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장 정안왕(淨眼王) (3)
“그리고 논(論)의 첫째 가운데서 중요한 내용인 ‘모두 본각(本覺)의 이익을 획득하여 결정성(決定性)에 들어간다.’라는 말씀은 육바라밀을 처음 닦을 때 모두 본각과 동일해져서, 본각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이익이 환히 드러나 이루어지기 때문에 곧 여래장에 들어가니, 그 자성은 본래 적정하고 시작도 없고 끝도 없어서 개전(改轉)이 없기에, 이와 같은 육바라밀은 본각의 이익을 얻기 때문에, 망념으로 유전하는 모습을 멀리 떠나게 됩니다. 그래서 ‘초연히 세간을 벗어났다.’고 한 것입니다. 조금 더 깊이 말씀드리면, 법성(法性)에 들어감으로 법계에 주변하여 분별상이 없고(無相), 조작의 유위가 없으며(無爲) 얽매임이 없고(無縛), 벗어남이 없어서(無脫) 그러므로 결국엔 ‘걸림 없는 해탈(解脫)에 이른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본각의 공덕이 다름 아닌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인데, 모든 유정(有情)은 시작이 없는 대로 부터 무명의 긴 밤에 들어가 망상의 큰 꿈을 지으니, 보살이 관(觀)을 닦아 무생(無生)을 얻을 때에, 중생이 본래 그 성품이 적정하여 다만 본각(本覺)일 뿐임을 통달하여, 일여(一如)의 침상에 누워 이 본각의 이익으로써 중생을 이롭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생(無生)의 행(行)에 의하여 본각과 만날 수 있어야, 일체를 널리 교화하여 이롭게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경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초연히 삼계를 벗어남은 (超然出三界) 모두 다 소승에 의하지 않으니 (皆不以小乘) 일미의 법으로 증명하고 (一味之法印) 일승으로 이룬 것이로다 (一乘之所成) 이처럼 망념(心念)과 자기 집착(我執)을 떠나 무심·무아 상태로 돌아간 까닭은 (如彼離心我) 일법으로 성취되었기 때문이도다 (一法之所成) 여러 같고 다른 수행 중에 (諸有同異行) 모두 다 본각의 이익을 획득하여 (皆獲於本利) 유무상(有無相)과 유무견(有無見)을 완전히 소멸시키도다(滅絶二相見)!’라고 하셨습니다.
경에 보면, 해탈보살이 부처님께 사뢰어 여쭙는 대목이 나옵니다. ‘존자이시여, 중생의 마음은 그 자성이 본래 공적합니다. 공적한 마음은 그 본체에 형색(色)과 생멸상(相)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수습해야 본래 공적한 마음을 터득할 수 있습니까? 바라건대 부처님의 자비로 저희에게 설해 주십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이 첫 번째 문답에는 뜻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중생의 마음은 그 자성이 본래 공적하다. 그러나 망념을 움직이므로 무시 이래로 유전한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수행해야 본래심을 터득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 내용입니다.
둘째는 ‘공적한 마음의 본체에는 색과 상이 없다. 그러나 중생은 본래부터 항상 유상(有相)에 집착한다. 그러면 색도 없고 상도 없는 것을 어떻게 수습해야 공적심을 터득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경문에서 ‘어떻게 수습해야 본래 공적한 마음을 터득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질문하는 중생심은 제6식 등의 생멸심(生滅心)일 터인데, 그것으로 어떻게 일심의 본각을 알 수 있겠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경에서 다시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보살이여, 일체의 망심(妄心)과 망상(妄相)은 본래 근본이 없고 본래 근본의 처소가 없어서 공적하고 무생이다. 이에 ‘망심을 무생케 하면’ 곧 공적에 들어간다. 왜냐하면 공적한 심지야말로 곧 심공(心空)을 터득하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무상(無相)한 일심에는 망심도 없고 망아도 없다. 일체의 법상도 또한 이와 같다.’
