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7장 천의(天意) (1)
분황사 근처 초막에서 원효는 집필에 빠져 있었다.
“마음에 그 끝이 없다는 것(心無邊際)은 대승적 일심(一心), 마음의 본체가 두루 현존하여서 시방에 골고루 있으므로 가장자리가 없고, 삼세에 두루하여 특정 시기가 없다는 것이다. 삼세에 두루하여 고금의 차이가 없고, 시방에 보편하여 여기와 저기의 처소가 없다...그렇도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본디 근본 처소란 없는 것이다. 이 말은 끝(末)도 없고 근본(本)도 없고 옴(來)도 없고 이르름(至)도 없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니, 이미 옮도 없고 이르렀음도 없으니 본디 적정한 것(旣無來無至本來寂靜)이다...
손으로 허공을 잡는다는 것에서 손으로 허공을 잡는 것은 능입(能入)의 행위를 비유한 것이요, 허공은 소입(所入)의 근본을 비유한 것인데, 얻음이 아님(不得者)은 허공의 형체를 잡을 수 없기 때문이요, 얻음 아님도 아님(非不得者)은 잡은 것 안에는 허공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처소가 없는 공한 자리에서 실제에 들어가 보리심(佛心)을 발하고 성도(成道)를 원만히 이루는 것이다.” 원효는 일심의 깊은 의미에 몰입해서 써 내려가고 있었다.
“일미(一味)의 모양 없는 이익은 마치 넓은 허공과 같아서 수용하지 않음이 없으면서 그 모든 만물의 타고난 본성이 각각 다름에 따라서 모두 그 근본처소를 얻게 된다.” 그야말로 원효는 공(空)과 공성(空性)을 일심의 근원(一心之源)으로 생각했다.
“이러한 허공의 근원은 또한 초탈적이어서 모든 유무(존재와 무)의 양변을 다 떠나 있어서 홀로 해맑고 깨끗하지만(獨淨), 그래도 그 근원은 모든 두두물물의 다양한 본성을 출현시키고 다양하게 존재하도록 하는 그런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결국 일심의 초탈적 근원으로서의 공성(空性)은 마치 모든 존재자들을 보내고 수용하는 그런 무애(無碍)의 너그러움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내용을 혹자는 ‘초탈적 근거로서의 탈근거(脫根據)’라고 정의한다. 그런 점에서 일심의 근원은 바로 탈근거적인 허공의 공성(空性)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원효는 순간 붓을 잠시 내려놓고 작금의 현실을 돌아보았다.
“인생은 한 찰라와 미진일 뿐인 것 인데... 자신들의 안일만을 위한 위정자들의 안량한 인격과 말라 비틀어진 도덕적 명분만 살리려는 그런 도덕론적 구원이 아니라 본래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존재론적인 구원이 필요하다. 대승은 모든 생명을 위한 사상... 나를 떠나 타인을, 모든 존재를 위한 시선은 결국 나를 구원하는 것이다. 공명의 상관 관계인 것이다.
고통에 얽매여 있는 가시밭길을 벗어나려면 편안한 ‘신발’을 신으면 된다! 저 고통받는 중생들에게 맞는 신발은 뭘까? 저 어려운 한자로 된 부처님의 말씀을 저들이 알 수만 있다면... 한자가 아닌 익숙한 신라에서 그들이 쓰고 있는 말로 부처님의 말씀을 읽고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이런 일을 해야 할 인재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당장은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부처님을 늘 마음에 생각하게 하려면 바로 ‘지혜와 자비’의 의미인 이 염불을 우선 권해야 겠다...” 원효는 바로 하던 일을 멈추고 방을 뛰쳐나갔다. 급했다. 이 이야기를 빨리 전해야 겠다. 저들도 아무 걸림 없이 부처님의 공덕을 마음껏 누리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순간 방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시자스님이 왕궁에서 찾고 있다는 전갈을 원효에게 전달했다. 원효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해 내면에 귀를 기울였다. 원효는 금당에 앉아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혜공(惠空)이 떠올랐다. 스승님이라면 어찌하실 것인가? 시장바닥에서 편안하게 선정에 들던 혜공이 떠올랐다. 순리란 무엇인가. 원효가 눈을 떴다. 맑고 흔들림 없는 안광이었다. 원효가 일어나 뚜벅뚜벅 금당을 걸어 나왔다. 금당 밖에는 대안(大安)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안의 두손을 맞잡고 웃었다. 대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승려로서 그간 받아온 모든 것을 버리고 세상 가장 고독하고 ‘낮은 자리’로 내려가려는 원효를 대안이 가슴 아프게 지켜보고 있었다.
