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배운 인생 수업♣
법정은 점점 먼곳을 방문하고 떠돌기 시작했다.
여전히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번다하게 느껴졌지만 막을 수도 없었다.
또 어느 자리에서 자신을 청하면 못 간다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광주민주화항쟁 이후 법정은 피곤함을 뒤로 하고 조금은 더 적극적으로 세상으로 나갔다.
그렇다고 반드시 목적을 갖고 세상에 나갔던 것은 아니다.
타 지역역의 법회를 참석하러 가다가,혹은 저자의 시장에 곡식을 팔러 가다가 본 세상을 그대로 바라보았을 뿐이다.
법정은 어느날인가 가까운 저자에 나가 쌀과 콩을 팔고 망가진 굴뚝을 고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그곳에서 법정은 눈살을 찌푸렸다.
사람들이 팔을 드러내고,종아리를 걷어 붙이고,속살까지도 훤히 내비치는 옷을 조금도 스스럼없이 걸치고 나다녔다.
우리몸에 짐승처럼 털이 돋지 않은 것은 옷으로써 알맞게 가리라는뜻으로 살아온 법정에게 1980년대의 속세 풍경은
생경하게만 느껴졌다.
불쾌한 심정으로 시외버스 터미널을 찾아 차가 오기를 기다리면서는 더욱 황당한 일을 목격했다.
때마침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등이 등장해 사람들은 모두 TV속에 빠져 들어가 있었다.
법정의 눈에는 그 모습이'시끄러움과 혼잡 속에서도 의연히 않아마치 예배라도 보는듯한 엄숙한 모습'으로 비춰졌다.
이른바 신흥종교인 텔레비젼의 신자들이요,영상의 노예들을 목도한 것이다.
법정은 겉으론 입성,먹을 거리가 풍부해진 사람들이 TV에 몰입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이 자신의 판단력을 잃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을까봐 노심초사 했다.
그 당시 그가 발표한 글에도 심심치 않게 TV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TV에 몰입하면 방송국에서 보내는 내용에 그대로 빠져 들수 밖에 없다.그러니 교활한 정치인들이 우민 정책을
쓰는 데는 더없이 고맙고 편리한 연장이겠지만, 인간답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무서운
덧이 아닐수 없다.."
법정은 길을 나설 때마다 곤욕스러웠다.
그는 길을 떠날 때마다 마음속으로는 항상 자유를 꿈꿨다.
길을 떠나는 목적이 일 때문이라도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 훨훨 자유인이 되고 싶은 것은 여느 속세인과
다를게 없었다.
'조금은 허전하고 외롭고 쓸쓸한 나그네의 그 고적을 누리고 싶다' 는 그의 바램은
TV와 비디오,라디오의 공해 때문에 도저히 이루어 질수 없었다.
"풍요한 감옥에서 탈출하려면 무엇보다도 정신이 늘 깨어 있어야 한다.자기 인생에 대한 각성 없이는 벗어날 기약이
없다. 깨어 있는 사람만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끝없는 탈출을 시도한다.보람된 인생이란 무엇인가.욕구를 충족시키는
생활이 아니라의미를 채우는 삶이어야 한다. 의미를 채우지 않으면 인생은 빈 껍질이다."
당시의 정부가 내건 여러가지 현수막도 그의 시신경을 자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가는 데마다 '선진조국창조'의 깃발이 나부끼고는 있지만 하는 짓들은 결코 선진으로도 창조로도 갈 수 없는
일들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한번은 일 때문에 영남지방과 호남 일대를 둘러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디를 가나 그 지방 나름의 특성이 있게 마련이지만,특성은 희미해 지고 법정의 눈에 띤것은 일부 음식점 간판들이었다.
진주,대구,안동,영주,밀양,부산 등지에는'숫불갈비집'과 '불고기 집'만이 즐비했다.광주를 거쳐 나주 등 호남 일대에는
'통닭집'간판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법정은 글을 통해 일갈했다.
"이런 왕성한 육식위주의 식생활로 인해 국민의 체위가 향상되고 활발해진 면도 있겠지만다른 한편그 부작용도
우리는 생각 할 수 있어야 한다.
잘 먹은 만큼 질병도 동시에 늘어난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옛날과는 달리,요즘은 뭇 먹어서 앓는 경우는적어지고 너무 잘 먹기 때문에 소화기 질환을 비롯해 심장병과 고혈압,
당뇨병 등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병원마다 줄 지어 서 있는 모습이며 몇집 건너 문을열고 있는 약국을 보라."
여행이 법정에게 늘 피곤함만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법정은 정겨운 농촌의 풍경을 볼 때마다 지친 심신을 위로 받았다.
