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들아 .나하고 약속을 하자♣
간혹 산을 벗어 나지만 법정은 여전히 불일암에 있었다.
산에 오래 산 사람은 산을 닮는다고 했던가.
법정은 자연과 벗하며 점점 자연을 닮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매일 매일 자연에게서 삶의 진리를 배워 나갔다.
불일암에 있었던 여러날 중 하나,해가 가울고 어둠이 어스름이 내릴 무렵 법정은 채소밭에서 풀을 메고 있었다.
그때 우물쪽 나무위에서 새들이 아주 다급하게 짹짹 거렸다.
법정은 숙였던 허리를 펴고 호미를 든 채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갔다.
나무위에 매가 한 마리 날아와 있었다.
"에끼 이놈! 썩 물러가지 못할까!"
법정이 다급한 마음에 고함을 쳤더니 매는 서둘러 날아갔다.
법정은 놀란 가슴을 진정 시키며 주위를 둘러 보았다.
다람쥐 한 마리가 나무줄기를 타고 내려와 있었다.
급박한 상황에 인식하지 못했는데 다람쥐는 다급한 마음에 꼬리를 쳐 들면서 새들을 향해서 쇳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법정은 이웃의 위급함에 한몫 거드는 다람쥐를 보면서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자연에도 불청객이 있었다.
어느날 해가 질 무렵 위채 부엌문 위에 말벌이 집짓기에 한창인 모습을 발견했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말벌의 집은 벌서 작은 호박만하게 커져 있었다.
법정은 예전의 일을 떠올렸다.
이태전 법정은 말벌에 몇 차레 쏘인 적이 있었다.
불일암을 찾은 나그네들도 더러 쏘였었다.
그해 법정은 결국 말벌의 집을 헐어 버렸었다.남
의 집에 붙어 사는 처지에 주인도 몰라보고 쏜, 그 소행이 괘씸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집을 잃어버린 벌들은 며칠 동안 집자리를 맴돌면서 떠나갈 줄을 몰랐었다.
법정은 그 정성이 측은해서 한동안 자신의 행동이 마음에 걸렸다.
법정은 그해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리고 벌들에게 말했다.
"벌들아 나하고 약속을 하자.너희들이 나를 쏘지 않고 찾아 오는 사람들을 쏘지 않는다면 집짓고 사는 것을 묵인
하겠다.그러나 만약 그전처럼 주인이건 나그네건 한 사람이라도 쏘게 되면 그날로 즉시 철거하게 될 것이다.
알아 들었지?"
법정은 한시도 쉰 적이 없다.
단지 불일암에 머물러 있었을뿐 그는 그에게 허락 되는 지면을 통해 세상과 소통을 하려고 항상 노력했다.
물론 1980 광주,시도 때도 없는 검열등으로 인해 지치기도 했지만 자연을 보며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종교인으로서의 이웃사랑의 끈을 놓을수는 없었다.
법정은1982년 11월『말과 침묵』을 통해 '이웃이 신음하는 소리를 들으면 그대로 있을 수 없는 보살의 생리'임을
설명하며 불교인이 이웃의 아픔에 무관심해서는 안된다고 했으며 1984년에는스승인 효봉스님의 일대기인
『달이 일천강에 비치리』를 펴냈다.
그리고 1986년 4월28일 서울 송광사 서울 분원인 법련사를 찾아 봄철 특별법회를 가졌다.
"부처님이 세상에 오신 참뜻은 나와 이웃이 모두 부처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 하는 것입니다.
절에 있는 부처님은 불상이며 석가모니는 과거완료형이라고 할 수 있어요.이웃이 바로 살아 있는 부처요.이것을
아는 것이 불탄일에 연등 1백만개를 켜는 것보다 나아요."
법정은 청중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나의 이웃이 바로 부처이며 예수님이며 천주님입니다.....불교를 배우는 것은 자기 자신을 배우는 것이며 자신을
텅 비우는 일이예요.그래야 모든 사물과 하나가 될 수 있어요.
개체인 내가 전체로 확산되는 것이지요.한국 불교는 일천 육백년 역사를 지니고 있어요.
그러나 부처님의 정법이 활발하게 펼쳐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승려나 불자들이'중셍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 는
깊은 보살행을 채득화, 생활화 하지 못한 때문이에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확인한 법정은 기운을 얻어 말을 이었다.
"우리는 남의 이야기를 들 수 있는 힘이 부족해요. 자신을 비울 때 남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비로서 대화가
가능합니다. 오늘날 정치나 경제등 각 분야에서 서로 마음을 비우지 않고 자기 소리만 하기 때문에 갈등과 문제가
있는 것이죠."
그날 법정의 법회 내용은 자신의 몸이 불일암에 있을뿐 마음은 항상 세상 모두와 함께 있음을 공표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자신을 찾아 오는 손님들에게도 그가 언론인이든 그 무엇이든 간에 자신의 소리를 정확히 전파했다.
"우리에게 5월은 4월보다 훨씬 잔인한 달이다.....봄부터 지금(85년5월)까지 무고한 시민들은 대학주변에서 줄곧 눈물과
재채기와 호흡장애를 일의키며 곤욕을 치르고 있다...나라 밖에서 보도 되고 있는 생생한 영상자료를 빌릴 것도 없이,
이른바 광주사태에 대해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그 살벌하고 끔찍하고 무자비한 만행의 현장을 수많은
사람들이 몸소 겪었기 때문이다.그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받기 어려운 하늘과 땅이 함께 치를 떤 살육이었던 것이다...
역사적인 진실은 아무리 은폐하려고 해도 은폐될 수 없다.
세월이 흐르면 다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러니 그 역사적인 진실앞에 솔직하고 정직했으면 한다...5월은 이 땅에 해마다
찾아 올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들 자신을 되돌아보게 할 것이다.
세계속의 광주를 비쳐줄 것이다....
광주여 우리 시대의 영원한 젊음의 도시여! 어서어서 지난 세월의 얼룩을 지워 버리고 이 겨례의 복된 '빛고을' 이 되거라!"
오래 묵었던 말이지만 그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오히려 30대와 40대가 겪었던 유신정권을 향한 비판보다 더 호되면 호됐지 덜하지 않았다.
법정의 관심은 광주민주항쟁에 그치지 않았다.
1987년6월 항쟁 이전과 이후에도 잘못된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멈출 줄 몰랐다.
"엊그제 일어난 일이 아니고 일찍부터 이미 있어 왔고 묵인되어 왔었다는 엄연한 사실에 우리는 억울하고 울분을 억제
하기 어렵다. 다만 그런 사실이 오늘 일반에게 알려졌을 따름이다....같은 사람인 처지에 땅을 딛고 하늘을 우러르기가
참으로 부끄럽고 죄스럽다....겪어본 사람이면 다 알겠지만 이렇다 할 죄상도 없이 자기네와 다른 뜻을 지녔다고 해서
수사기관에 끌려가 공권력에 의해 부당하고 치욕적인 심문을 당할 때,무엇보다 슬픈 사실은 어떻게 똑같은 인간끼리
이럴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다.
그러면서 사람이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을까 하는 연민의 정이 우러날 때가 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의심하고 증오하고 싸우고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는 서로 믿고 의지 하고 돕고 사랑하면서 사람답게 살기 위해 찾아서 만난 이웃들이다.
이렇게 만난 이웃들이기에 사람답게 살수 있으려면 서로 믿고 의지하고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한 몸의 안위도 잊은 채 불의 앞에 항가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지금 이땅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권담당자들에게는 심히 귀잖은 존재들로 생각되겠지만 이 겨레의 장래를 두고 생각할 때 고무적이고
희망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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