낸다 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자신이 있네.
하루라도 더 묵는다면 사람이 아니네”라고 호언장담을 하였다.
그러나 막상 송도로 가서 황진이를 만나보니 과연 뛰어난 사람이었다.
30일을 살고 어쩔 수 없이 떠나려 하니, 황진이가 누(樓)에 올라 시를 읊었다.
이 시를 듣고 소세양은 결국 탄식을 하면서
“나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더 머물렀다.
이 때 황진이가 읊은 시가 바로 <봉별소양곡세양(奉別蘇陽谷世讓)>이다.
● 別金慶元 (별김경원) 김경원과 헤어지며 <황진이>
三世金緣成燕尾 (삼세금연성연미) 삼세의 굳은 인연 좋은 짝이니
此中生死兩心知 (차중생사양심지) 이 중에서 생사는 두 마음만 알리로다
楊州芳約吾無負 (양주방약오무부) 양주의 꽃다운 언약 내 아니 저버렸는데
恐子還如杜牧之 (공자환여두목지) 도리어 그대가 두목(杜牧)처럼 한량이라 두려울 뿐.

'고전 한시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학의 울음이 부처 말씀 _ 월파대사 (0) | 2025.10.30 |
|---|---|
| 황진이 시 모음 (0) | 2025.10.27 |
| 황진이 시 모음 (0) | 2025.10.27 |
| 소식 「書王定國所藏煙江疊嶂圖서왕정국소장연강첩장도)」 - 김홍도 <운산도> (0) | 2025.10.27 |
| 無題(讖詩) / 난설헌 허초희(蘭雪軒 許楚姬 /1563~1589;조선 명종 (0) | 2025.10.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