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법정)

무소유 삶 2.일기일회를 말하다- 행복의 조건

qhrwk 2022. 7. 6. 21:14

♣행복의 조건 ♣

법정은 변함없이 이른 새벽에 일어나 창을 열었다. 어제는 가을 비가 촉촉히 내리더니 오늘은 맑게 개었다.

지난번 폭풍우에 얼룩진 창호지를 뜯어내고 지인에게서 선물 받은 창호지를 발랐다.
새로 창을 바른 뒤 빈방에 홀로 않아 창호에서 비치는 맑고 포근한 가을 햇살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아주 넉넉해졌다. 

마치 말끔히 비질을 해 놓은마당을 대할 때 처럼 마음이 아주 개운하고 아늑해졌던 것이다.

 

이런 말고 투명한 여백에 법정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수 없는 행복함을 느꼈다.
법정은 생각했다.인간에게 있어 행복의 조건이란 무엇인지.....법정은 낮게 읇조렸다.
" 행복의 조건이란 이렇듯 사소한 데에 있다.새로 바른 창을 통해서도 사람은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

법정은 밖에서 나와 자신이 직접 가꾸고 있는 텃밭의 채소를 살피고 부엌에 들어가 국수를 삶았다.

툇마루에 않아 그저 간장을 두르고 김치와 함께 먹는 국수는 담백하고 먹기도 편했다.

법정은 문득 시야에 들어 오는 샘을 바라 보았다.

이 암자를 지을 때 샘에 파래가 잔뜩 끼여 있고 개구리들이 살아 쓰지 않은 채 버려져 있었다.

물에 손을 담가 보았더니 아주 차고 수량도 많아 고쳐 쓰기로 작정했다.

이끼가 퍼렇게 기여 있는 낡은 판자를꺼내고 대신 돌을 쌓아 둘레에 진흙을 다져 넣었더니 아주 좋은 샘이 되었다.

아무리 가물어도 수량이 줄지 않았다.

여름에는 물이 차고 겨울에는 미지근 했다. 법정의 가슴은 다시 행복감으로 차 올랐다.

가을 바람이 불어 왔다. 바람을 타고 세상 온갖 것의 향이 실려왔다. 

법정은 불쑥 길을 떠나고 싶은 충동에 불일암의 좁은 마당을 서성거렸다.

아침녁에 바른 창호지를 보며 환함에 애써 미소를 띠기도 하고, 이젠 거어 들일 일만 남은 텃밭의 채소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지만 떠나고 싶은 마음은 점점 커져만 갔다.
가을이라도 다른 때는 아무렇지도 않게 잘 지내다가도 해마다 짐처럼10월 하순께가 되면 묵은 병이 도지듯 문득

나그네 길을 더나고 싶어졌다.

법정은 길게 호흡하여 하늘을 바라 보았다. 

그때 오동나무와 후박나무에서 마른 바람결에 낙엽이 뚝뚝 떨어졌다.

법정은 방으로 들어가 서둘러 짐을 챙겨 길을 떠났다.

법정은 불일암에 머물면서부터 아무 때고 마음 내키면 숲으로 뚫인 길을 따라 나섰다.

때론 목적지가 있는 긴 여행이기도 했지만 대부분 가을에 설레는 마음은 뒷산이나 앞산 봉우리에 다다르면 잦아 들었다.

혼자서 터덕터덕 숲길을 거닐거나 봉우리에올라 멀리 바라보고 있으면, 말 할수 없는어떤 충만감이 마음
한 구석에 고였다.

혹은 주변을 벗어나 모르는 길을 걷는 여행도 있었다. 법정은 혼자서 나그네가 되면 느껴지는 투명하고 순수해지는

마음에 더 없이 행복해했다.
"낮선 환경에 놓여 있을 때 사람은 자기 자신에 눈을 뜬다. 자기 모습이 두렷이 드러난다.개체가 된다는 것은 곧 

자유로워 지는 것. 그리고 온전한 휴식을 누릴 수 있다.
사람은 이와 같은 휴식을 통해 새로운 힘을 축적하게 되고 일을 통해서만 휴식을 얻을 수가 있다.

평소에 일이 없는 사람들은 진정한 휴식도 누릴수 없다. 휴식과 일은 그런 상관관계를 지닌다."

그렇다고 법정이 언제나 마음 내키는대로 살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어떤 직함도 맡지 않았지만 어디까지나 송광사 승려였다. 

홀로 정진하며 정진의 한 방편으로 수 많은 글을 썻지만 스승 효봉 스님의 말마따나 육체적인 노동도그가 항상 수행해야

할 수련이었다.

물론 법정은 자신의 숙식을 홀로 수행하는노동에 익숙했다.

그건 스스로 선택한 일이기에 피곤한 줄도 몰랐고 오히려 불일암에 홀로 지내며 삶의 충분함을 느꼈다.

그러나 송광사 수련 원장을 맡는 순간부터 호수의 잔잔한 수면 같았던 그의 일상이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법정의 성격상 수련원장의 직책도 소홀히 할 수도 없었다.

현재의 템플스테이 원조격인 수행프로그램을 만들어 송광사 여름수련회의 기틀을 잡았다.

조계종계의 고봉 송광사라는 이름에 법정이라는 이름이 더해져 송광사의 여름 수련회는연 참가 인원이 평균

500여명으로 늘어나는 등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여름 내내 이어지는 수련회에서 속세의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배우는 것도 많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디만 법정의 심신은 매번 지쳤다.
기진맥진, 그야말로 기도 진하고 맥도 진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불일암에 일상을 두었던 법정은 수련회로 인해 거의 날마다, 어떤때는 하루 두어 차레씩 송광사를 

오르내리느라 땀을 흘려야 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여름휴가철을 맞아 찾아오고 지나가는 나그네들이 불일암과 법정의 이름을 찾아 방문하곤 했다. 

그들을 일일이 대 하다 보면 알게 된 것은 이름뿐 자기 정리의 시간을 제대로 가질 수 없었다.

어느 해 안거가 끝나기 전날,송광사 욕실의 저울위레 올라 보았더니 법정의 몸무게는3키로 그램이나 빠져 있었다. 

너무 많은 고열량의 음식 섭취와 불규칙한 삶을 살아가는 속세의 우리들에게 감량은 희소식일지 모르지만 평소 60킬로

그램정도를 유지 했던 법정으로서는 현기증이 일어날 만한 일이었다.

급기야 법정은 글을 통해 불일암 생활이10년이 지난1985년 가을 무렵 이곳 삶의 고단함을 고백하기도 했다.
"10년간나는 어떻게 살았는가? 내게 주어진 삶의 무대를 어떻게 소모해 왔는가? 부끄러움과 자책이 덧없는 

세월 위에 떠 오른다. 10년전 지침 몸과 마음을 쉬기 위해 다시 산으로 돌아왔는데 추새간의 정업은 소홀히 하고 

세속의 업만 더한 것 같다. 되지도 않는 잡문 나부랭이를 써서 헛 이름만 세상에 떨침으로써 번거로운
삶을 스스로 불러 들인것.출가 수행자의 분수에 맞지 않은 삶이다."

한편,법정은 불일암 시절 한사코 고사했던 상좌를 들이기도 했다.
1983년 첫 상좌德祖(덕조,서울 성북동 길상사 주지)를 들인 이래덕자 돌림으로 仁인,門문,賢현,耘운,眞진,日일등 

일곱 제자를 두었다.
법정 스님은 '출신성분'은 일정 염두에 두지 않고 오로지 '중노릇 제대로 할 제목인가'만을 따져 상좌를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