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한시 감상

초간일기(草澗日記) 2.

qhrwk 2025. 11. 13. 07:31

 

그리하여 벼슬생활 틈틈이 자료를 섭렵하며 저술을 시작했다.
삼국사기와 계원필경 등 한국 서적 174종과 사기와 한서 등 중국 서적 15종을 참고, 

중국의 음시부(陰時夫)가 지은 '운부군옥(韻府群玉)'의 체제를 빌려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했다.

바로『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20권 20책이다.
1589년에 완성한 이 책은 우리나라 역사와 지리, 문학, 철학, 예술, 풍속, 인물, 

성씨, 산, 나무, 꽃, 동물 등이 망라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지리 등등

이 책은 완성 전부터 그 진가가 알려지기 시작했고, 완성 후에는 많은 학자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김응조는 "장차 운부군옥과 함께 전해질 것이고, 취사선택의 올바름은 운부군옥보다 나은 점이 있느니 
학문의 넓음과 식견의 밝음을 가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고 했다. 
이 책은 당초 3본을 베껴두었는데, 김성일이 국가에서 간행하기 위해 한 질을 빌려가고 또 정구가 
한 질을 빌려갔다. 
하지만 이들은 뒤이어 일어난 임진왜란과 한강의 가옥 화재로 인해 소실돼 버렸다.

 

 

이에 초간의 아들이 나머지 한 질마저 소실될 것을 우려해 정산서원 원장 시절,
주변 사우의 힘을 모아 남은 한 질을 베껴 서원에 보관했다. 

후일 초간의 7세손이처음 판각을 시도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1836년 8세손에 이르러
677판을 완료했다.

대동운부군옥 목판과 초고본은 보물 제 878호로 지정돼 있다.
대동운부군옥 책판은 순조∼헌종 때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임진왜란 이전 개인이 엮은 저서로서는

양적 또는 질적인 면으로 가장 우수한 대작이며, 그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하다.

초간정사 창건

권문해는 1560년(명종 15) 문과에 급제하여 내직으로 정언, 장령을 거쳐 외직으로
안동과 대구의 부사, 공주목사 등을 지냈고 후에 승지를 지냈다. 퇴계 이황에게서
학문을 배워 이름을 날렸고, 특히 역사에 정통하였다. 지방관으로 있는 동안에
선정을 베풀었으며, 항상 청렴과 정직을 신조로 삼았다고 한다. 마을 뒤쪽의
초간수석(草澗水石)을 사랑해 초간정사(草澗精舍)를 창건하기도 했다.

 

 

 

정자는 조선 선조 15년(1582)에 처음 지었고, 선조 25년(1592) 일어난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광해군 4년(1612)에 고쳐 지었지만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으로  다시 불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선생의 원고 등을 보관하기 위해 고종 7년(1870) 후손들이 기와집으로 새로 고쳐 지은 것이다.

양란을 겪으면서 초간정사의 현판이 정자 앞 늪에 파묻혀 있다는 전설이 전해졌는데, 어느날 늪에서 현판이
나왔다고 한다. 

초간정은 기암괴석과 주변의 경관이 조화를 이루어 관광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글 장진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