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장 화엄삼매 (6)
“그러면, 스승님의 강의내용 중에서 ‘보현행원이 곧 부처님이다’ 라고 하신 말씀에 대해 견해가 어떠하신지요?” 법장은 가장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스승님께서 강의에서 거듭 강조하신 말씀이 화엄경에 이미 나와 있습니다. 즉, ‘이 모든 보살들은 좋은 이익 얻어서(此諸菩薩獲善利) 부처님의 모든 신통력을 보이나니(見佛一切神通力) 다른 도를 닦은 이는 알 수 없지만(修餘道者莫能知), 보현행을 하는 사람 깨닫게 되리로다(普賢行人方得悟).’라고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보현행원이 사람과 유정 무정이 하는 일들 중에 가장 위대한 일인 것입니다. 진실로 위대한 일이란 이렇게 일체중생에게 회향하는 일이어야 하고, 그 회향이라는 것이 곧 일체 유정들을 반드시 이익하게 하여야 하는 것인데, 보현행원은 바로 그러하기 때문에, 일체 세계가 다 보현보살의 몸속에 들어온다고 표현하신 것이지요. 부처님도 또한 보현보살의 몸속에 머무신다고 한 것, 그것이 바로 보현행원은 곧 부처님이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보현보살의 모공 속에는 낱낱이 부처님의 경계가 있다는 말씀이다...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화엄경에 ‘그대는 응당 나의 모든 모공(毛孔)을 관찰하라.’ 라고 한 뜻이 바로 그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보현행원이 아니면 부처님도 불법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의상은 부처님의 지혜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행으로 보현행원을 강조하며, 그대로가 광대한 몸이기도 하며 그 경계는 끝이 없다고 이야기하며, 세상은 그대로 보현행원이며, 세상은 그대로 불법 그 자체며, 불법은 곧 보현행원이며, 만약 보현행원을 제외하면 불교는 없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었다.
법장은 의상의 원명(圓明)한 견해에 감동하여, 이참에 그동안 화엄경 공부를 하면서 마음에 담아 두었던 질문들을 남김없이 하면서 의상의 고견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했지만, 법장의 질문은 여기서 멈추었다.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감사의 예를 표하고는 의상의 거처를 나왔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이곳 장안에서 비로소 화엄불교의 꽃이 피고 있거늘, 의상스님의 화엄에 대한 혜안과 식견은 과연 전생의 인연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도다...” 혼자 천천히 요사채를 걸어 나오며 되뇌고 있었다.
법장은 언뜻 지난 달 스승이신 지엄스님으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를 기억해 내었다. 기억한 이야기의 내용은 이러했다. 어느 날, 스승인 지엄선사가 제자 의상에게 물었다. ‘너는 매일 정오만 되면 어디서 그렇게 향기로운 음식을 가져와 먹느냐?’ 의상은 숨김없이 사실대로, 천신(天神)들이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는다고 답을 했다. 답을 들은 지엄스님은 ‘그렇다면 나도 그 천신의 공양을 구하고 맛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의상은 흔쾌히 다음 날 정오에 스승님을 초대했다. 그러나 다음 날 정오, 지엄스님이 자리에 앉아 기다렸지만, 그날따라 천신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천신들이 빈손으로 나타나 의상에게 말했다. ‘대사님, 죄송합니다. 분명히 공양물을 들고 오고 있었으나, 이 일대가 신령스러운 기운과 수없이 많은 호법신장(護法神將)들로 꽉 차 있어서 감히 안으로 발을 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고 하였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이 이야기를 들었던 그 당시에는 스승님의 도력과 내면의 법력(法力)을 감탄하고 경외한 마음뿐이었지만, 그때 흘려 들었던 의상에게 천신들이 공양을 올린 이야기는 당시에는 그가 얼마나 '계율의 화신'이었으면 그랬을까 생각하며, 잠깐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단순히 생각하고 말았지만, 오늘 이렇게 법담을 나눈 법장에게는 다만, 수행이 철저하고 계율이 맑다고만 들었던 의상이 과연 하늘의 제석천이 감동하여 천녀(天女)나 천신들을 보내 ‘하늘의 음식’을 공양 올리게 했다고 한 스승님의 이야기가 어느덧 마음속에선 확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법장은 의상의 ‘보여지는 신비로움'보다 스승님 못지 않은 '내면의 깊은 법력'의 위대함을 깨닫고, 본인도 더욱 수행에 정진할 것을 재차 다짐하며, 처소로 총총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법장이 자리를 뜬 후 의상은 법장이 머물렀던 자리를 정리하고는 조용히 앉아서 생각에 잠기다가, 문득 머리 속에서 선재동자가 해문국(海門國)에 이르러 친견한, 세 번째로 찾은 선지식인 해운비구(海雲比丘)가 떠올랐다. 이 해운비구 선지식은 12년간이나 큰 바다(深海)를 수행 대상으로 삼아 수행해 온 선지식이었다.
“부처님의 은혜를 갚는 길은 오로지 중생을 위한 불법의 회향에 있다. 화엄경 입법계품(入法界品)에 선재동자는 해운비구를 찾아가서 얻은 보안법문(普眼法門)을 듣고는, 대비심(大悲心)을 발하고 생사의 바다를 관찰하는 광대 무한한 수행을 하였는데, 이 수행은 모든 중생을 구제하는 자비와 지혜의 눈으로 법계를 장엄한 수행이었다.” 의상은 현재 자신의 상황을 반추해 보며 이 선지식의 가르침을 생각했다.
“이 해운비구 선지식은 자비심(慈悲心)을 내어 세간을 복되게 하고, 고통받는 중생들의 괴로움을 없애며, 안락심(安樂心)으로 그들의 모든 괴로움을 없애 편안하게 하고, 요익심(饒益心)으로 그들이 모든 악법을 버리게 하고, 애민심(哀愍心)으로 두려움을 수호하고, 무애심(無礙心)으로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는 모든 장애를 여의게 하고, 광대심(廣大心)·무변심(無邊心)으로 온 법계와 허공을 가득 채우며, 관박심(觀薄心)으로 여래를 모두 다 친견하고, 청정심(淸淨心)으로 세 세상 법에 지혜가 어그러지지 않게 하고, 지혜심(智慧心)으로 모든 중생들을 일체 지혜 바다에 들게 하였다. 해운비구는 보문(普門)의 선근 광명과 진실한 삼매를 갖추라고 권고하였다... 바로 모든 중생을 사랑하고 평등한 마음으로 정진해야 보리심이 발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렇다! 이 마음들의 실천이 바로 보리심(菩提心)의 근본(根本)이 되는 진실한 가르침의 실천이다! 나 의상! 자만하지 않고 더욱 더 겸손하게 끊임없이 그리고 부지런히 정진할 것이다... 저 앞벽에 걸어놓은 사형의 금언을 명심하여 절대 잊지 말자.” 의상은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의지를 더욱 드러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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