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법정)

맑고 향기롭게 2.당신은 행복한가-사막의 교부들

qhrwk 2022. 6. 21. 11:22

♣사막의 교부들♣

지난번 왜관 김상진 신부님이 산을 다녀가면서 주고간 두권의 책 중에서 <사막교부들의 금언집>을 요 몇칠 동안 읽었다.

같은 수행자의 처지가 아니더라도 투철하고 준엄한 사막 교부들의 그 구도 정신에 큰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오늘 내 자신이 출가 수행자의 이름을 빌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돌이켜  볼때 크게 부끄러웠다.

사막의 교부들이란, 2세기에서 5세기에 걸쳐 사막에서 일생을 건 수도 생활로 하느님의 길을 걸어간 초기 수도자들을

통틀어 일컫는 명칭이다.
그들을 생활환경이 그토록 천박한 사막에서 수도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한 외적인 요인은,로마가 그리스도교를

박해한데 있었다.

박해로 인해사막의 수도 생활이 이루어졌고, 또한그 박해의 종식과 함께 수도 생활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에 이른 것이다.이러한 사정은 중국 선종사에서도 비슷하게 작용한다.불교 교단이 국가 권력에 의해 혹심한 법난(박해)을 당할 때 왕권의
 비호를 받던 교조은 지리멸멸하게 되지만 어디에도 의존함이 없이 맑고 끗끗하게 구도자의 삶을 지키며 민중과 함께 하던 선종은 그 잠재력을 기량껏 발휘하면서 크게 번창하기에 이른다.

국가 권력의 비호를 받아야 기를 펴고 박해 아래서는 찍소리도 못하고 주저 않고마는 그런 종교는온전한 종교라고

할 수 없다.
짓밟힐수록 파릇파릇새싹이 돋아나는 잔디와 같은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종교야말로 인류 사회에기여 할 수 있는 

건강한 종교가 될 것이다.

<금언집>에는세속적인 눈으로 보면 너무도 우직하고 고집불통이고 기이한 일화들로 가득 차 있는것 같지만, 

그 일화들의 행간을 통해 우리는 영원히 시들지 않는 끗긋한 구도자의 자세와마주치게 된다.

그것은 또한 오늘 우리들 모습을 비춰 볼 수 있는 맑은 거울이기도 하다.

스케테의 수도자들은 그들이 어떤 덕행이 누군가에게 들키게 되면, 즉그들이 무슨일을 하고있는지를 누군가가 

알게 되면, 그일을 더는 덕행으로보지 않고 죄악으로 간주 했다고 한다.

그들의 결백성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다.
요즘의 우리들은 자신이 행한 일보다도 더 명상을 드러내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 보아야 한다.

한 교부가 원로를 찾아가 이렇게 말한다.
"사부님, 제게 한 말씀 해주십시요. 어떻게 하면 제가 구원 받을 수 있겠습니까?'
"자네 영혼을 구하고 싶으면 누군가를 찾아 갔을때, 그가 자네에게 묻기 전에는 먼저 말을 꺼내지 말게."
침묵이 구원의 길에 어떤 몫을 하고 있는지를 넌지시 깨우쳐 주고 있다.
그들은 맹목적으로 침묵만을 고수했던 것은 아니다.침묵의 상대적인 의미도 알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겉으로는 침묵을 지키지만 마음속으로는 남들을 꾸짖는다.

즉, 쉼없이 지껄이고있는 거와 다름이 없다. 또 어떤 사람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을 하지만 침묵을 지킨다.

필요 없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기 대문이다."


한 교부가 말 했다.
"만약 수도자가 두가지 것을 싫어 한다면 그는 이 세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
한 수사가 물었다.
"그게 뭔데요." 교부는 대답했다.
"안락과 허영심이라네."
수도자에게 있어 이 안락과 허영심은 정신을 좀 먹는 암이다.

그저 편하기만 원한다면 그는 갇힌 물이나 다름이 없어그 안락 때문에 썩고 만다.
살아 있는 생명은 늘 꿈틀거리며 움직인다.
살아 움직이는 존재만이 거듭거듭 자신의 삶을 개조 하면서 부활한다.
허영심과 허세는 실이 없는 겉치래, 세속을 등지고 나온 수도자가 다시 세석적인 허영심과 허세를 부린다는 것은 아직도

세속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분수도 모르고 수도자가 나설 자리인지 넘서서는 안될 자리인지를 가리지 못하고 함부로 설치며 주책을 

떨게 되는 것이다.

어떤 교부는 이 세상을 하직 할때 그를 돌보던 한 수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 사막에 와서 손수 독방을 짓고 그 안에서 살기 시작한 날부터 내 손으로 일해서 구하지 않은 빵은 먹은 기억이

없고, 했던 말을 지금껏후회한적이 없네. 그러나 이제 주님께로 막 떠나려 하니 하느님께 봉사하는 일을 숫제 시작도

하지 않은 느낌이라네."

