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법정)

무소유 삶 3.말고 향기로운 사람들-맑고 향기로운 사람들

qhrwk 2022. 7. 6. 22:42

♣맑고 향기로운 사람들♣

1992년 7월.법정은 길을 재촉했다. 

그는 진주 덕진 공원을 들른 다음 독립기념관을 향해 바쁘게 걸음을 옮겼다.

덕진 공원은 예전에 비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꽃이 아름답게 무성했던 것이다.

법정은 해마다 7월이면 덕진공원을 찾아가 한나절 연못가를 돌아 연꽃과 놀다가 오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겼다.

그러나 독립기념관은 반드시 확인 할 것이 있었기 때문에그는 발길을 재촉했다.
 이익고 독립기관의 백련못 앞에 우뚝섰다. 

그는 눈을 의심하면 안내판을 노려 보았다.

안내판에는 '백련못'이라고 똑똑히 써 있었는데 8.00평 가까운 그 백련못에는 연이 한포기도 없었다.


한 원로 화가에게 들은얘기는 사실이었다.

법정은 심한 충격에 빠졌다.
연못에 연꽃이 없는 것은 마치 찐빵에 앙꼬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인은  원로 화가는 그렇게 말했다.
"내가 독립기념관을 지을 때 정원에 대해서 관계 기관으로부터 자문을 받아 연못에 백의민족을 상징하는백련을 심었어.

그때 참백련을 구하느라고 고생해서 어제 일처럼 기억이 생생해. 멀리 지방에까지 수소문을 해 어렵사리 구해다가
 그 참백련을 심었지. 

 

그런데 그후 연이 잘 크는지 보기 위해 가 보았더니,
아, 글쎄 연은 어디로 가고빈 못만 덩그러니 있더라고!"
"도대체 무슨 일이지?" "그래서 나도 확인하러 담당자를 찾아서 물어봤는데....."
지인이 알아보니 어처구니 없게도 사람들이 일부러 제거했다는 것이다.

 법정은 내침김에 서울로 향했다.서울에 도착해서는 일부러 경복궁과 창덕궁의 후원인 금원을 찾았다.

연못에 연꽃이 제거된 현상은 마찬가지였다.
예전에는 비원이라고 불렀던 금원에는 연꽃의 다른 이름인 부용에서 따온 부용정과 부용지가 있지만 역시

연꽃은 볼수 없었다.법정은 얼굴을 감사쥐었다.

불교에 대한 박해가 말할 수 없이 조선왕조 때 심어서 가꾸어온 꽃이 자유민주주의 체제 아래서 뽑혀 나간 것이다.

연꽃의 수난을 어떻게 받아 들려야 할지 알수가 없었다.
"꽃에게 물어보라.꽃이 어떤 종교에 소속된 예속물인가.불교 경전에서 연꽃을 비유로 드는 것은 어지럽고 흐린 세상에

살면서도 거기 물들지 말라는 뜻에서다.
불교 신자들은 연꽃보다 백합이나 장미꽃을 더 많이 불전에 공양하고 있는 실정이다.

아, 연못에서 연꽃을 볼 수 없는 그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법정은 그날의 비통함을 글로 남겼다.그러자 얼마후 청화대에서 연락이 왔다.
진상을 알아 본 결과 연못에 사는 비단 잉어가  다 뜯어 먹은 것으로 보고 되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법정은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피력했다.

"대통령게서 필자닌 내게 사람을 보내와 일러 주었다.

그러면서 다시 예전처럼 연못을 가꾸어 놓으라고 지시해 놓았다는 것이다.

그 지시가 제대로 이행 되었는지여부를 확인 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물고기는 사람들처럼 자기네의 먹이를 씨까지 말려가면서 한꺼번에 모조리 뜯어 먹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 전주 덕진 연못에는 물고기들이 많이 살지만 연꽃은 무성하다."

같은 해 4월 불일암을 떠나 강원도 오두막에 홀로 들어간 법정은 세상 밖으로  나와 한 일은 '연꽃찿기'였다.

그에게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기 이전에 자연 그 자체였다.

20년이 넘도록 자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에 대해 그토록 이야기를 해 왔건만,세상은'그깟 종교'적인 이유로

인위적으로 자연을 헤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고 법정은 어떤 깨달음을 얻었을가?

1975년 송광사 불일암에 들어간 이후 오로지 '글'과 '대화'로써 자신의 뜻을 피력해 왔던 법정은
1990년대 들어서도 다시 행동하는 양심으로서보폭을 넓힌다.

그것은 버리고 떠난 후에는또 다른 각성이었다.

이때 그의 삶을 관통했던 것이 바로 '맑고 향기롭게'라는 모임이었다.

'맑고 향기롭게'는1994년1월1일 창립운동봄부가 꾸려지고 같은 해 3월 시민 모임으로 발족했다.

회주는 법절이었다.

이것은 법정이 불일암을 거쳐 세상에 내 놓은 화두다.

"자신을 경계하고 작은 것이라도 감사하며,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고 말한 법정의 말처럼 맑고 향기롭게는 스님의

뜻에 따라 만들어져 지금까지 15년여  동안각종 봉사와 나눔 운동을 펼쳤왔다.

'맑음은 개인의 청정을.향기로움'은그 청정의 사회적 메아리를 뜻한다.
'맑고 향기롭게'는 발족 첫해'우리 꽃씨 나누기'와 관음대비 양로원 방문,'맑고 향기로운 음악회'등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또한 영아시설 방문' 등산로 매립쓰레기 캐내기' 사찰 환경생태기행,알뜰시장개설,노숙인,노인 대상 무료
급식시설 운영,결식 가정을 위한 밑반찬 지원산업 등으로 점차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맑고 향기로운 음악회'에서

생긴 수익은 중.고교생들을 위한 학비 지원에 쓰였다.이런 사업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세계 외환위기가 몰아쳤던 1998년에는 명예 퇴직자를 위한 공간인  '내일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개설해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찾아와 마음을 다스리고,내일을 다시 준비할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맑고 향기롭게'는 마음과 세상, 자연을 맑고 향기롭게 하자는 3대 실천덕목을 표방하고 있다.

맑고 향기로운 마음을 늘 지니기 위해참선 수행을 하고,좋은  글을 항상가까이 할 것을 권하고 있다.

월간지 맑고 향기롭게를 발간하고 매달 '맑고 향기로운 책'을선정해 함께 읽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다.

'맑고 향기롭게'는 또 세상을 맑고향기롭게 만들기 위해 외로운 결식 이웃들을 위해 작은 정성이라도 나누도록 하고 있다. 자연을 맑고 향기롭게 하기 위해 우리꽃과 나무를 심고 가꾸며 생명의 존엄을 배우고 사소한 일상생활일지라도
생태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법정은 맑고 향기롭게 운동을 시작한 초기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 생각을 일의켜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에 나서게 되었지만 별다른 뜻은 없다.

우리 시대가 하도 혼탁하고 살벌하고 메말라 가는 새태이기 때문에 본래 맑고 향기로운 인간의 심성을 드러내어

꽃피워 보자는단순하고 소박한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다...

세상을 탓하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을 맑고 향기롭게 지닐 때우리 둘레와 자연도맑고 향기롭게 가꾸어 질 것이고,
우리가 몸담고 살고 있는 세상도또한 맑고 향기로운 기운으로 채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