해가 질 무렵 여기저기 들녁에서 타작하고 남은짚부데기를 태우는 연기와 그 냄새를 맡았을 때 법정은 까맣게
잃어버린 향수를 떠올렸다.
어린시절 자신에게 가장 많은 추억을 남겨 주었던 할머니가 떠 올랐고그때 고향땅을 보며 읽었던 여러 문학작품들도
떠 올랐다.
그리고 불일암 시절 유일하다 싶을 정도로 자기 자신만을 위해 떠난 여행에서 법정은 오래전 만난 어린 왕자와 같은
위안이 되는 존재를 찾았다.
다산 정약용이었다.법정은 나중에 강원도로 거처를 옮긴 이후에도 정약용의 생가를 몇번이고 다시 찾았다.
법정은 1985년 봄 다산의 서한집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고 나서 강진에 있는다산초당으로 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산이 살았던 기록의 현장을 보고 더 절절한 감회를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에게서 다산은 마치 멀리 떠난 스승이나 친구처럼 느껴졌다.다른 여행과는 달리 가는 길 모두가 아름다웠다.
목포를 거쳐 영산강 하구언을 지나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율동에 이르는 길은 남도 특유의 아기자기한 정겨운 길이
법정을 맞아 주었다.
초당은 예나 지금이나 율동 뒷산에 있었다.
법정은 다산 정약용이유배생활을 하며 10년 동안 제자들에게 강론하고 저술에 몰두,실학을 집대성한 곳에 한참을
서성이며 상상의 날개를 펼쳤다.
다산은 율동으로 오기전 강진읍 고성암과 군동면 석교 등지에서 8년을 살았다.그의 나이 40세에서 57세에 이른
그 시절은 다산이 사상적으로나 인간적으로 가장 무르익었던 시간이었다.
법정은 유배지에서 다산의 심정과 철학 모두를 절절하게 느꼈다.
법정의 마음을 다 알수 는 없지만 법정은 불일암에서 세월을 보내며 스스로 유배지로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던중 다산을 접했으니 그 어떤 친구를 만난 것보다 기뼜을 것이다.
법정은 다산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가슴에 새겼다. 그리고 편지의 내용을 읊조렸다.
다산이 귀양 가던 그해 1801년 겨울,두아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사연이 적혀 있었다.
"천지간에 와롭게 서 있는 내가 운명적으로 의지 할 것이라곤 오로지 책과 붓이 있을 뿐이다."
이어서 그는 자식들에게 부지런히 독서 하라고 간곡히 타일렀다. 이제는 과거를 볼 수 없는폐족의 신분이 되었으니
참으로 독서할 때를 만난 것이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내 저술은 쓸모 없는 것이 되고 말것이다. 내 저술이 쓸모 없다면 나는 할 일이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눈을 감고 흙으로 빚은 등신처럼 않아 있어야 된다.그럼 나는 열흘이 목가서
병이 날 거고, 이 병을 고칠 수있는 약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이 독서 하는 것은 내 목숨을 이어 주는 일이나
마찬가지다.깊이 새겨 주기 바란다."
또 다른 편지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저술에 마음을 두고 있음은 당장의 근심을 지기 위해서 만이 아니다. 사람의 부형이 되어 귀양을 사는 지경에
이르러서 저술이라도 남겨 내 허물을 벗고자 하는 것이니 어지 그 뜻이 옅다고 할 수 있겠느냐."
법정은 다산을 이렇게 말했다.
"살 줄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 아래서도 자신의 인생을 꽃 피울 수 있다. 그러나 살 줄 모르면 아무리 좋은 여건
아래서라도 죽을 쑤고 마는 것이 인생이 과정이다."
법정은 다산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중에서 다음의 문장을 마음에 담다 두었다.
"철이네 집에 급한 일이 생기면 가서 도와주어라. 큰 추위나 큰 비가 내리면 잊지 말고 식량과 땔감을 대주어라.
이런때 죽 한그릇이라도 도와 주면 무너진 집을 지을 돈을 대 주는 것과 같을 것이다"
다산은 18년 유배 생활에서 260 여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의 재능과 출세를 시기하여 무고한 죄를 씌워 유배를 보낸 그때의 지배계층은 오늘날 그 존재 마저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귀양살이에서도 꿋꿋하게 살았던 다산은 오늘까지 숨을 쉬면서 후손들앞에 당당하게 서 있다.
법정은 다산의 일생을 보고
'참과 거짓은 이렇듯 세월이 금을 긋는다'라고 표현했다.그리고 무엇보다 '잡문 나부랭이'라고 스스로 펌하했
던 자신의 글 쓰기에 대한 새로운 동기 여부도 찾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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