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한시 감상

조선의 선비정신 / 南冥과 敬 1.

qhrwk 2025. 11. 6. 06:53

 

 

조선의 선비정신


은둔과 참여는 하나다 南冥(남명:曺植 조식)과 敬(경)
남명은 선조에게 정치를 ‘솜씨가 아닌 몸으로 할 것’을 요구하였다.
정치를 ‘몸으로 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여기서 남명은 경(敬)을 말한다

崔鎭弘

남명 조식.
1980년대 초반, 스무 살을 갓 넘겼던 필자는 산을 무척 좋아했다

특히 지리산(智異山)을 좋아해서 계절마다 찾았다.

그러나 그렇게 지리산을 다녔어도 그때는 남명(南冥)을 몰랐다.

당시에 필자가 지리산에서 느끼는 감정은 주로 민족의 분단문제를 다룬

이병주(李炳注·1921~1992년)의 《지리산》이란 소설과 연결되어 있었다.

《남부군》이란 책은 나오기 이전이었으니까.

세월이 흘렀다.
참으로 오랜만에 다시 지리산을 찾았다. 

하지만 이번 산행(山行)은 남명 조식(南冥 曺植·1501~1572년)의 길을 찾아나선 

도행(道行)을 목적으로 한 발걸음이었다. 

필자는 《율곡》(栗谷)을 읽으면서 수많은 인물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인물들 가운데 반드시 다시 찾을 것을 기약했던 인물이 바로 남명이었다.

산천재(山天齋)! ‘산천(山天)’이란 《주역》(周易) 64괘(卦) 중 26번째 괘인 

‘대축괘(大蓄卦)’의 괘명(卦名)이다. 그 괘의 모습을 보면 위에 산이 있고 아래에

하늘이 있는 형상으로 하늘이 산 속에 있는 상이다.

군자(君子)가 이를 본받아서 하늘의 이치가 내 손에 있음을 알아서 학식과 덕행을
쌓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높이 치솟은 지리산 천왕봉(天王峰) 아래 위치한 산천재는 남명이 만년(晩年)을 보낸 곳이다.

국가문화재 사적 제305호로 지정된 사적지 안에는 남명이 당시 문도(門徒)들을 가르치던

산천재와 남명의 묘소, 위패를 모신 여재실(如在室), 선생의 학덕(學德)을 기리기 위해 세운

신도비(神道碑) 등이 있으며, 이곳에서 약 1.5km 떨어진 곳에는 그를 봉향한

덕천서원(德川書院)이 있다.

2011년 2월 24일 필자가 찾은 산천재는 아늑했다. 산천재에서 필자를 먼저 맞은 것은

‘남명매(梅)’라고 불리는 오래된 매화나무였다

남명매는 이제 막 움을 틔우고 있었다.
천도(天道)란 이런 것이 아닐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매서운 겨울 추위가 계절의
순환 앞에선 하나의 놀이에 불과한 것이란 것을 깨닫는 것이 바로 천도라고 말하면
 공부가 깊은 어른들께 혼이 날 수도 있겠지만 남명매 앞에서 필자는 천도란 바로
 이런 것일 거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산천재에서 바라보는 천왕봉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궁금했다.

남명매를 바라보던 시선을 조금 들어 서북쪽을 향하니 바로 천왕봉이 손에 잡힐 듯이 \

마주하고 있었다.

산천재를 지으면서 덕산으로 이주하여 하늘에 맞닿아 있는 천왕봉을 바라보는
남명의 마음에는 하늘의 도(天道)가 자리하고 있지 않았을까. 천도란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계절이 되면 남명매는 꽃을 피운다. 그것이 천도이다.
하지만 그 꽃을 보면서 향기를 팔지 않을 것을 다짐하며, 하늘 위로 솟아 있는
 천왕봉을 보며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다짐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길,
곧 인도(人道)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