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胥吏亡國論
경의검.
1567년 명종의 뒤를 이어 등극한 선조(宣祖)는 여러 번 남명을 부른다.
하지만 남명은 나가지 않고 상소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말했다.
당시의 분위기는 남명이 출사(出仕)를 하느냐 마느냐를 가지고 국가의 명운(命運)을
점칠 정도였다. 남명은 선조의 간곡한 부름에 ‘구급(救急)’이라는 두 글자를 올린다.
비상시국이란 뜻이다. 왜 비상시국인가?
당시의 위정자(爲政者)들은 나라의 근본인 백성들의 삶은 버려둔 채, 이름을 알리는 것만 대단한
줄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마치 ‘그림의 떡이 배고픔을 구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남명이 본 당시의 상황은 정치 자체가 실종된 상태였다. 임금과 신하 모두 정치에서 손을
떼고 있었다. 그렇다면 정치는 누가 담당하고 있었을까?
여기서 남명은 유명한 ‘서리망국론(胥吏亡國論)’을 주장했다.
나라의 모든 사무를 밑에 있는 아전(衙前)들이 처리하고 있었다.
남명의 말을 들어보자.
<예부터 권신(權臣)으로서 나라를 마음대로 했던 일이 있기도 하였고, 외척(外戚)으로서
나라를 마음대로 했던 일이 있기도 하였으며, 부녀자와 환관(宦官)으로서 나라를
마음대로 했던 일이 있기도 하였으나 지금처럼 서리(胥吏·아전)가 나라 일을
마음대로 했던 일이 있었다는 것은 듣지 못했습니다. …
모든 정사와 국가 기밀이 모두 서리의 손에서 나오므로, 포목과 곡식을 관청에 바치는 데에도
뒷길로 웃돈을 바치지 않으면 되지 아니합니다. 안으로 재물이 모이면 백성은 밖으로 흩어져,
열 명 가운데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각자 ‘자신이’ 맡고 있는 고을을 자기 물건처럼 생각하여, 문서를 만들어서 교활하게
자기의 자손 대대로 전합니다.
지방에서 바치는 것을 일체 가로막고 물리쳐서 한 물건도 상납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공물(貢物)을 가지고 바치러 갔던 자가 온 가족의 가산을 다 팔아서 바쳐도
그것이 관청으로 들어가지 않고 아전 개인에게로 돌아갑니다.
백배가 아니면 받지를 않습니다.
서리가 도둑이 되고 온갖 관리가 한 무리가 되어 심장부를 차지하고 앉아 국맥(國脈)을
모두 결딴내(는데도), 법관이 감히 묻지도 못하고 사구(司寇·형조판서)도 감히
따지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남명이 선조에게 지적한 서리망국론의 내용이다.
하지만 당시엔 아무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았다.
왜? 그들에게는 정치란 하찮은 것이었고, 지식인들의 책무는 고차원적인 상달(上達)의
세계에서 머물러야 했기 때문이었다.
남명은 형이상학적 문제에만 몰두해 이론적인 탐구만 일삼는 풍조를 비판했다.
정치를 몸으로 하라
남명은 젊은 사람들이 《소학》(小學)의 ‘쇄소응대진퇴지절’(灑掃應對進退之節;
《소학》 서문에 나오는 말로, ‘물 뿌리고 쓸고 어른이 부르면 응하고 대답하며
나가고 물러나는 예절’이라는 의미)도 모르면서 함부로 하늘의 이치(천리·天理)를
말한다고 당시의 학풍을 지적했다.
‘아래로 사람의 일(人事)을 먼저 배우고, 그다음 위로 천리에 통달해야 한다’
(下學人事 上達天理)는 것이 남명의 주장이었다. 다시 말하면 가까운 일상생활부터
차례차례 배워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자가 현실 정치에서 성공을 하지 못한 이후로, 정치 현장보다는 그 정신적인 측면이
소중하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 일은 속된 것이고 그 정신적인
측면만이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길 때 발생한다.
실제 일이 아닌 이론의 차원에만 초점이 모일 때의 문제점을 남명은 정확하게 인식하였다.
하지만 실제 일에 대해 남명이 제시한 처방책의 실효성 여부는 다시 따져보아야 할 주제이다.
남명은 선조에게 “천하의 일이 비록 극도로 어지럽고 극도로 잘 다스려지더라도
모두 사람이 만드는 것이지, 다른 데서 말미암은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치란(治亂)이 모두 사람 하기에 달려 있다는 의미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남명은 선조에게 정치를 ‘솜씨가 아닌 몸으로 할 것’을 요구하였다. 정치를 ‘몸으로
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여기서 남명은 경(敬)을 말한다.
<가슴 속에 마음을 보전해서 혼자 있을 때를 삼가는 것이 큰 덕(大德)이고, 밖으로
살펴서 그 행동에 힘쓰는 것이 왕도(王道)입니다. 가슴 속에 본심을 보존하고
밖으로는 자신의 행동을 살피는 가장 큰 공부는 반드시 경(敬)을 위주로 해야 합니다.
