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권 《바람이 시작되는 곳》 - 제1장 바람이 일어나다.
제1장 바람이 일어나다
황복사의 새벽은 늘 그랬다.
닭이 먼저 울고, 개들이 두어 번 맞장구치듯 짖고, 산 아래 마을의 연기가 늦게서야 슬금 슬금
피어오르는 그러한 순서로 말이다. 그러나 그날, 원효는 눈을 뜨자마자 스스로 느껴지는
공기가 어제와는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마당 돌바닥에는 밤새 내린 이슬이 얇은
막처럼 깔려 있었다. 원효는 맨발로 그 위를 밟으며 빗자루를 집어 들었다.
손아귀에 닿는 나무 자루의 감촉, 묵은 먼지 냄새, 먼동이 틀 무렵의 차가운 공기까지, 모든 것이
어제와 다를 바 없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딱 한 가지, 소리 없이 불어오는 내면의 바람 소리만은
새로운 느낌이었다. 소나무 숲에서 먼저 움직임이 일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으나,
분명히 느껴졌다. 소나무 가지를 흔들고, 기와 끝을 슬쩍 건드리고는, 대웅전 앞 마당 위를
한 번 훑고는 지나가는 것 같았다.
원효는 빗자루질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 바람이 절집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 같았다.
순간 오래전 자장(慈藏)스님으로 부터 수계를 받을 때의 말씀이 생각이 났다.
그날도 오늘 같은 기분이었다 “그랬지... 그날 스님께서는 수계를 마치시고는 화엄경(華嚴經)의
보살문명품(菩薩問明品)의 이야기를 말씀하셨지...” 혼자 그 때의 감동을 떠올렸다.
“약실약불실(若實若不實) 약망약비망(若妄若非妄) 세간출세간(世間出世間)이 단유가어설
(但有假言說)이니라.. 하셨다.
이 말은 진실과 진실하지 아니함과 허망과 허망하지 아니함과 세간과 출세간이 다만,
거짓말이다라는 것인데...실은 이 말은 불적(拂跡), 즉 자취마저 떨어 버리라는 이야기이다.
모든 것은 실체가 없다고 보고 실체가 없다고 본 그 법안(法眼)마저 떨어 버린다는 이야기이다.
너희들이 사찰에서는 마당을 쓸 때 뒷걸음질을 하면서 쓴다. 왜냐하면 앞으로 나아가면서 마당을
쓸면 아무리 깨끗하게 쓸어도 쓸고 간 사람의 발자국이 남는다.
그 발자국마저 쓸어 버리기 위해서다. 그것이 자취마저 떨어 버리는 이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금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아직 아침이 완전히 들지 않았다.
밤새 떨어진 낙엽들이 돌계단 가장자리에 얇게 쌓여 있었다. 원효는 빗자루를 들고, 한 번 쓸고는
잠시 멈추었다. 낙엽이 모였다가 다시 흩어지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의상은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보고 섰다. 말을 꺼내야 할지, 기다려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의상은 시선을 마당 끝에 둔 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경문에서 배운 문장들이 마음속을 스쳐 지나갔다가, 그것으로는 닿지 않는 무언가가 남아 있음을
느꼈다. 그제야 그는 고개를 들어 원효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사형은…불법이 어디에서
시작된다고 보십니까?” 원효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빗자루를 다시 움직였다. 마른 잎들이
사각거리며 돌 위를 미끄러졌다. 그 소리가 대답처럼 이어지다, 이내 멎었다.
“사람들의 깊은 마음 속에.” 너무 빠른 대답이었다. 의상은 순간 숨을 고르듯 눈을 내리깔았다.
그 말이 틀렸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너무 단정해서 오히려 따라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의상의 마음속에서 법은 아직 경문에서 시작해, 문장 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줄을 긋고, 뜻을
가르고, 스승의 설명을 덧붙여야 비로소 손에 잡히는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의상은 말을 고르며 천천히 이어갔다.
“그래서 저는 감히, 불법을 바로 보지 못한 채로는, 사람 마음속에 있는 것이 집착인지,
인연인지조차 분별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 마음속에서 드러나는 것과 가려지는 것을
함께 분명히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원효는 그제야 빗자루를 멈추었다.
몸을 돌려 의상을 바라보았다. 눈빛에는 웃음기가 있었지만, 그 웃음은 가볍지 않았다.
“그렇소이다, 의상스님...” 그가 짧게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바람이 마당을
가로질러 지나가며 쓸어 모은 낙엽 더미를 살짝 흔들었다. “그래서 말이외다.”
원효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내가 그대를 의상 스님이라 부르는 거외다. 하하하...” 의상은 그 말의 뜻을 곧바로
다 헤아리지 못했다.
칭찬인지, 경계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다만 그 호칭이 자신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만은 느껴졌다. 원효는 다시 빗자루를 들었다. 의상도 자연스럽게 그의 옆에 섰다.
아무 말 없이 함께 낙엽을 쓸기 시작했다. ‘자취마저 떨어 버린 채로’ 두 사람 사이로 바람이
다시 지나갔다. 그때 대웅전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깊고 둔한 울림이 절의 아침을 깨웠다.
불법을 향한 기쁨의 씨앗은 이렇게 뿌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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