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권 《바람이 시작되는 곳》 - 제4장 배움의 길, 당(唐)을 바라보다
황복사의 봄은 짧고 거칠었다. 매화가 채 지기도 전에 산길엔 먼지가 일었고, 절을 오르내리는
행인들의 말소리에 ‘당나라’라는 이름이 자주 섞여 나왔다.
“당나라 장안에선 현장법사가 천축국(天竺國)을 다녀오셨다는군…”
“법상종을 믿으면…가피가 크다는데...” 행인 하나가 지나가며 중얼거렸다.
의상은 그런 소문을 흘려듣지 않았다. 하나하나 마음에 새겼다. 당, 장안, 현장, 화엄. 아직 가보지
못한 땅이었지만, 그곳의 법은 이미 그의 수행 속에 스며들고 있었다. 경전을 펼칠 때마다,
그 이름들이 글자 사이로 떠올랐다.
봄바람이 잦아든 조용한 어느 날 저녁, 바람이 고요히 사찰 돌담을 스쳐 지나갈 무렵, 의상은
저녁 예불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이전에 읽다가 펼쳐 둔 경전을 덮고 마당에 있는 원효에게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형...” 원효는 마당 끝에서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치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아이 하나가 진흙
묻은 손으로 원효의 소매를 잡아당기다 놓아주었다.
“왜 그러시오, 의상 스님.” “당나라에... 가 보고 싶습니다.” 원효는 놀라지 않았다. 마치 오래
전부터 예감하여 그 말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아이들의 바지에 묻은 흙을 툴툴 털어내고
돌려보내며 다시 물었다.
“그 먼 곳에, 그대가 찾는 무엇인가가 있단 말이오?” 의상은 잠시 숨을 고르고, 단단히 결심을 담아
말했다. “지금 이 땅에는 아직 채 전해지지 않은, 부처님께서 진실로 설법하신 불법이 온전히
전해져 오고 있다고 듣고 있습니다.” 원효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틀리지 않음을 알았다.
“그래서 전심전력을 다해서 배워 오고 싶습니다. 그래서 돌아와 이 땅에 부처님의 진실된 말씀을
힘껏 전하여 알게 하고 싶습니다.” 그의 눈빛엔 동경이 있었고, 그 말속에는 굳은 결심과
책임이 있었다.
원효는 잠시 침묵했다. 저 멀리 마을에서 아이들 재잘거리며 웃는 소리가 노란 봄나비처럼 날아와
귓가에 들렸다. 그 소리를 듣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나는 말이오, 당이라는 나라가 궁금하기
보다는… 거기까지 가야만 불법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조금은 낯설구려. 불법은 멀리 있지
않으니, 굳이 바다를 건너지 않아도 부처를 만날 수 있는 법은 있지 않겠소?”
의상은 고개를 들었다.
“사형은 이곳에서도 부처님의 진실한 불법이 드러나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원효는 웃었다.
“없다고는 하지 않겠소만...” 의상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눈과 마음은 이미 바다
너머를 향하고 있었다. 저녁 바람이 마당을 스치며 경전의 장을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의상은 마음속으로 아침예불 후에 읽었던 화엄경 한 구절을 떠올렸다.
‘불자여, 보살이 환희지(歡喜地)에 머물러 모든 부처님을 생각하므로 환희하고, 부처님 법을
생각하므로 환희하며... 광대(廣大)하고 청정(淸淨)하고 결정(決定)한 알음알이를 내어
모든 공양거리로써, 일체 부처님께 공경하고 공양하여 남음이 없게 하느니라. 광대하기 법계와
같고 끝없기 허공과 같아서 모든 겁 동안 쉬지 아니하리라.’
부처님 말씀을 되내이고 있던 의상의 두 눈엔 법희선열(法喜禪悅)의 환희로움과 벅찬 감동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리곤 대웅전 법당의 부처님을 향해 무릎을 꿇고, 자신의 뜨거운 열망을 두 손 가득히 마음속
하얀 연꽃에 담아 간절히 기원을 올렸다.
“나의 이 끊임없이 이어질 구법의 여정 속에서, 이 몸의 모든 생이 다할 때까지, 부처님의 법을
배워서 저 고통받는 중생들을 위해 있는 힘껏 부처님 말씀을 빠짐없이 함께 나누어서, 마침내
부처님과 같은 지혜와 덕성을 깨닫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옵소서.
화엄성중 화엄성중 화엄성중...” 부처님의 법을 얻기 위한 간절한 서원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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