이른바 경이란 것은 정제하고 엄숙히 하여, 항상 마음을 깨우쳐서 어둡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한마음의 주인이 되어 만사에 응하는 것은, 안은 곧게 밖은 방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공자의 ‘경으로써 몸을 닦는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을 주로 하지 않으면 이 마음을 보존할 수 없고, 마음을 보존하지 못하면 천하
이치를 궁구할 수 없으며,이치를 궁구하지 못하면 사물의 변화를 다스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상소문에는 ‘서리망국론’보다도 필자의 눈을 강하게 사로잡는 것이 있었다.
바로 상소문의 심상(尋常)치 않은 출발점이다
이 상소문은 ‘진주 사는 백성(晋州居民) 조식은 올린다’로 시작한다.
진주거민!!! 남명은 선조에게 ‘당신의 신하이기에 앞서 이 나라의 백성’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 나라의 주인은 바로 백성이다.
선조를 시험해 본 것이다. 백성을 모르면 임금 노릇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남명은 자신을 선조의 신하가 아닌 이 나라의 백성으로 인식하고자 하였다.
그야말로 작정하고 올린 것이다. 오늘날 아랍세계의 민주화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라크의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졌고, 리비아 카다피 정권이 흔들리고 있다.
누가 무너뜨렸나? 바로 백성이다. 이 점을 이미 근 500년 전에 남명은 인식했고,또 지적하였다.
백성들은 위험하지 않다
남명은 <민암부>(民巖賦)에서 백성을 물에 비유하고 임금을 배에 비유하여, 물이 노하면 배를
전복시킬 수도 있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백성이 물과 같다는 말은,예부터 있어 왔으니,
백성은 임금을 받들기도 하지만,
백성은 나라를 엎어버리기도 한다.
걸·주(桀·紂)가 탕·무(湯·武)에게 망한 것이 아니라,
바로 백성에게 신임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백성들이 위험하다 말하지 마라
백성들은 위험하지 않다.>
백성이 나라를 엎어버리는 행위는 위험한 것으로 인식할 사안이 아니다.
당연한 것으로 인식해야 할 사안이다. 내년이면 우리는 선거를 치른다.
당장 올 봄에도 보궐선거가 몇 군데 예정되어 있다. 공직에 나가는 사람들의 자세에서
<민암부> 경고를 한 번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우리의 현대사(現代史)는 희망이 보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그 느낌을 주는 인물이 분명히 있기를 우리 모두 기대해 보자.
72세가 되던 해(1572), 2월 8일 남명은 산천재에서 조용히 서거(逝去)했다.
서거 전에 문병 온 제자들에게 자신의 사후 칭호를 처사(處士)로 할 것과 자신의 학문은
경(敬)과 의(義) 두 글자로 집약되는데, 이는 하늘의 해와 달과 같은 것으로 변할 수 없는
진리이니 힘써 지켜나갈 것을 당부했다.
남명의 삶에서 은둔과 참여라는 두 개의 화두(話頭)가 지식인의 삶이라는 측면과
맞물려 있음을 배웠다. 현실에 빠지지도 않으면서 세상을 잊지도 않는 정치평론가의 모습이다.
둘 사이에서 균형 잡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 자칫 잘못하면, 아니 대부분은
기회주의자가 되기 마련이다.
기회주의자가 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바로 경과 의이다. 이윤과 같이 한 발을 정치 일선에 담고
있으면서, 또 다른 한 발은 안회와 같이 빼고 있는 모습이 바로 남명의 자세였다.
남명의 경은 의와 동거할 때 의미를 가진다. 결국 남명이 관복이 아닌 포의를 입고,
진주에 사는 백성이라고 칭한 것은 다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정치에 대한 무조건적인 혐오가 아니라 여건이 조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름만 빌려주는 들러리가
되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이름만을 빌려주기를 원하는 작태는 예나 지금이나 계속되고 있는 정치판의 모습 아닌가
그렇다고 정치 자체를 외면하는 지식인들만 존재한다면 그 사회는 이미
생명력(生命力)이 다한 것 아닌가.
在野와 在朝는 동전의 앞뒷면
남명에게 재야(在野)와 재조(在朝)는 결코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 아니었다.
동전의 양면과 다름없는 것이었다. 마치 경과 의가 해와 달과 같은 관계이듯이.
여기서 이윤과 안회의 길은 사실 서로 역시 상반된 길이 아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흔히 이 길을 서로 상반된 길로 여기고 있다
서로 다른 길로 여기므로 자기와 다른 길을 가는 사람은 이단(異端)이고 소인(小人)이 되고 만다.
하지만 남명에게 이윤과 안회는 모두 같은 맥락에서 통하는 인물들이었다.
산천재를 떠나면서 다시 한 번 천왕봉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산천재에 남아 있는 남명의 또 다른
시 한 편을 음미하며 이 글을 마친다.
<천섬 들어가는 큰 종을 보소서!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가 없다오.
어떻게 하면 저 두류산처럼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까?>
請看千石鐘
非大?(구)無聲
爭似頭流山
天鳴猶不鳴⊙
崔鎭弘
⊙ 1963년생.
⊙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서울대 정치학 박사.
⊙ 현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
⊙ 저서 : 《법과 소통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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