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공부

원효대사와 의상대사제4권 《지혜의 불꽃》 - 제1장 정안왕(淨眼王) (1)

qhrwk 2026. 5. 6. 07:50

 

제1장 정안왕(淨眼王) (1)

태종 무열왕으로부터 무사히 왕위를 넘겨받은 문무왕은 그 재위의 중반을 넘기고 있던 시기였다. 왕실의 위기라고도 할 수 있을 사건 하나가 일어났다. 당시 문무왕의 왕비 파진찬 선품(善品)의 딸, 자의왕후(慈儀王后) 김씨가, 후에 문무왕의 대를 이은 신문왕을 낳은 후 얼마 되질 않아서 머리에 악성 종양 등의 중병을 앓게 되었는데, 의관이 약을 써도 약효가 없었고, 신하들이 산천 영사(靈祠)에 기도를 올렸으나 역시 효험이 없었으며, 황룡사 고승들의 기도의 영험 또한 없었다. 그 때 어떤 무당이 타국에 사람을 보내 약을 구하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하므로 왕은 궁여지책으로 사신을 동원해 당나라로 왕비의 병을 치유할 약을 구하러 보내게 되었다.

하지만, 당나라로 가는 도중에 사신의 배는 험한 난류로 인해 풍랑을 만나 난파되었다. 그런데 그 바닷길 사이로 거친 물결을 헤치고 한 노인이 나타나서 사신을 용궁으로 안내하였다. 용궁의 검해(鈐海)라는 용왕이 화려한 연회를 베풀고 사신을 성대히 맞이했다. 용왕은 연회에 참석한 사신을 향해 말했다.

“너희 나라의 왕비는 청제(靑帝)의 셋째 딸이다. 우리 궁중에는 예로부터《금강삼매경》이라는 경전이 전해오고 있는데, 이각(二覺)이 두루 원만하게 보살행을 닦는다는 내용이다. 지금 왕비에게 병이 있으니 이 경을 증상연(增上緣)으로 삼아 너희 나라에 유포시켜 왕비의 병을 치유하도록 하라. 그리고 이 경은 책장이 다소 뒤바뀌었을 수 있으니, 대안성자(大安聖者)를 모셔 차례대로 맞추게 해서 책으로 묶은 다음, 경의 순서를 찾게 하고, 원효법사(元曉法師)를 청해 소(疏: 주석)를 지어 강론케 하라. 그렇게 하면 왕비의 병이 틀림없이 나을 것이다. 설산의 아가타 영약의 효험도 이보다는 못하리라.” 용왕이 언급한 대안(大安)스님은 원효와 함께 서민 중심 포교를 펼친 신라의 동시대 고승으로, 그의 화쟁 사상과 불교 대중화 실천을 높이 평가받는 스님이다.

이에 용왕은 약 서른 장쯤 되어 보이는 종이 뭉치를 가지고 와서 사신에게 전해 주었다. 이와같이 용왕은 특별히 신라 사신에게 왕비의 병의 치유를 위한 특효약을 제시했다. 용왕은 바다를 건너는 도중에 마구니의 장난이 있을까 염려하여 직접 사신의 허벅다리를 갈라 그 안에 경전을 넣은 다음, 납 종이로 동여매고 약을 바르니 곧 원상대로 되었다. 그리고 신라로 돌아가는 뱃길에 용 두 마리가 배를 호위하도록 하여 사신의 배를 인도하며 서해를 빠르게 건너도록 도와서 풍랑 없이 무사히 육지에 도착하도록 하였다. 사신은 용왕의 전송을 받고 무사히 귀국하게 되었다.

문무왕은 사신의 보고를 접하자마자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전달된 뒤죽박죽된 금강삼매경을 용왕의 예언대로 대안을 불러 차례대로 책을 묶게 하였고, 원효에게는 주석을 강론하도록 전갈하였다. 더불어 왕실 의례를 동원해 법회를 성대히 치를 것을 명하게 되었다. 이는 왕비의 병을 치료하기 위함이라는 절박한 명분과 상황 속에서 불법의 신비적 권능에 대한 왕의 신앙을 반영한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대안이 경전을 배열하여 여덟 품을 만드니, 모두 부처님의 뜻에 합치하였다. 대안이 왕에게 말하기를, “이것을 원효에게 가져가 강론하게 하십시오. 이 경전을 주석하고 강론할 수 있는 이는 원효밖에 없습니다.” 라고 재차 왕에게 건의했다. 왕은 당시 승려들이 원효의 파계 행적을 문제 삼아 참석을 반대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그 내용을 잘 알고 있었으나, 그러한 불교계 반대를 제지하며 법회를 강행하도록 명하였고, 즉시 대안과 원효를 청해 황룡사 인왕백고좌법회를 준비하도록 했다. 특히 왕은 원효의 강론을 통해 왕비의 병의 치유를 기대하며 마음껏 후원하게 되었다.

한편, 원효는 고향에 머무르고 있다가 대안으로부터 경전을 전달받고, 그 배경이 직접 법회에 참석해 그 내용을 풀어 주석해서 강론해 달라는 왕명임을 전해 듣고는 급히 경전을 받아서 논을 짓기 위해 사신에게 다음과 같이 요청했다. “이 경전은 시각(始覺)과 본각(本覺)의 두 깨달음(二覺)을 근본으로 하고 있으니 소가 끄는 수레를 준비해서 책상을 소의 두 뿔 사이에 놓고 지필묵을 비치해 주시오”라고 하고는 원효는 소를 탄 채 법회에 참석차 서라벌 황룡사로 향했는데, 가는 동안 소의 뿔 사이에 경전을 놓고 사흘 만에 소(疏) 다섯 권을 썼다.

그러나 왕의 백고좌법회 강론 요청에 의해 서라벌 황룡사에 도착한 후, 오는 길에 써 놓았던 그 주석서를 누군가가 훔쳐 가 버린 것이다. 강론할 원고를 갑자기 잃어버린 바람에, 원효는 급하게 왕에게 아뢰어, 사흘의 말미를 더 얻어 약소(略疏, 요약해설집) 세 권을 다시 써서 강론을 준비하게 되었다.

이후 강론을 성대히 마친 뒤 원효가 말하기를 “지난날 서까래 백 개를 고를 때는 끼지 못했었는데, 이제 용마루 하나를 고르는 자리에는 나 하나만이 있구나.” 라고 말하니 법회에 모였던 그리고 원효의 법회 참석을 반대했던 승려들이 부끄러워하고 참회했다고 전한다.

원효는 왕과 신하, 귀족들, 그리고 승려와 속인이 구름같이 모인 가운데 이 경을 백고좌법회에서 강설하였다. 설법에 위의(威儀)가 갖추어져 있었고, 어려운 대목을 해석할 때는 그 논지가 만고(萬古)의 법칙이 될 만하였으므로, 그 법회를 칭찬하는 소리가 허공에 비등(比等)하였다.
원효의 명성이 비로소 다시 현양(顯揚)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