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등을 떼어 주며♣
1989년 2월4일 불일암에 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법정은 애도하는 마음을 담아 글을 써내려 가고 있었다.
그날 해방 후 이땅에 비폭력 민권운동을뿌리내렸던 함석현 선생이 떠났다.
법정은'죄송스럽고 송구스럽다'며 책상 머리에서 떠날 줄 몰랐다.
이날 법정의 글은
"말로만 듣던 사람은 가고 기억만 남는가? 함석현 선생님이 어느덧 고인이 되셔서 그 기억을 더듬으려고 하니,
새삼스럽게 삶의 허무를 되세기지 않을 수 없다.
우리들도 언젠가는자기 삶의 그림자를 이끌고 태초 생명의 그 바다로 돌아 갈 것이다."며
원고지에 글을 옮기기 시작했다.
법정은 1965년 한석현을 처음 만났다.
그해에는 한일국교정상화로 인해 역시나 몹시 시끄러운해였다.
법정은 해인사퇴실당 선원에서 정진하며 장준하와 교분을 맺고 있었다.
함석현을 처음 만난 것은 사상계에서였다.
법정은 원고청탁 관련일을 마치고 돌아서서 나가려는 찰라 이제 막 문을 열고 들어선 함석현 선생을 만난 것이다.
"아, 선생님 오셨씁니까?이분은 법정 스님이십니다."
잡지사 직원은 대신 인사를 시켜 주었다.
법정은 지면으로만 만났던 필자를 직접 만났다는 반가움에 합장을 올렸다.
"반갑습니다.선생님.어딜 다녀오시는 길인가 봅니다."
"예,동국대에서 강연이 있어 다녀오는 길입니다. 장선생이 필력좋은 스님이 있다고 하더니 스님을 두고
한 말인가 봅니다."
두 사람의 교분은 법정이 우리말 『불교법전』을 편찬하기 위해서울 봉은사로 자리를 옮기면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함석현 선생이 『씨알의 소리』를 창간하면서법정은 편찬위원으로 일을 했고 자연스레 둘의 만남이 빈번해 졌던 것이다.
함석헌은 종종 일 때문이 아니라 차를 마시기 위해 다래헌에 들렀다.
그들은 차를 마시며 마하트마 간디며 칼릴지부란,노자등에 대해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했다.
법정의 기억에 함석현은 노인답지 않게 아름다움앞에 천진한 면모를 드러내는 사람이었다.뜰에 피어 있는 꽃을
보면 무심히 지나치지 못하고 꽃을 눈여겨 살피면서 꽃에 대한 해박한 이야기를 해주는 정겨운 선생이었다.
원료로 집에 작은 뜰과 온실에도 여러 가지 화초를 심어 손수 가꾸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한번은 초파일 때 만든 연꽃등을 방에 달아두었는데 함석현은 연등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린아이처럼 연등을 보며 감탄하는 함석현을 보며 법정은 속으로 웃었다.
함석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법정은 연등을 떼어 드렸다.
"선생님 저는 이 연등을 보며 즐길만큼 즐겼으니 가져 가시죠."
"정말 그래도 괜잖겠소?"
좋아하는 함석현을 보며 법정도 기뻤다.
함석현 선생과 좋은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씨알의 소리』관계자들은 정부의 요시찰 대상이었다.주일마다 열리는『씨알의 소리』의 편집회의에서는 항상
담당형사나 정보기관 담당자가 따라 다녔다.
편집회의는 면목동 전세방에 살고 있던 장준하의 집과 신촌의 김돌길 박사의 집, 그리고 법정이 기거하던 봉은사
다래헌으로옮겨 다니면서 열렸다.쌍방이 서로 신경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봉은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날의 모임에 누구누구가 참석했다고 담당 형사가 전화로
상부에 보고 중인 장면을 목격한 법정은 홧김에 그 전화기를 빼앗아 그의 면전에서
돌에 던져 박살을 내 버렸다. 어디까지나 젊은 날의 법정이었다.
둘의 만남은 불일암으로 옮겨갔다.
1975년 가을,법정이 서울을 떠나 조계산 불일암으로 옮기자,법정의 산거에 한번
오겠다는 함석현의 서신이 왔었다.법정은 '언제든지 오시라'는 화신을 보냈다.
함석현은15~16명이나 되는 장자모임 회원들을 이끌고 왔다.
회원들은 송광사에 묵고 함석현은 법정과 함께 불일암에 올라 하루밤을 지냈다.
그때 나눈 대화중에 법정은 함석현의 이 말을 잊지 못했다.
"나도 젊다만 산속에 들어와 중이나 되었으면 좋겠소."함석현은 침통한 어조로 말했다.
불일암에 올랐을 때부터법정이 보기에 함석현은 몹시 지쳐 보였었다.
법정은 마음이 무거워졌다.법정은 이날 만남에서 또 하나 잊지 못할 허물을 보였다.
사실 혼자사는 사람에겐 늘 따라다니는 일이기에 법정의 실수라고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함석현이 하루 한끼를 그것도 저녁을 먹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된 식사를 대접하지 못한 것이다.
양식은 있었지만 20면 가까운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그릇과 수저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법정은 궁리끝에 고구마를 쪄 내왔다.젊은 사람들은 별식이라고 좋아했지만 하루 한끼밖에 안 먹는 노인이
고구마로 끼니를 대신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한 일이었다.
함석현은 겨우 두 갠가 먹고 먹기를 그만 두었다.
법정은 함석현이 떠난1989년 그와의 오래전 일을 낱낱이 떠올렸다.
그리고'그저 죄송하고 송구한 마음'으로 글을 써내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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