가난과 겸손을 평생 닦아 온 수도자가 마지막 목숨을 거두는 순간에 와서 ,하느님께 봉사하는 일을 숫제 시작도 하지 

않은 느낌이라니, 그런 마음이야 말로 겸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람은 하느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록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된다고, 한 교부는 말하고 있다.

안토니오 교부는 하느님의 심오한 생각들에 대해 깊이 탐구해 보다가 이렇게 여쭈었다.

"주여 어떤 사람들은 아주 늙도록 오래오래 사는데, 어째서 어떤 사람들은 젊어서 일찍 죽습니까.?어떤 사람들은

좋은 것을 넘치도록 소유하고 있는데 어째서 어떤 사람들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어째서 악한자들은 부자로 살고, 착한 사람은 가난에 짓눌려 살아야 합니까.?"

허공에서 한 목소리가 그에게 대답했다.
"안토니오야. 네 자신의 일에나 전념하거라. 그런것은 하느님의 의견들이니 그걸이해 한다고 해서 네게 유익할게

무엇이나."

<중아함 전유경>에 나오는 '돋묻은 화살의 비유>가 연상된다.
형이학적인 물음에 대해서 아무 대꾸도 하지 않다가 이런 말씀을 하신다.
"나는 세계가 무한하다거나 유한하다고 단정적으로 말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치와법에 맞지 않으며,

수행이 아니고 지혜와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길이 아니고,열반의 길도아니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한결같이 말씀하신 법은,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의 소멸과 괴로움의 소멸하는 길이다.

왜냐 하면 그갓은 이치에 맞고 법에 맞으며수행인 동시에 지혜와 깨달음의 길이며 또한열반의 길이기 때문이다.
사막의 교부들은 철저하게 무소유를 지켰다,무엇인가를 갖게 되면 그만큼 영혼이  불결해지는 것으로 인식했던 모양이다.

가난과 고행과 겸손과 사람을 피함이 그들의 공덕적인 수덕이었다.
어떤 사람이 수도자가 되기 위해세속을 버리면서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그중 일부를 남겨 두고 원로를 찾아갔다. 

원로는 그 사실을 알고 그에게 말했다.
"자네가 진심으로 수도자가 되고 싶다면 마을로 가서 고기를 사게.옷을 벗고 맨 살에다 그 고기를 바른 뒤 다시오게."
그는 시킨대로 했다. 

들개와 새떼들이 그에게 달려 들어 살에 붙은 고기를 먹느라 그의 몸을 상처 투성이로 만들었다.

원로는 그에게 말 했다.
"세속을 버리고도 돈을 갖고 있기를 원하는 사람은 악마들이 그를 공격해 올때 그처럼 온 몸을 상처 투성이로

만들고 만다네."


돈이 많이 들어오는 절의 주지 자리를 놓고 서로 차지하기 위해 쇠 파이프와 각목, 심지어 가스청으로 무장한 

폭력배까지 동원하여 싸우는 작금의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 것인가

우리가 무엇 때문에 부모 형제와 세속의 인연을 끊고 출가 했는지 그 근본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휴정선사는 일찍이 말하지 않았던가?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랴,편하고 한가함을 구해서도 아니며,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으려고 

한 것도 아니며 어떤 지위나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다.오로지 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며 번뇌의 속박을

끊으려는 것이며, 끝없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이다."

어떤 한 사람이 한 성녀에게 가난이 선행인가 물었는데,성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난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훌륭한 선행입니다.왜냐하면,가난을 참아 낼 수 있는  사람은 육체적으로는 괴롭겠지만 

영혼의 평화를 얻기 때문입니다.굳센 영혼은 자발적인 가난에 의해 점점 더 강해집니다."
가난하고 배고픈데서 道心도심이 우러나는 것이지,풍족하고 배부르면 번놔와  망상이 뒤끊게 마련이다.

어떤 교부는 황야에서 살았는데,빵을 얻기 위해 몹시도 고생하고 있었다.
하루는 자기가 만든 수공품을 팔기 위해 시장으로 갔다. 
그때 누군가 천닢의 금화가 든 지갑을 잃어버렸는데, 교부는 그 지갑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두었다
.지갑의 주인이 반드시 돌아오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연 지갑을 잃은 주인은 몹시 낙담하여 돌아왔다.교부는 그를 불러 지갑을 찾게 해 주었다.
지갑의 주인은 사례조로 금화를 얼마 내놓았지만 교부는 완강히 거절했다.
그때의 수도자들은 불로소득을 악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자 지갑의 주인은 고함을 질렀다.
"다들 와서 보시요! 이 하느님이 무엇을 했는지를."
교부는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보고 돈지갑을 찾아준 것을 치하 할까봐 남몰래 도망쳐서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수도자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질문받은 원로가 대답했다.
"선은 무엇이나 실천하고,악은 깡그리 끊어야 하네."
제악막자 중선봉행.어떤사람이 원로에게 물었다.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돗자리를 엮고 있던 원로는일감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이렇게 대답했다.
"그대 눈에 지금 보이는 바를 행하게."
종교란 말 끝에 있지 않고 당장의 행동에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다.그러나 살아 있는 나무는 푸르다."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에에게 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