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그대들이 왜 여기에 왔는지 모른다.
아마 그대들 또한 그 이유를 모를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왜 사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살아간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왜?’라고 자문하지 않는다.
우리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이렇게 삶 전체를 덧없이 낭비한다.
그러므로 그대들 모두가 목적도 모르면서 여기에 왔다 해도 그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몇몇 사람은 그 목적을 인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우리는 깊은 잠과 같은 무의식 상태에서 살아간다.
걷고, 보고, 듣는 것 모두가 그런 상태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우리는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명확하게 말해진 것을 듣지 못한다.
사방에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분명한 것들을 경험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대들이 이유도 모르면서 무의식적으로 여기에 왔다 해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이유를 모른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나 무의식적이기 때문에 숨 쉬고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이 자리에 앉아있는 이유를 나는 잘 알고 있다.
그것이 바로 그대들에게 나누어주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의 의문은 수많은 생 동안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수많은 생을 거치면서 노력한 후에야 지복, 평화, 진리, 신, 또는 모크샤나 니르바나라고
불리는 세계를 힐끗 엿보게 된다.
그 세계를 어떤 이름으로 부르건 그대의 자유이다.
사실, 그것을 표현할 단어는 없다.
그대는 수많은 생을 거친 후에야 그 세계를 깨닫는다.
그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것을 발견한 후에는 완벽한 즐거움을 만끽하는 일만 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터무니없는 착각이다.
그 세계를 얻은 후에 그들은 그것이 새로운 노동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거기엔 새로운 과제가 기다리고 있으며 휴식할 틈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것을 발견하려고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던 사람들이 일단 그것을 발견한 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나누어주려고 사방으로 달려간다.
그렇지 않았다면 붓다가 여러 곳을 방문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마하비라가 우리의 문을 두드리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리스도가 우리를 초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궁극의 세계와 접촉한 후에는 새로운 과제가 시작된다.
삶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모든 것은 그대가 그것을 발견한 후에 즐거움과 지복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더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지복의 세계, 또는 신의 세계에 들어가 축복을 맛본 사람은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
<생명의 에너지를 일깨워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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