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0장 천의(天意) (4)
원효는 보살들이 부처님께 법을 청하는 내용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부처님께 법을 청할 때는 부처님의 경계와 부처님의 세계에 대해서 궁금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중생들에게 자비심으로 이익을 베풀고자 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이다!” 원효는 다시 한번 무릎을 치며 확신했다.
기억을 더듬어 화엄경의 말씀을 다시금 떠올렸다. “이렇게 부처님께 질문하여 법을 청할 때에는 분명한 이유와 이익이 있다고 화엄경 여래명호품(如來名號品)에서 말씀해 놓으셨지... ‘시방 일체 세계의 모든 부처님 세존이 일체 보살을 성취케 하려는 연고며(如十方一切世界 諸佛世尊 爲成就一切菩薩故), 여래의 종성(種性)으로 하여금 끊어지지 않게 하려는 연고며(令如來種性不斷故 令諸衆生), 일체 중생을 구호하려는 연고며(救護一切衆生故),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영원히 일체 번뇌를 여의게 하려는 연고며(永離一切煩惱故), 일체 모든 행을 분명히 알게 하도록 하는 연고며(了知一切諸行故), 일체 모든 법을 잘 연설하게 하는 연고며(演說一切諸法故), 일체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내도록 하는 연고며(淨除一切雜染故), 일체 의심의 그물을 영원히 끊어 내도록 하는 연고며(永斷一切疑網故), 일체 부질없는 희망을 뽑아 제거하는 연고며(拔除一切希望故), 일체 좋아하고 집착하는 곳을 깨뜨려 소멸하는 연고이니라(滅壞一切愛着處故).’ 이렇듯 부처님의 법은 곧 오로지 중생의 이익을 위함인 것이다...
또 금강삼매경에서도 법을 청하여 부처님께서 답변하심에 탁월한 이익이 있음을 찬탄하셨었지... ‘여래가 사용하는 지혜와 방편은(如來智方便) 마땅히 실제(實際)에 드는 설법이라(當爲入實說) 그러므로 모두 일승법만 수순하여(隨順皆一乘) 그 밖의 뒤섞인 맛 전혀 없으니(無有諸雜味) 같은 구름에서 뿌리는 법의 비이건만(猶如一雨潤) 갖가지 초목이 제각각 무성하네(衆草皆悉榮) 모든 성품마다 제각기 다르지만(隨其性各異) 일미의 법으로 똑같이 적셔 주어(一味之法潤) 빠짐없이 일체를 덮어 주는 것이며(普充於一切) 마찬가지로 똑같은 법의 비 맞았으니(如彼一雨潤) 모두 다 보리의 새싹을 길러 주게 되느니라(皆長菩提芽).’ 음... 부처님의 은혜 참으로 감사하도다...” 원효는 두손 모아 합장했다. 화엄경과 금강삼매경에 있는 부처님의 설법 공덕을 깊이 사유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찬찬히 그 말씀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문밖에서 묵직한 뭔가가 땅바닥에 툭 떨어지는 투박한 소리가 들렸다. 이곳이 워낙 고산지대의 외딴곳이라 인기척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곳이어서, 원효는 의아한 표정으로 방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는 사내 하나가 거무튀튀한 관자놀이에 핏대가 오르더니 눈동자에 피를 심하게 흘리며 나뒹굴어져 있었다. 후퇴를 거듭하던 고구려의 부상병이었다. 부상이 아주 심해서 거동조차 힘들어 보였다. 이리로 겨우 피난처를 찾아든 듯했다.
당시 신라는 당 고종과 연합해 고구려를 무너뜨리려 무단히도 애쓰던 때였다. 당의 제2차 원정 지원과 함께 신라군은 남부 고구려 지역(한성 등)을 점령하며 압박하고 있었고, 당군이 요동·압록강 일대에서 고구려 요새를 점차 함락시키던 때로, 이미 신성·금산 전투 승리를 한 상황이었고, 부여성을 함락, 설하수 전투에서 고구려 군사가 무려 3만이 전사한 상황이었다. 이때 신라는 연합전의 승기를 확신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당과의 미래 충돌을 예감하며 조용히 대비하던 시기였던 것이다.
원효는 급히 자신의 옷소매로 사내의 눈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 준 후 얼른 목에 걸고 있던 염주를 벗어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나무아미타불......” 원효의 손을 꼭 그러쥔 사내의 손이 덜덜 떨렸다. 보기에 아주 앳된 얼굴이었다. “무서웠습니다... 제가 사람을 이 손으로 죽...였...” 원효에게 잠시나마 안겨있던 사내가 덜덜 떨던 손으로 염주알을 천천히 쓰다듬더니, 스르륵 쓰러져 그만 숨을 멎었다. 부지불식중에 의외의 일을 당한 원효는 비록 타국의 병사였지만, 너무나 가슴 아픈 심정에서 그 사내를 가슴안으로 꼭 껴안아 준 뒤, 손바닥으로 천천히 얼굴을 쓸어내려 주며 극락왕생을 빌었다. “나무아미타불...”
숨 막힐 듯한 광기 어린 전쟁의 열기, 신음, 비명이 일상이 되어 서라벌을 흘러 다녔다. 참전자들뿐 아니라, 그의 가족들이 겪을 마음의 치료도 절실하다는 것을 깨달은 원효는 영원한 생명이자 지혜의 광명인 나무아미타불을 그들로 하여금 암송하게 했다. 공포와 망념으로부터 그나마 그들의 마음을 보호할 수 있는 당시 유일하며 강력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이며, 무엇이 먼저고 무엇이 뒤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며, 무엇이 이익이고 무엇이 손해며, 무엇이 바른 것이고 무엇이 삿된 것인지 진정 두려운 것이 무엇인지 모른채 살아가는 이 사람들의 삶이 실로 안타깝기 그지없는 일이로다...” 원효는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깊은 탄식을 내쉬었다.
그리곤 원효는 발원했다.
“대선(大仙)께서 펼치신 광명과 같은 지혜, 진리의 가르침을 우리 모두 어서 어서 깊이 깨달아, 일체처(一切處)의 문수사리보살이요, 낱낱이 지혜광명이 비추지 않음이 없음을 밝고 밝게 요지(了知)하여, 우리들이 받고 있는 이 모든 고통도 그대로 성스러운 진리임을 알게 되기를, 그 고통의 원인들도 그대로 성스러운 진리임을, 그 고통이 사라진 그 자리도 그대로 성스러운 진리임을 광대심(廣大心)으로 깨닫게 되기를... 모두가 성스러운 진리(聖諦)라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되기를...”
“이것밖에 달리 다른 길은 없다... 더욱 정진하고, 참고 견디고 인내(堪忍待)해 내야 한다...”
원효는 두 주먹을 안으로 꼭 움켜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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