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한시 감상

야보도천(冶父道川)의 詩

qhrwk 2025. 11. 9. 08:46

 

冶父道川 [야보도천]

法相非法相
법상비법상
법상과 비법상이여
법, 보, 화신의 형상과 거동은 다 진실이 아니고

開拳復成掌
개권복성장
주먹을 펴니 다시 손바닥이로다

浮雲散碧空
부운산벽보
뜬구름이 푸른 하늘에서 흩어지니

萬里天一樣
만리천일양
만리의 하늘이 온통 푸른 하늘이더라

 

 

일반적으로 ‘법상(法相)’이라 하면, 꾸밈이 없는 현상의 참된 모습 또는 속성, 현상으로
드러난 실상 또는 체상(體相)을 가리킨다. 하지만 ‘법상(法相)’이란 말이 그리 간단치 않다.
여러 뜻이 있고, 서로 상반되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우선 ‘법상(法相)’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일 경우의 법상이고, 그와 다르게 긍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의 법상이다.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법상은, <금강경>에 말하는 법상(dharma-saṃjñā)으로
아견(我見)과 같은 것이 이에 해당한다. 법집(法執)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자기가 신봉하는 진리만이 진리라고 고집하는 위험한 집착이다.
따라서 참다운 진리의 모습이 아니다. 즉, ‘이것이 최고의 진리이다’라고 하는 법(진리)의
상을 가지는, 이것이 최고의 진리라고 하는 생각에 빠쳐있는 것을 법상이라 한다.
이것만이 정법(正法)이라는 외골수의 생각, 이것이야말로 진리라고 고집하고 집착하는
고정관념을 말한다.

이럴 경우의 법상(法相)이란 자기가 배워서 알고 있는 가르침의 내용(종교의 가르침
혹은 이데올로기)만이 오직 진리라는 믿음에서 가지는 편협한 고정관념이다.

이것은 일종의 정신적인 그릇된 우상(偶像)이다.
그러므로 <금강경>에서는 법상(法相)을 극히 부정적인 용어로 해설하고 있다. 

어떤 일정한 정법이 있다는 생각을 마음속에 갖게 되면, 이미 그 법은 유위법(有爲法)이 

되므로 진리가 아니게 된다. 

‘이것이 진리다’고 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법상으로 떨어져 법집(法執)이 되므로 진리가 

아닌 것이 된다. 부처님이 설한 가르침[無爲法]조차도 깨달음으로 가는 방편에 지나지 

않으므로, 강을 건넌 뒤에는 필요 없는 뗏목처럼 버려야 한다고 했다. 

<화엄경>에 말하기를, 소승을 하는 분들이 대승의 법을 들으면 맹인과 같고 귀머거리가 

되는 것은 그들이 그들 나름의 법상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설사 불경을 거꾸로 줄줄 외울 수 있고, 불교에 관한 이론과 견해를 다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계(戒)를 지키고 정(定)을 닦는 등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하더라도 상(相)에 

집착해 있으면 끝내 불도를 성취할 수 없다. 법상(法相)을 비롯해 일체의 상(相)에 

집착함은 깨달음으로 나감에 치명적인 장애가 된다. 이 세상엔 전적으로 옳다거나

적으로 그른 것은 없다. 전적으로 옳은 절대적인 진리란 절대적으로 없다.

특히 종교인일수록이를 명심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견에 사로잡힌, ― 법상을

가진 종교인이 너무 많다.

아니 대부분의 종교인이 법상에 매몰되 있어서 세상이 시끄러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