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제1권 《바람이 시작되는 곳》 - 제3장 장대교망녹인천지어

qhrwk 2026. 4. 27. 07:20

 

제1권 《바람이 시작되는 곳》 - 제3장 장대교망녹인천지어(張大敎網漉人天之魚)

 

황복사 뒤편 언덕은 마을과 절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논밭 사이 연기가 솟고, 소리 없는 하루의 오후가 이어지고 있었다.

원효는 풀밭에 그대로 앉아 무릎을 끌어안았다.

의상은 한 걸음 뒤에서 단정히 자리를 잡았다.

새벽의 피로가 아직 가시지 않은 얼굴이었다.

“의상스님.” 원효가 산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아래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의상은 시선을 돌렸다.

논두렁을 오가는 농부들, 아이들이 뛰노는 마당, 멀리 절집의 지붕. 의상은 조심스레 답을

이어갔다.

“저는 거기엔 엄격한 질서가 있어 보입니다. 어지러운 듯해도, 각자의 자리에서 주어진

인연 따라 움직이고 있지요.”

원효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 모습들을 바로 융화(融和)롭게, 질서있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본다는 것은,

결국 부처님 법에서 이야기하는 진여와 저들이 살아가는 생멸의 두 세계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결국 서로 서로에게 살아가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그런 아름답고, 환희로운 연기법적인 모습을

띠고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지요...부처도 결국은 중생이 없으면 자신도 출현할 수 없는....

중생이 있어서 부처가 출현하는 이치...그러니까 중생이 곧 복(福)밭의 뿌리인 셈이지요.”

원효는 사뭇 진지하면서도 조금은 흥분된 모습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 이러한 부처님께서 전하신 소중한 세상의 이치를 전할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상이 고개를 들었다. “방법이라면?”

원효는 낮게 읊조렸다.

“장대교망녹인천지어(張大敎網漉人天之魚) - 높고 넓은 부처님의 교법 그물을 크게 펼쳐, 모든

인간과 천상의 물고기를 건져 올린다... 하하하하...가슴이 벅차오르지 않소이까?”

의상은 그 말을 천천히 되뇌었다. 화엄경(華嚴經) 십지품(十地品)의 선혜지(善慧地) 보살이

지혜라는 큰 그물을 넓게 펼쳐, 생사의 바다에서 해매는 인간과 천신을 포함하여 모든 존재들을

단 한명도 빠짐없이 구원하겠다는 크나큰 원력을 이야기하는 대목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오래전 들었던 문장이, 그날따라 사뭇 느낌이 다르게 들렸다. 그 순간 의상의 안목으론 산 아래

마을이 촘촘한 그물처럼 엉켜 보였다.

“사형... 그물은 빛을 가리는 자리에 걸려서는 안 됩니다. 법의 윤곽이 흐려지면, 그 안에 있던

그림자들마저 길을 잃게 되는 법입니다.”

원효는 고개를 들어 햇살을 바라보다가, 껄껄 웃었다. 둘은 풀밭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그래서 그 일은, 다른 누구도 아닌 의상스님에게 돌아가는 것이지요.” 의상은 조용히 웃었다.

“사형은 다만, 그 법이 머물 곳을 열어 주시는 분이니까요.” 둘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그러나 그 침묵은 불편하지 않았다. 바람이 언덕을 스치며 풀잎을 흔들었다.

의상은 흔들림 없는 법의 자리에 서 있었고, 원효의 시선은 사람들 사이를 오가며, 법이 닿아야 할

그들의 숨결과 체온을 읽고 있었다. 바람은 둘로 나뉘지 않았지만, 서로 다른 온도를 지닌 채

지나갔다. 그 바람을 맞으며 원효는 알았다. 중생을 제도하는 길이 단지 어느 한쪽으로만 굳어져

있지 않는다는 것, 그 사실이 둘에게는 이미 마음 깊은 곳에서 환한 미소로 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