삼한의 제왕이 되려는 자, 김 춘추의 계산은 명민했고,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원효는 분명히 간파하고 있었다. 서라벌 백성에게 각인된 덕망 높은 고승 원효의 명망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 만백성 앞에서 파계를 자인하는 것. 그렇게 되면 원효는 왕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한다. 반전의 기치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백성들의 소요 역시 원효의 추락과 함께 사라질 것이다.
시파계어중(始破戒於中) 겁성도어외(却成道於外)! - 비로소 안에서 계를 깨뜨렸으나, 도를 오히려 밖에서 이루었다! 승려로서의 계율을 안에서(출가자 공동체 안에서)는 어겼으나, 그 계율 파기를 계기로 속세로 나와 민중 속에서 깨달음과 가르침을 성취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이는 대중 교화의 선구자인 혜공(惠空)이 등에 삼태기를 지고 항구에서 술에 취해 춤추며 노래한 것이나, 대안(大安)이 특이한 옷차림으로 장판에서 동발(銅鉢)을 치면서 “대안(大安), 대안(大安)”을 외친 경우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는 대중 교화의 행각을 마친 뒤에는 다시 소성거사 아닌 원효 화상(和尙)으로 돌아가 혈사(穴寺)에서 생애를 마쳤던 것이다.
어명을 받들고 원효를 찾아다니던 내관이 자신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고 다닌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던 원효는 남산(南山) 아래 문천교라는 다리에서 만난 내관의 모습이 낯설지는 않았다.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주겠느냐, 내 하늘을 받칠 기둥을 깎으리로다(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
이는 세상을 향해 부르짖은 절규요, 희망의 메시지였다. 도끼는 권력이요, 자루는 지혜이며, 하늘을 받친 기둥은 세상을 유지하고 이끌어가는 도(道)의 질서, 패러다임, ‘찍어내 버림(斫)’ 은 서라벌의 낡은 질서의 틀을 깨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고자 하는 ‘마음의 혁명’을 일컫는 것이었다.
몇 해 뒤, 요석은 한 아이를 낳았다. 설총(薛聰). 원효는 그 소식을 듣고 하늘을 향해 합장했다. “하늘에서 우리 신라를 위한 인재를 내려 주셨구나. 언젠가 그 아이가 이 세상의 말로 부처의 뜻을 옮겨, 백성들이 스스로 불법의 진리를 그들의 말로 이해하고, 말하고, 전하고, 쓸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제 이 나라에 기둥이 될 동량을 얻었노라.”
그는 다시 길을 떠났다. 발걸음으로 법을 쓰며, 세상 곳곳을 설법으로 적셨다.
“계율은 나를 가두어 두는 울타리가 아니다. 그것은 둘로 쪼개어진 채로 닫혀 있던 계율의 문(門)을 활짝 열어젖혀서, 오롯이 하나의 참된 진리의 자리가 되도록 하였도다.”
원효는 진정 불퇴전(不退轉)의 부동지(不動地) 보살행을 아주 덤덤히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것이었다. 그 누구도 그가 가졌던 진정한 마음(佛心)속 이유를 알아 차리지 못하였다(不識).
그 누구보다 그는 신라의 가장 존경 받는 인류의 스승이자 성인(聖人)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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