여기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일체의 망심(妄心)과 망상(妄相)’이란 일체의 팔식(八識)이 일으키는 망념(動念)의 심(心)과 심소(心所)에 상응하는 행(行)과 상(相)의 차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행과 상에는 모두 사상(四相)이 있습니다. 그리고 ‘본래 근본이 없고 본래 근본의 처소가 없다.’는 부처님 말씀은 일체의 심(心)과 상(相)에는 종자가 근본인데, 그 근본 종자는 찾아보아도 얻을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현재가 되어 있거나 이미 과거가 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미 현재가 되어 있는 경우는 곧 현재라는 과(果)가 구비되어 있어 근본과 지말에 차이가 없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소의 두 뿔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경우는 곧 작인(作因)도 없어지고 체성(體性)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토끼의 뿔’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도리는 본래 법이(法爾)인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본래 근본이 없고’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생멸심이 생겨나는 경우는 반드시 근본의 처소에 의지하는데, 그 근본의 처소가 이미 없다면 생겨날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말한 ‘근본의 처소’는 구유근(俱有根: 심(心)과 심소(心所)가 동시에 존재하면서 그 소의처(所依處)가 되는 것 - 오색근(五色根)·제6식·제7식·제8식 네가지) 인 것입니다. 오색근(五色根: 안근·이근·비근·설근·신근)은 원래 색법으로서 유방(有方)·무방(無方)에 관계없이 불가득(不可得)이고, 나머지 세 가지 소의처인 곧 제6식과 제7식과 제8식은 모두 무색법으로서 유시(有時)·무시(無時)에 관계없이 다 불가득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에 가장자리와 특정한 시기가 없다고 한 것(心無邊際)은, 결국 대승적 일심으로 되돌아가면(歸一心之源), 마음의 본체(心體)가 삼세에 두루하여 시방에 골고루 있으므로 가장자리가 없고, 삼세에 두루하여 특정한 시기가 없다는 것입니다. 삼세에 두루하여 고금의 차이가 없고, 시방에 보편하여 여기와 저기의 처소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원효는 일심이 한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우주적 마음, 즉 삼라만상 일체가 다 마음이라는 것을 가리키는 대승적 마음임을 그리고 적멸이란 바로 일심을 말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깊고 넉넉하여 진여(眞)와 세속(俗)의 두 세계를 융화하되, 하나로 합일하지 않고(湛然融二而不一), 홀로 해맑고 깨끗하여 유와 무의 양변을 떠나 ‘순환의 와중’에 있지 않습니다(獨淨離邊而非中 非中而離邊). 또한 순환의 와중에 있지 않고, 유와 무의 양변을 떠났으므로, 유가 아닌 법이면서도 무에 즉(卽)하여 머물지 않고, 무의 형상이 아니면서도 유에 즉하여 머물지 않습니다. 하나로 합일하지 않고 두 세계를 융화하므로, 비진여의 사실이 비로소 세속이 되는 것이 아니고, 비세속의 이치가 비로소 진여가 되는 것도 아니어서(非眞之事 未始爲俗 非俗之理 未始爲眞也), 두 세계를 융합하되 하나로 합일하지 않으므로, 진여와 세속의 본성이 정립되지 않는 바가 없고, 물들고 해맑음의 현상이 갖추어지지 않는 바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원효는 모든 것은 독립적이고 고립적인 대상이나 물질이 아니라, 모든 것은 곧 그 모든 것에 연관되어 있고, 상호관계적인 연계성의 존재 방식을 천명했다.
“유와 무의 양변을 떠나, 순환의 와중에 있지 않으므로, 유와 무의 법이 이루지 않는 바가 없고, 긍정과 부정의 뜻이 돌고 돌지 않는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파괴함이 없으나 파괴하지 않음이 없고, 정립함이 없으나 정립하지 않음도 없게 되는 이치입니다.
도리가 없는 데서 지극한 도리가 돋아나고(可謂無理之至理 不然之大然矣), 알음알이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으면서도 바로 그러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실로 그렇지 않으면서도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능동적으로 언설한 말이 ‘묘하게 순환의 와중에 계합하여’ 있고(能說之語 妙契環中), 도리가 없는 데서 지극한 도리가 돋아나기 때문에, 수동적으로 해석된 종지가 순환의 테두리 밖으로 초탈하고 있어서, 파괴되지 아니함이 없기 때문에, 그 자체로 ‘금강삼매(金剛三昧)’라 이름하고, 주위를 받아들여 정립하지 아니함이 없기 때문에 ‘섭대승경(攝大乘經)’이라 이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경은 결국 이러한 개합(開合)의 구별(別)이 있어서, 합하면 일미관행(一味觀行)의 요(要)가 되고 열(開)면 십중법문(十重法門)이 종(宗)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이 금강삼매경의 대의(大義)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원효는 마음을 마치 우주적인 거대한 한 마음의 공명체계이자, 신경조직처럼 얽히고설킨 하나의 ‘질서’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경의 이 여섯 가지 품은 오직 일미(一味)일 뿐입니다. 왜냐하면 본래 분별상(相)과 분단생(生)에는 성품(性)이 없고, 본각에는 근본(本)이 없으며, 실제에는 끝(際)이 없고, 진성(眞性)도 역시 공(空)인데, 무엇을 말미암아 여래장의 성품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여래장식(如來藏識)은 항상 적멸(寂滅)하며, 그 적멸 또한 적멸하다.’라고 말하고 있고, 마지막 총지품(摠持品)에서는 ‘제7식과 제5식은 불생(不生)이고, 제8식과 제6식은 적멸(寂滅)하며, 구상(九相: 제9식을 가리킴)은 공무(空無)이다.’라고 말합니다.”
경의 광대한 뜻을 천고(天鼓)로써, 천의무봉(天衣無縫)한 논리로써 천착하여, 화반탁출(和盤托出)하여 법문하는 원효의 말의 집중력은 예리한 화살촉처럼 좌중을 꿰뚫었으며, 담장 밖에서 뒷꿈치를 들고 매달린 채로 듣고 있던 사람들은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인 채로 원효의 맑고 우렁찬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환호했고, 경내의 귀족들과 백고좌 법석에 앉은 승려들은 원효가 사용하는 수준 높은 언어의 정확하고도 고도로 수련된 표현에 전율했다.
이때 좌중에 있던 금란가사를 두른 고승 한 명이 곧장 입을 열었다.
“소승이 보기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을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백고좌법회에서 질문은 법문 후 질의응답 시간에 가능하며, 엄격한 예절을 지켜야 하며, 일어나서 합장(合掌)하며 명확하고 간결하게, 개인의 사연보다는 교리 관련 질문 우선으로 해야 했다. 원효는 고개를 끄덕하면서 물음을 허용하는 무애함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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