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법정)

무소유 삶 2.일기일회를 말하다- 속세에 대한 염증

qhrwk 2022. 7. 6. 21:27

 

♣속세에 대한 염증 ♣

1980년5월17일 법정은 오랜만에 속세로 내려가 강연을 했다.
그러나 법정의 기억에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할 수없었다.
불일암에서 늘 대하던 화엄경을 설면해 주었던가?

아니면 자연의 소중함을 말했던가?

법정의 기억속에그날의 기억이 남지 않았던 것은그 이튼날 벌어진 5.18 광주민주항쟁의 충격 때문이었다.

법정은 바람을 타고 혹은 방문하는 사람들을 통해 광주의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속세에 더욱 염증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을 찾는 사람은 줄지 않았다. 

사람을 대하기가 싫어서, 깊은 산중으로 들어와 사는 것이 출가 수행자의보편적인 경우다.
그중에도 온갖 불편함을 무릅쓰고 외따로 떨어져 사는 독거의 경우는 철저하게 홀로이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이런 뜻을 모르고 불쑥불쑥 낮선 사람들이 찾아올 때 맞이하는 쪽에 있는 법정은 본인의 표현을 빌자면

'심히 귀잖고 짜증스러울 뿐 아니라 인내의 한계를 드러냈다.
찾아오는 쪽에서는 모처럼 큰맘 먹고 벼르던 끝에 찾아왔겠지만 맞이하는 입장에서 는하루에도 몇 차레씩 방해를

입게 되니 법정은 그들이 무고한 것을 알지만 마로 여겼다.

5.18광주민주항쟁이 있은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날 법정은 홀로 방에 들어앉아 책을 탐독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바람에 실려오는 어두운 소식에 그 무렵 법정은 항상 마음이 무거웠다.
"계십니까?"

중저음의 목소리, 법정은 문을 열었다. 밖에는 기름기 번지르르한 50대 중반의 사내가 서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법정이 물었다. 사내는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아,저는 종단이 운영하는종립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000입니다.000교수도 알고 000학장과는친구이지요."

"아 그러십니까?" 법정의 목소리는 살갑지 않았다.
그러나 사내는 불일암을 쓰윽 훑어 보더니 알듯 말듯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제가 요즘 명상을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라....이곳에서 두어달 묵었으면 합니다. 그래도 되겠지요?"

법정의 얼굴이 굳어졌다. 

절이란 출가 수행자들이 수도하고 포교하는 곳이지 요식업이나 하숙을 하는 곳이 아니라는 평소의 지론을 갖고

있던 법정은 부아가 치밀었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하숙을 쳐서 먹고 사는 절이 있다.

그런 곳을 법정은 사찰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그런 그에게 상대는 하숙을 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됩니다. 이곳은 수행하는 곳입니다." 법정의 말에 상대도 쉬이 물러서지 않았다.
"홀로 기거하는 곳이란 것을 알고 찾아왔습니다. 그편이 조용하고 좋으니까요. 제 편의를 봐 주시면 이번 광주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 법당도 하나지어 드리지요."

법정은 한동안 사내의 눈을 뻔히 쏘아 보았다. 

그러자 사내는 비실비실 비켜서려고 했다.

법정의 머리에 선뜻 떠 오르는 것은 지난번 광주의 일로 자신을 감시하러 온 기관의 끄나풀이라는 생각이었다.

법정은 앞산이 저렁쩌렁 울리도록 호통을 쳐서 사내를 단박에 쫓아버리고 말았다.

법정은 그 전날 광주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떠 올랐다. 

그리고 서울에 두고 온 지인들도 떠 올랐다. 그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스쳐 갈때마다 법정은 마음이 흔들렸다.

송광사에 들을때 마다 무심코 펼쳐보는신문을 보면 눈앞이 캄캄해졌다.
속세에서 멀리 벗어나 산속에 있지만 자신의 눈에도 보이는 것을 언론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었다.

"근래 이 땅의 언론처럼 체제지향적이요,보수적이며,정부의 시책에 앞장서서 협조적인 태도는 그 어떤 정권하에서도

일찍이 보지 못했다.솔직히 말한다면 일부 식자층에서는요즘의 신문이나 방성을 불신하는경향마저 없지 않다.

언론의 사명을 다 하지 못하고있다는 불만에서인 것이다."

법정이 속세에 보내는 원고는 종종 되돌려져 오거나 아니면 글이 삭제되어 실리곤 했다.

그리고 법정에 대한 검열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에게 온 편지나 그가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마저 검열을 당하기 시작했다. 

불일암에 오르기 전에도 심심치 않게 당했던 일이라 법정은 그리 놀라지도 않았다.

그에게로 오는 우편물은 샅샅이 해져진채 전해졌다.

한번은 아는 지인에게 그가 평소 좋아하는 차를 선물 받았는데 그 봉지가 찢겨져 차가 줄줄 새는 채로 전해진 적도 있었다.

법정은 우편물을 받을 때마다 속으로 혀를 찼다. 

차라리 본인이 알아볼 수 없도록 '기술적으로 검열을 했으면 좋을덴데, 서투르게 한 나머지 알맹이를 꺼낼

때마다 알맹이가 봉투에 달라붙어 있어 아예 봉투를 찢어발겨야 할 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간혹 불일암에 올라오는 진인들에게 물어봤다.

"요즘 편지는 제가 읽기 전에 항상 먼저 보는 분이 계십니다. 세상에 비밀은 없다지만 저는 저보다 저를 더 잘 아는

 분들이 너무 많은것 같습니다."
"스님,요즘 제가 그렇습니다.제 주변 사람들은 모두 비밀이 없는 사람들이지요. 허허!"

그맘때 법정과 지인들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었다. 

검열은 오래도록 지속됐다.

때는 1983년 봄이었다. 법정은 텅빈 밭을 보며 올해는 무엇을 어떻게 심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법정 스님이시지요?" 마당으로 사내가 하나 들어와 대뜸 물었다.
"그렇습니다만." 법정은 사내의 말투나 옷 차람으로 보아 대번에 그가 형사라는 것을 알아 봤다.
"저는 도경찰국 정보과의 000입니다.000의 주소를 혹시 압니까?"
"000요?" "예000와 아는 사이라는 것을 알고 찾아왔습니다.그와는 최근 어디서 만났었지요?"

법정은 낮선 사내의 한꺼번에 밀려오는 여러가지 질문에 혼란스러웠다.
금방 들었던 일도 잊어버리기 일쑤인 건강한 건망증을 앓고 있던 법정은 기억에서 '000'를 쉽게 꺼내들지 못했다. 

형사는 답답했는지 주머니에서 부스럭거리면서 종이를 꺼내 내 눈에 익은 글씨채로 기록된 이름자를 법정에게 

보여 주었다.
이때에야 법정은 정신이 번뜩 들었다. 몇칠전에 받았던 편지가 복사된 채로 그의 손에 들려 있었던 것이다.

법정은 형사가 돌아간후 그 편지를 다시 꺼내 확인했다. 

무심코 지나쳤지만 뜯어 본 흔적이 분명했다. 

법정은 갑자기 속이 메스꺼워졌다. 

그리고 시대의 환경을 다시 절감했다.

이후 몇칠간 법정은 이 땅의 현실이 웜망스럽고 불쾌하여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다 마음을 고쳐 먹기로 했다. 

자신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도 검열의 의미를 좋은 쪽으로 돌려 생각하기로 했던 것이다.
산골에 묻혀 수도 한답시고 행여나 자신이 시대와 사회에 대란 관심이 소홀해질까봐서 자신에게 이 시대에 현실인식을 

극명하게 깨우쳐 주기 위한  배려로 돌려 생각하니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